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 울 가 뭄
겨 울 가 뭄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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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겨울의 품속에 있는 이 산골은 요즈음 엄동설한이란 단어를 증명이나 하듯이 연일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기온이 계속 되어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던 그간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시켜 주고 있습니다.

▲ 남한강 상류인 정선 읍내의 조양강변. 드러난 강바닥이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난 9월 이후로 비나 눈이 제대로 내린 적이 없는 정선은 이미 재난 상황입니다. 골지천 상류에 위치한 광동댐 유역의 상수원 고갈로 인해 태백·고한·사북 지역에는 수돗물 공급을 50%로 제한 급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연일 강원도 지역 뉴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가리왕산의 물 좋은 계곡 옆에 살고 있는 저는 물 걱정은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며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갑자기 수돗물이 단수가 되어 물 없이 엄동설한을 지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 감사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제가 사는 동네 마을 주민 일곱 가구가 쓰던 간이상수도를 폐쇄하고 새로 정선군 상수도사업소에서 시행하는 수돗물 공급을 받게 되어 더더욱이나 물 걱정은 안 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 강바닥에서 고기를 주워 자루에 담는 주민들.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간 해마다 한두 번은 간이 상수도가 얼어서 곡괭이를 들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간이 상수도 물탱크까지 올라가 부역하던 그간의 겨울을 떠 올리며 올 겨울은 걱정 없이 편안히 지내리라 미루어 짐작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강원도 지역 뉴스를 보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다가 급기야는 지난 1월12일 아침에 일어나니 그간 물이 콸콸 쏟아지던 집안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오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도시도 아니고….

더더구나 가리왕산 계곡의 물을 끌어다 공급해주는 간이상수도 취수원의 물 공급이 되지 않는 게 결정적인 원인이란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라고 하던 방송들이 거짓말이 아님을 느끼게 된 이 무식한(?) 산골 주민.

▲ 겨울 가뭄에 목숨을 잃은 물고기들.
물이 안 나오니 가장 시급한 것은 먹는 것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었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허기를 면하는 일은 적은 양의 물로도 가능하였지만, 생리 현상을 해결하자니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요.
 
그동안 몰랐던 사실. 양변기에 물을 한번 내리기 위해 이십 여분 차를 운전해 이웃 마을에 가서 어렵게 얻어온 한 말 들이 물통에서 반을 쓰게 되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마당 한켠에 재래식 화장실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이 안 나온 이틀째 아침, 이틀간 씻지 못해서 목욕을 하러 정선 읍내를 가다가 만난 기이한 풍경. 사람들이 강바닥에서 얼음을 깨고 뭔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는데 다가가서 살펴보니 바닥이 거의 드러난 강물에서 연명하던 물고기떼였습니다.

거의 줍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쉽게 건져지는 물고기들은 다들 가쁜 숨을 쉬며 마지막 몸놀림을 하느라 펄떡거리고 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틀간 물이 안 나와 짜증내던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저 생명체들은 무슨 잘못이 있는지요.

어찌됐든 단수된 지 이틀 만에 다시 물은 나왔고 물이 나오니 지난 이틀간의 불편함을 그새 싹 잊어버리고 물을 펑펑 쓰고 있는 제 모습, 강바닥에서 숨을 헐떡이던 물고기 짝이 나야 물을 좀 아끼게 될른지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물을 아껴 써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는 산골의 겨울. 얼음장 밑에 흐르는 물이 없으니 과연 봄이 올까, 걱정하게 되는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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