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선생도 반했던 진경산수화를 즐긴다
율곡 선생도 반했던 진경산수화를 즐긴다
  • 글·김성중 기자 | 사진·염동우 기자
  • 승인 2011.06.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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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오대산 국립공원 02 소금강 트레킹

▲ 빼어난 절경을 지닌 소금강은 시원한 폭포와 기암괴석이 끝없이 펼쳐진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낙영폭포의 물줄기가 꽁꽁 얼었다.

금강산과 너무나 흡사하다하여 지어진 소금강(小金剛). 율곡 이이 선생은 무엇이 그토록 아름다워 이곳을 소금강이라 이름 지었을까. 시리도록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진 오대산의 산줄기…. 아마도 이곳에서 율곡 선생은 어머니 신사임당의 자애로운 품을 기억해냈는지도 모른다.

명승 제1호로 지정…노인봉에서 바라보는 조망 일품

취재협조·오대산국립공원 033-332-6417  http://odae.knps.or.kr

1970년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된 소금강은 율곡 이이 선생이 ‘청학신기’에서 맑은 계곡과 기암절벽, 그리고 짙은 숲들이 금강산과 흡사하여 지은 이름이라 밝히고 있다. 소금강은 소금강 분소 부근의 무릉계를 경계로 하류 쪽을 외소금강, 상류 쪽을 내소금강으로 구분하지만 보통 내소금강만을 소금강이라고 한다.

▲ 금강사에 가기 전 ‘열십자(十)’ 모양의 십자소와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연화담을 볼 수 있다.

처음엔 산책길처럼 완만한 등산 코스
무릉계를 기점으로 진고개까지 이르는 코스를 계획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소금강 분소를 지나자 ‘小金剛’이라 새겨진 바위가 입구를 알렸다. 이 글씨는 율곡 선생이 금강사 아래 영춘대에 직접 썼다는 글자를 그대로 탁본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계곡이 무릉계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중국 호남성 동정호 부근의 무릉도원과 비슷해서 지어진 이름이죠. 물이 아주 맑아 은어, 산천어 등 1급수에서만 사는 민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이곳부터 계속 커다란 바위와 소가 이어져 아름다운 절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부터 오르는 내내 소금강의 아름다움을 실컷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산행 길잡이로 나선 오대산국립공원의 김윤기 씨가 소금강 등산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탐방객들을 위해 숲, 역사문화 해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사전에 예약하면 365일 언제든 전문 해설가와 함께 할 수 있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라면 꼭 한번 쯤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마의태자가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밥을 먹였다는 식당암. 100여 명은 족히 앉을 정도로 넓다.
무릉계에서 노인봉을 거쳐 진고개까지는 13.5km로 6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보통 구룡폭포나 만물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지만, 노인봉 정상은 오대산 국립공원에서도 전망 좋기로 소문난 곳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소금강~진고개 코스는 역으로 진고개부터 시작하는 이들도 많다. 노인봉까지 1시간30분 정도 오르고 나면 소금강까지 무난하게 길이 이어져 산행이 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노인봉이 일출 조망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이어지는 울창한 숲이 가슴을 맑게 해주었다. 오대산의 계곡과 기암들은 참으로 부드럽다. 설악산의 천불동계곡이 화려하고 웅장한 기암들로 이루어졌다면 오대산은 어머니 품처럼 한없이 포근하다. 계곡에는 ‘열십자(十)’ 모양의 십자소와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연화담이 그 푸른 물을 소복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연화담을 지나면 소금강 코스의 유일한 암자인 금강사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비구니 3명뿐이지만 관리를 잘 해 놓아서인지 아주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금강사에서 10분 정도 오르자 아주 큰 평상처럼 널찍한 바위가 계곡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족히 100여 명은 앉을 정도로 넓은 이 바위는 식당암으로 불리는 데,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나라의 부흥을 위해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밥을 먹였다는 곳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은선계곡에는 군사들의 아내들이 남편의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흐느껴 울었다던 청심대가 있다고 한다.

▲ 만 가지 형상이 있다는 만물상. 왼쪽에 삐죽하게 솟은 바위가 향로암이고, 오른쪽 큰 바위가 귀면암이다.

