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줄기는 흘러흘러 서해로 가네
내변산 줄기는 흘러흘러 서해로 가네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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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변산반도 국립공원(1)

변산반도국립공원에는 드높은 산이 없다. 다만 아담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산과 바다를 두루 안고 있는 변산반도는 예부터 ‘서해의 진주’로 불릴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해안 지대와 산악 지대의 확연한 풍경 차이로 변산반도는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나뉜다. 외변산 해안을 둘러보는 코스도 환상적이지만, 내변산의 아기자기한 산세를 오르내리며 수려한 늦가을의 정취를 맛보고 싶어 내변산을 가로지르는 내소사~남여치 구간 산행을 하기로 했다.

내소사에서 남여치로 이어지는 코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내소사 전나무 숲에서 시작된다. 상쾌한 피톤치드가 가득한 전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가 고요한 내소사의 경내를 둘러보고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든다.

산과 들과 바다가 있는 풍경

▲ 천년 묵은 내소사 느티나무.
내소사 천왕문에서 100m쯤 되돌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보인다. 갈림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 길을 오르면 관음봉 삼거리. 고른 숨을 쉬어가며 오르다보면 내소사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가 나타난다. 능선에서 바라본 정갈한 내소사의 경내는 울긋불긋 물든 산과 어우러져 제법 운치가 있다.

관음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관음봉, 왼쪽으로 가면 직소폭포로 이어진다. 직소폭포 가는 길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30분은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등산로 양쪽으로 키 작은 조릿대가 가득하다. 땅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조릿대는 이듬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도록 토양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얼마쯤 내려가다 보니 어른 100명이 족히 서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널따란 바위가 반긴다. 바위에서 바라보니 내변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원암마을을 감싸고 있고 그 너머로 곰소만이 펼쳐진다. 누런 논과 사람의 향기를 머금은 정겨운 마을은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잠시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른 후 가던 길을 재촉한다. 20분쯤 내려가니 다시 삼거리. 좌측으로 가면 원암마을, 우측으로 가면 직소폭포다. 우측길로 내려선다. 잠시 내리막이 있더니 계곡을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산책로같은 완만한 길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난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에 찾아온 갈수기. 직소천에는 마른 돌만 뒹굴고 있다. 경쾌한 계곡 물소리대신 늦가을이 선물한 계곡의 화려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상한다. 곧 닥칠 매서운 겨울을 아는 듯 나무들은 마지막 모습을 한 없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이런 자연의 멋스러움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갈수기라 직소폭포의 수량이 많지 않아

▲ 내소사 입구를 더욱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단풍나무.
계곡을 따라 30분쯤 걸으니 직소폭포가 반긴다. 직소폭포의 상류 계곡이 말라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건만 폭포는 명성이 의아할 만큼 가느다란 물줄기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직포폭포는 내변산 신선대에서 발원한 계류가 제1곡 대소, 제2곡 직소폭포, 제3곡 분옥담을 지나 제9곡 암지까지 2km 구간을 지난다. 그러나 1996년에 생긴 부안댐은 이 9곡의 물줄기가 뻗어나갈 길을 막아 미아로 만들었다.

폭포에서 잠시 내리막을 걸으면 분옥담과 선녀탕이 연달아 등장하고 이어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수면에는 짙어진 단풍의 향연이 춤추고 있다. 인공적으로 둑을 만들어 막아 놓은 저수지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줌에도 불구하고, 직소폭포에서 연신 달려온 물줄기가 갈 길을 잃고 머무는 듯하여 작은 부안댐을 보는 듯하다.

자연보호헌장비 앞에서 길이 나뉜다. 오른쪽은 봉래곡으로 하여 내변산분소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월명암으로 가는 길이다. 월명암을 지나 남여치로 가기 위해 봉래구곡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오르막은 경사가 급한 바위길.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르다 뒤돌아보니 내변산 산줄기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저수지를 품은 관음봉과 세봉의 줄기가 뻗어있고 서쪽으로는 흐릿하게나마 안개가 가득 낀 서해가 보였다. 비로소 ‘산과 바다가 하나’라는 변산의 수식어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전망 좋은 곳에서 허기도 달랠 겸 평평한 바위에 앉아 간단히 간식을 먹는데 월명암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보니 겨울철에는 제법 위험할 듯하다. 변산반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다설지역이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바다의 물기를 가득 머금고 내변산 자락에서 눈을 뿌려대니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가득 피는 곳이 내변산.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겨울철 산행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안전이 아닌가. 경사가 급한 지대에서는 작은 얼음에도 미끄러져 다칠 수 있으니 겨울철에 내변산을 찾는다면 반드시 아이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부설거사가 도를 통한 월명암

