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빨래 위로 번지는 파티마의 미소
하얀 빨래 위로 번지는 파티마의 미소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6.27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

자식이 일곱이나 딸렸는데 서방이란 작자는 허구한 날 감방에 있어요. 빨래라도 해서 입에 풀칠하는 것이 감지덕지하지요?

차도르(Chador,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네모진 천)와 부르카(Burka,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는 장옷)로 상징되는 이슬람 여성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연방 널려진 빨래 위로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 터키 히마 빨래터에서 생계를 꾸리며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고 싶어하는 파티마.
“어느 나라나 똑같겠지요? 엎치락뒤치락 울다가 웃다가 지지고 볶는 우리네 인생살이 말이에요”
“산다는 게 그렇지요,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그녀는 이방인의 맞장구에 안심되었는지 푸석푸석한 눈길을 빨랫줄 아래로 가늘게 늘어뜨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시리아의 북단 도시, 시끌벅적한 수크(Souq, 중동의 재래 시장)로 유명한 중세 도시 알레포(Aleppo)를 떠난 버스는 두 시간 남짓 남으로 달려 하마(Hama)에 도착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Damascus)와 알레포 사이에 위치한 하마에는 시내를 휘감는 오란테스(Orantes) 강을 따라 군데군데 세워진 노리아(noria)들이 삐걱삐걱 세월을 퍼올리고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중동이나 유럽 지역에서 사용한 노리아는 농업용수나 식수 공급을 위해 건설된 고가식 수로(高架式 水路)에 물을 퍼올리는 기계장치다.

노리아는 우리의 물레방아와 닮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수차의 테두리에 조그만 물통들이 줄줄이 달려 물을 밑에서 위로 퍼올린다. 수로의 높이에 따라 직경이 큰 것은 20~30m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의 노리아는 심심한 도시 하마의 명물이다.

“보름이 다 되도록 여기서 노리아 소리만 듣는 걸 보니, 거기도 꽤 쌓인 게 많은 가 봅니다.”
“청승맞은 뜨내기라 그래요”

호텔에서 빨래를 해주며 귀동냥 눈동냥으로 영어를 익혔다는 파티마(Fatimah)는 아랍어라고는 간단한 인사 몇 마디와 ‘인샬라’ 밖에 모르는 이방인에게는 고마운 말 상대였다.

“내 몸도 노리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청춘을 다 적시고, 이제는 시들시들 사그라져 가는 서글픈 신세지요”

▲ 터키의 대표 유적지인 팔미라. 시리아 사막 가운데에 폐허로 남은 눈부신 유적이다.
따가운 햇살을 깨고 쏟아져 내린 파티마의 푸념이 오란테스 강물 속으로 흐물흐물 흘러들어 갔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아비 따라 교도소 간 큰놈이 스물다섯이니까, 내가 그 인간에게 시집온 지 벌써 스물여섯 해가 넘었네! 어쩌자고 우리 아버지는 그깟 염소 몇 마리와 돈 몇 푼에 열여섯 먹은 꽃다운 나를 그에게 넘겨주었는지! 없는 게 죄지…”

사람들은 파티마의 남편이 시리아 마피아 조직원으로 교도소에서 6년째 복역 중이며 큰아들은 절도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계류 중이라고 했다.

“몹쓸 인간! 툭하면 마누라와 새끼를 때리고,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남의 등처먹고, 그런 인간은 차라리 감방에 처박혀 죽는 게 낫지….”

저주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파티마의 밑 빠진 중얼거림이 애절하게 삐걱거리는 노리아 소리에 묻혀갔다.

시리아의 대표 유적인 팔미라(Palmyra)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아파미아(Apamea) 유적은 하마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떨어져 있다. 아파미아는 기원전 2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셀레우코스 1세가 세웠다. 이곳은 시리아 왕조 시절 건설되어 로마와 비잔틴 제국을 걸쳐 천 년 동안 번성했던 고대 도시다. 하지만 6세기와 7세기, 페르시아 제국과 이슬람 제국의 침략을 받고 쇠퇴를 거듭하다가 12세기 대지진으로 마침내 폐허가 되고 말았다.

나지막한 풀밭 언덕에 줄지어 서 있는 화려한 돌기둥들은 한창 시절 아파미아의 영화가 하늘에 닿고도 남았음을 넌지시 가르쳐 주고 있었다. 발부리에 채여 명상에서 깨어난 유물들이 발그레하게 미소짓는 아파미아는 시리아가 감춘 아름다운 보물이었다.

아파미아에서 돌아와 다시 파티마를 찾았을 때, 그녀 옆에는 아미르(Amir)가 있었다.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슬람 국가의 금요일은 비이슬람 국가의 일요일에 해당한다)이라 엄마를 따라와 종일 치맛자락을 붙들고 심심함을 하소연하다 끝내는 펠라플(Felafle, 튀김 볼과 야채샐러드를 전병에 싼 간식) 한 개를 얻어먹고 입이 귀에 걸린 아미르는 아홉 살 난 파티마의 막내아들이었다.

▲ 히마의 명물 노리아. 우리나라 물레방아처럼 생겼고,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다.
“세상 일이 어디 다 뜻대로 되던가요. 자식 농사라도 잘 지어보려고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빨래를 하였건만 큰놈은 벌써 감방이나 들락거리고, 아비 얼굴 한 번 못보고 자란 저것이라도 잘 커야 할 텐데….”

아미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파티마의 손끝을 붙잡고 있었다. 따사로운 모자의 정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너덜너덜 헤지고 꼬질꼬질 때 묻은 우리 마음도, 날마다 빨다 보면 언젠가는 새하얗게 되지 않을까요?”
하얀 빨래 위로 풋풋하게 번져가는 파티마의 미소가 메마른 그 땅을 촉촉하게 적셔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