소금강의 백미인 구룡폭포와 만물상
무릉계에서 1시간30분 정도 오르니 구룡폭포와 만났다. 비취처럼 맑은 물이 소를 이루고, 폭포에서 힘차게 내리는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일대 장관을 이뤘다. 구룡폭포는 첫 번째인 상팔담부터 아홉 번째인 구룡폭포까지 연이어져 하나를 이루는 모습인데 각 폭포마다 용들이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 아름답죠? 아마도 이 구룡폭포 때문에 이곳을 소금강이라 불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금강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을 가진 곳이에요.”

모두 둘러보고 싶었지만 여섯 번째 군자폭포부터는 길이 험해 통제하고 있어서 갈 수 없었다. 여기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쌓았다는 아미산성이 나오고 망군대와 풍고암 등 절경을 볼 수 있지만 이 또한 입산을 통제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구룡폭포를 지나 20분 정도 오르니 학의 모양을 닮았다하여 지어진 학유대가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학의 모습으로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보였다. 기자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김윤기 씨가 자세히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 보면 사실 저 바위가 학처럼 생기진 않았죠.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작용으로 한쪽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한쪽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서로 총질할 때 맞아 떨어져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몸통만 남아있죠.”

▲ 백운대의 집채만 한 바위가 조그만 바위에 의지해 서 있다.

인간의 탐욕의 결과는 결국 자연을 훼손하게 되는 것일까.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삼라만상의 형체들을 한데 모은 듯 만(萬) 가지 모양을 가졌다는 만물상이 나온 것이다. 왼쪽으로 기이한 사람 얼굴을 한 귀면암과 그 뒤에 마치 향을 피우는 향로를 닮은 향로암, 그리고 정면엔 낮에는 해처럼, 밤에는 달처럼 보인다하여 지어진 일월암이 보였다.

조금 더 가보면 백운대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백운대에도 기이한 바위가 하나 있다. 집채만 한 크기의 돌이 조금만 돌 몇 개가 지탱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소금강에서는 어디서 무엇을 보든 감상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았다.

▲ 소복하게 쌓인 하얀 설원 위를 걷고 있는 취재진. 겨울철 산행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으면 좋다.
‘백발노인’의 머리에서 보는 조망 일품
계곡이 산속 깊숙이 이어졌다. 만물상을 지나 낙영폭포에 도착하니 오후 1시를 알렸다. 10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3시간이 걸린 것이다. 낙영폭포를 지나자 완만하던 등산로는 차츰 경사가 가팔라지며 일행들에게 가쁜 숨소리를 내게 했다. 조금 늦게 산행을 시작했으니 부지런히 가야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진고개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하얀 눈이 힘든 발걸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눈이 많이 오면 낙영폭포부터는 겨울철 등산 장비가 없으면 산행이 쉽지 않다. 일행들이 갔을 때는 바닥의 돌들이 살짝살짝 내비칠 정도였지만, 발목 위까지 눈이 덮여있으면 최소한 중등산화, 스패츠 그리고 아이젠 등은 반드시 착용하고 등반해야 한다.

낙영폭포를 지나 1시간 정도 오르니 노인봉 대피소가 나왔다. 부지런히 올라오느라 점심때를 놓쳐서 배도 채울 겸 잠시 쉬었다가기로 했다. 여기는 현재 무인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성량수 씨라는 산장지기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어쩌면 고독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아쉽다. 산장지기가 건네주던 그 달콤한 차와 막걸리 한잔, 그러면서 함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주고받던 추억들. 지금은 불암산 자락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만 들릴 뿐이다. 이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으리라.

▲ 지금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노인봉 대피소. 노인봉 정상에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발노인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지어진 노인봉에 도착하자 시야가 확 트였다. 짙푸른 동해바다와 강릉, 속초, 주문진 등 강원도의 온 시내가 모두 보였다. 왼쪽으로는 소황병산과 매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부드럽고, 저 멀리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도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하얗게 수놓은 오대산의 산줄기와 저 멀리 점봉산과 설악산의 장쾌한 절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몇 시간이고 이곳에 머물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진고개로 향했다. 30분 정도 평탄한 길이 이어지더니 곧이어 계단이 나왔다. 땅이 하도 질퍽질퍽하여 ‘진고개’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계단이 없었을 당시에는 오르내리기 힘들었다고 한다. 64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빨간색으로 단장한 진고개 휴게소가 보였다. 자꾸만 뒤에선 백발노인이 다시 오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 산골 마을의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으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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