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산골에도 가득합니다”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산골에도 가득합니다”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6.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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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13

▲ 근하신년이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아루라지 나루의 겨울 경치가 참 아름답습니다.

2007년의 마지막 달, 가을걷이를 마무리한 산골의 12월은 일년 중에 가장 여유로운 방학입니다. 전 그간 미뤄 두었던 도시 나들이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매일 아침 늦게 뜨는 해 덕분에 느지막이 일어나는 게으름도 피우면서 이 산골의 겨울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연말연시 분위기에 휩싸이는 기간이 되어 오면 작년부터 인연을 맺은 정선의 조손 가정 어린이들과 부모 없이 사는 어린이 25명과의 약속이 생각납니다.

정선 성당에서 사회복지 사목을 하시는 인도인 에밀다 수녀님의 소개로 아이들을 만난 지 이제 2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 아이들과 매년 3회 정도, 저희 집에서 맛난 것도 만들어 먹고 신나는 게임도 하며 지내는 캠프를 제가 주최하곤 했습니다. 가끔 정선 읍내에 나가면 시장 한 모퉁이나 버스 안에서 만나게 되는 그 아이들이 저를 보고 달려와 “아줌마 집에 언제 가면 되요?”하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묻곤 합니다.

그 물음에 언제나 “우리 빨리 만나자. 방학하면 아줌마가 수녀님 통해서 부를거야! 조금만 기다려.”하며 아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지만, 아이들은 제 대답에 늘 조급한 표정으로 빨리 가고 싶다며 매달립니다.

▲ 정선 읍내 시장 입구에 차려진 불우이웃돕기 모금함. 저도 돈을 넣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계셔서 수줍음 타는 제 성격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이 산골에 살다보면 위만 보고 살던 도시 생활과는 달리 아래도 살피며 어려운 이웃들과 눈을 맞추게 되는데요. 도시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산골 구석구석에 어찌나 많은 외로운 이웃들이 사는지요. ‘휴우~~!’ 제가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홉 살에 눈이 실명되시고 70년 넘게 어두운 세상을 혼자 살아오신 할머니는 자식들이 셋이나 있는데도 혼자 손녀를 데리고 사시는데, 위암으로 투병중이라 늘 손녀딸 걱정에 제 손을 잡고 우십니다. 또 부모님 모두 교통사고로 여의고 고등학생 언니가 동생 셋을 돌보며 사는 가정도 있고요. 아버지는 빛만 남긴채 돌아가시고 어머닌 알콜 중독자라 시장거리를 늘 맨발로 돌아다니는 꼬마 쌍둥이들도 있습니다.

그밖에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어려운 이웃들이 요사이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겨우 일년에 세 차례 아이들을 불러 함께 놀아 주는 것 외에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그때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불끈하기도 한답니다.

▲ 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아이들이 정성껏 만들어 선물한 예수님 말구유.

작년 겨울에 아이들과 함께 이곳 정선에 새로 생긴 하이원 스키장에 가서 어린아이들은 눈썰매를 타고 고학년 어린이들은 스키를 탔는데, 올해도 아이들과 스키장에 갈 계획입니다.

작년에도 아이들 스키장 가는 비용을 도시에 살고 있는 후배들과 친구들, 그리고 정선에 사시는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와 주셔서 제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올해는 이 소식을 들은 하이원 스키장 사장님께서 비용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늘 아래로만 보게 되는 산골 생활, 그래서 가난한 산골 살림이지만 늘 충만한 기쁨으로 살고 있는데 올해도 부지런히 움직여 외로운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이 생활이 정말 좋습니다.

이제 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한분 한분께 엎드려 지난 한해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심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 다해 새해 행복하시라고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정선성당에 근무 하시는 인도인 에밀다 수녀님, 한국적인 정서가 풍부하신 천사 같은 분.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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