여름비 지나가니 가을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름비 지나가니 가을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 글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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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유난히 많은 비구름을 몰고 왔던 올 여름도 8월 중순이 접어들면서 빗방울이 조금 뜸하더니 입추도 지난 이 산골에 난데없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예년 같으면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을 찾던 분들이 이 계곡에 넘쳐 났을 텐데 올해는 여름내 내린 비 때문에 산골 나들이들을 아예 포기들을 하셨는지 참 한산합니다.

▲ 계곡길에 이젤을 받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신사.
저까지도 여유로운 마음에 햇살이 뜨거운 오늘 오랜만에 가리왕산 산책을 나서 봅니다.

지난 봄 손님들과 산책을 나서본 이래로 처음 나선 산책길이 너무도 많이 변해서 그동안 바쁘게 지냈던 시간이 참으로 후다닥 흘러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책길 초입에는 머루나무가 많은 열매를 와글와글 매달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익어 가고 있고, 벌써 여름을 넘기고 독이 오르기 시작한 살모사가 햇살 따스한 돌 위에 똬리 틀고 앉아 몸을 말리는 풍경들이 여기저기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 정선에 내려와서 많은 종류의 뱀들을 만나 놀라기도 많이 놀라고, 뱀 많은 이 산골에서 살아갈 제 미래가 힘겹게 느껴지기도 했더랬습니다.

그때는 산길에서 뱀을 만나면 뱀이 나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치 뱀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아닌가 놀라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참으로 가관이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4년쯤 지난 요즈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사진 찍기 바쁜걸 보면 그 사이에 참으로 자연에 대한 제 생각이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는 게 실감이 납니다.

▲ 한여름에도 냉기가 서늘하게 뿜어져 나오는 얼음동굴.
올 여름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가리왕산 계곡물에 발 담그고 노는 재미를 한 번도 가져 본적이 없어서 따가운 가을볕 아래 시원한 계곡에 발이라도 담글 심산으로 산책길 중간에 탁족을 위해 계곡을 내려가다 아~~! 계곡가에 이젤을 받쳐두고 그림을 그리고 계신 노신사 한분과 만났습니다.
 
따님과 함께 서울서 쉬러 오셨다는 그분의 그림 그리는 풍경이 자연과 어우러져 여간 근사한 게 아니었습니다.

국립공원에서는 계곡에 몸을 담그면 벌금이 20만원이라는데 얼음장 같이 차가운 이 산골의 계곡에는 그런 법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듯 여기저기 차가운 얼음물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기는 건강한 어린이들이 눈에 띄어 저도 발을 담가보지만 깊이 들어가 볼 엄두는 나질 않습니다.

▲ 장아찌로 담그기도 하고 기름도 내어 먹는 산초 열매, 이 산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흔한 먹거리이지요.
산길마다 맛있는 가을 먹거리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을 기다리는 밤송이가 가지가 찢어져라 달려있고요, 장아찌를 담그면 그 맛이 상큼한 산초 열매도 여기저기 열려 있어 게으른 산골 아낙의 마음이 또 바빠지기 시작하니, 그냥 두질 못하고 한참을 달려들어 산초 열매를 땁니다.

산초도 열매 맺고, 벌개미취, 뚱딴지 등 가을꽃들도 피어났으니 가을은 가을인데 어찌 햇살은 이리도 뜨거운지요. 산길을 벗어나 휴양림 아스팔트길을 걷다보니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덥습니다.

가리왕산 휴양림 매표소 뒤에는 돔형을 이룬 거대한 바위 절벽이 있습니다.
 
이 절벽 근처에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얼음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은 한여름 폭염에도 섭씨 7~9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입니다.

아주 옛날엔 삼복더위가 끝날 때까지 주민들은 냉장고 대용으로 김치 항아리 등을 가져다가 두고 저장했다고 합니다.

▲ 탐스런 밤송이가 따가운 가을 햇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의 기온은 영상 7도, 땀을 식히기 위해 바위 위에 잠시 앉아 있으니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더군요.

산골에 살아 보니 계절 바뀌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어수선하게 지났던 지난 여름들과는 달리 올해는 비 덕분에 차분하게 오는 가을을 바라 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다가오는 겨울 준비에 또 분주한 일상들을 보내겠지요? 부족한 제 칼럼을 읽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의 문을 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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