▲ 정갈한 내소사 대웅전.
쌍선봉 정상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월명암이 있다. 능선을 따라 1시간쯤 올라갔을까. 청아한 목탁소리 대신 둔탁한 망치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쉽게도 한창 공사중이었다. 월명암은 신라시대인 692년(신문왕 692)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됐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가 중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사찰이 불에 타고 재건되면서 큰 사찰이었던 절이 작은 암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공사가 한창인 월명암은 규모가 제법 커져 암자의 소박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돼 보였다.

월명암은 부설거사의 딸인 월명(月明)의 이름을 따 지어진 이름이다. ‘스님에게 왠 딸이냐’고 할 텐데 사연이 있다. 부설은 도반스님들과 순례를 하던 중 묘화라는 처녀의 간곡한 청혼을 받아 혼인하게 된다. 둘은 묘설이라는 아들과 월명이라는 딸을 낳았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수행에 정진하여 가족 모두 도통(道通)하게 된다. 가족이 도통한 일은 불교사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 이 부설거사가 도통한 곳이 바로 월명암이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賓客接待家勢竹)
시장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내네(然然然世過然竹)

부설거사의 ‘팔죽시’(八竹詩)다.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음을 부설은 진즉이 알았나보다. 암자 문짝에는 곶감들이 정갈하게 매달려 있다. 보기 좋게 주황빛을 띤 감들은 조금 있으면 맛 있게 익어 스님들의 좋은 간식거리가 될 것이다.

마른 목을 축이고 길을 재촉했다. 월명암에서 돌아 나와 쌍선봉으로 올랐다. 길에는 조릿대가 가득했다. 키 작은 조릿대들은 겨울철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등산객들의 눈을 기쁘게 할 것이다. 쌍선봉 자락까지 밀려온 짭쪼롬한 바다 내음은 바다가 가까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아찔한 높이대신 너른 품으로 바다와 마주선 내변산은 늦가을 날 자신을 찾아온 객에게 아름다운 속내를 기꺼이 보여주었다. 이 아름답고도 따뜻한 품속에서 부설거사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똑~딱~, 똑~딱~” 어둠이 내리는 조용한 암자에서 부설거사의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내소사~남여치 트레킹 코스 정보

▲ 맛있게 익어가고 있는 월명암 곶감.
내변산은 코스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능선에 올라 외변산의 아름다운 해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더없이 매력적이다. 특히 내소사에서 시작해 직소폭포~남여치를 통과하는 코스는 내변산 남부를 가로지르며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이다.

내소사에서 남여치까지는 걷는 데만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내소사를 여유 있게 둘러보고 쉬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5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내소사를 통해 산행을 시작할 경우 문화재관람료가 있다. 어른 1,600원, 청소년과 군인은 700원, 어린이 400원이다. 굳이 내소사를 보지 않아도 된다면 입장료가 없는 원암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내소사에서 남여치까지 산행을 하는 경우 원점회귀는 힘들다. 굳이 차를 가져와 원점회귀를 해야 한다면 내소사에서 관음봉과 세봉을 거쳐 내소사로 내려오는 코스, 그리고 내변산분소에서 봉래구곡을 지나 직소폭포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내소사 원점회귀 코스는 약 3시간 정도 걸리며, 직소폭포 원점회귀 코스는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내소사에서 남여치 구간을 산행하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부안에서 내소사까지 가는 직행버스(063-584-2098)는 1일 1회(10:15) 운행하며 50분 정도 소요된다. 일반버스(063-583-2624)는 내소사까지 06:25~21:0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3,400원.

남여치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변산면소재지까지 나와서 시내버스(063-583-2624)를 이용하면 된다. 변산면소재지에서 부안까지는 07:00~21:05까지 25~3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소요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2,3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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