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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끊고 지혜를 얻고 싶은 자, 이 산을 오르라!”
“번뇌 끊고 지혜를 얻고 싶은 자, 이 산을 오르라!”
  • 글ㆍ김경선 기자ㅣ사진ㆍ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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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오대산 국립공원 01 비로봉 트레킹

▲ 비로봉 정상. 날씨가 좋아 저 멀리 발왕산 용평스키장까지 보인다.

육산의 미덕은 부드러움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의 높이가 1563m에 달하는 데도 오대산 정상에 서면 능선의 흐름은 평평한 대를 이룬 듯 잔잔하다. 오대산은 또한 ‘불법의 산’이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상주터로 산중 곳곳에 암자를 숨겨 놓고 혜안을 번뜩인다. 산을 벗어나면 더욱 풍성하다. 이국의 풍광이 펼쳐지는 대관령과 한국적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강릉, 그리고 짙고 푸른 동해바다. 오대산, 그곳에는 풍성함이 존재한다.


상원사~중대암~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5시간30분 소요


뾰족한 바늘을 하늘 높이 곧추 세운 전나무 이파리에 상고대가 활짝 피었다. 이것이 겨울 산의 매력이었던가. 부드러운 능선을 하얀 눈이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능선의 파노라마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미혹시키는 오대산에서 문수의 지혜를 마음에 담아본다.

취재협조·오대산국립공원 033-332-6417  http://odae.knps.or.kr


▲ 정갈한 상원사 모습.

오대산은 ‘불법의 산’이다. 산 전체가 문수신앙의 도량처로 편안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여느 이름난 산에 절하나 없겠느냐 만은 이곳 오대산에는 곳곳을 지키는 사찰과 암자로 불법의 기운이 정신을 맑게 한다.

그런데 요즘은 산 속의 절집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산사의 고즈넉함도 좋다지만 원치 않는 문화재관람료로 세속의 번뇌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대산에서만큼은 이런 불경한(?) 마음을 잠시 접어도 좋다. 오방위를 지키는 암자와 천년고찰 월정사, 상원사가 마음의 근심을 잠시 내려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에 쫓겨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삶의 여유를 되찾게 한다. 산에서 절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종종 이런 정신적 호사스러움이 필요할 때면 여지없이 산이 떠오른다. 복잡한 세상살이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사찰의 평온한 향기가 내면의 시름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겨울의 오대산은 냉정하다. 부드러운 능선의 춤사위 너머로 바다를 살짝 숨겨 놓고 삼덕(三德)을 쌓은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그러나 ‘내가 덕을 쌓았는가’ 고민하며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는 사이, 혜안은 모습을 드러낸다.

지혜로운 문수의 정신이 가득한 산

▲ 계단식으로 층층이 들어선 중대 사자암.
오전 9시. 오대산국립공원으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다르다. 매서운 바람이 겹겹으로 껴입은 옷 속까지 파고들어 오늘의 산행이 녹록치 않음을 경고했다. 월정사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함께할 국립공원관리공단 오대산사무소의 김진광 팀장과 변문호 씨를 만나 상원사로 이동하는 길, 겨울의 스산함이 전이된 듯 지방도에는 차도 사람도 드물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차로 10여분. 거리가 꽤 멀어 도보로는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다행이 진부면에서 상원사까지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다닌다.

“지난주부터 몇 번 눈이 내린 후라 고지대에는 눈이 꽤 쌓여 있어요. 옷이며 장비며 단단히 챙기셔야 합니다.”

상원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플리스 재킷에 방풍 재킷을 껴입고 추위에 민감한 귀까지 단단히 감싼 후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상원사로 향했다. 절에 닿기 전 작은 다리를 지나면 상원사 가는 큰 길 옆으로 작은 숲길이 나온다. 이정표도 하나 없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찾기 힘든 이 길을 따르면 서대 염불암과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우통수(于洞水)가 있다. 측량 기술의 발전으로 한강의 발원지 자리를 태백 검룡소에 내어 주었지만 천년 넘게 민족의 정신적 발원지로서의 자리를 지킨 우통수는 깊고 단단한 물을 끊임없이 내어주었다. 묵직한 우통수의 물맛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길을 재촉했다.

상원사에서 동종(국보 제36호)과 문수목조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을 보고 중대사로 향하는 길. 완만한 비탈길이 이어졌다. 중대 사자암은 오방위 중앙에 위치한 암자로 짐승 중 가장 지혜롭다는 사자의 이름을 딴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비탈길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건물 처마 위로 흰 눈이 소복이 내려 앉아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더해 주고 있었다.

“오대산은 오(五)와 연관이 많은 산이에요.”

▲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적멸보궁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

적멸보궁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김진광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우선 오대산은 1400m 이상의 고봉 5개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요. 호령봉, 비로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중 어느 하나 튀는 봉우리 없이 평평한 능선을 이루고 있죠. 또 오대산 적멸보궁은 국내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부처님의 머리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오대산 적멸보궁에 그 귀한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배경에는 자장율사(慈藏律師)의 공이 크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신라의 고승 자장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깨닫고자 중국 오대산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직접 문수보살을 만난 자장은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고 귀국해 적멸보궁을 세워 부처의 진골사리를 모신다.

이른 아침, 적멸보궁에서는 예불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마다의 바람을 부처 앞에 내려놓으며 절을 하는 신자들의 몸짓은 시린 겨울을 녹일 만큼 간절함이 배어 있다.

▲ 비로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소복하게 눈이 쌓인 눈길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겹겹이 늘어선 부드러운 능선의 춤사위
적멸보궁을 지나자 눈이 급격하게 많아졌다. 밤 사이 제법 눈이 내렸는지 발자국조차 희미해진 뽀얀 눈길. 어린아이 마냥 신나게 밟아본다. ‘뽀드득~ 뽀드득~’ 아련한 추억의 소리를 친구삼아 부드러운 오대산에 흠뻑 취하고 나니 어느새 이마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눈이 발목까지 차오르자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힘드시죠. 그래도 운이 참 좋으세요. 날씨가 너무 맑아서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산군들이 한 눈에 보일 거에요. 오대산에서 이런 날씨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삼덕(三德)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오대산 정상의 청명한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오르는 발걸음을 재촉하니 드디어 비로봉 정상 표지석이 반겨준다.

▲ 상왕봉 정상. 춤추듯 흘러가는 능선의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운무를 걷어낸 능선 위로 바람의 춤 소리가 가득했다. ‘쌩쌩~’ 불어오는 살벌한 바람에 양 볼은 터질 듯 아려왔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오대산의 능선은 말을 잇지 못하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책으로만 보던 수묵화의 몽환적인 능선이 바로 이 모습이었으리라!

저 멀리 노인봉에서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굵고 힘찬 능선과 그 너머로 보이는 주문진의 푸른 바다. 겹겹이 줄을 선 능선의 춤사위에 허기도 잊은 기자를 향해 변문호 씨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권했다.

“여기서부터 상왕봉(1491m)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져 힘든 구간은 아니에요. 대신 바람이 무척 매서우니 옷을 단단히 챙겨 입으세요.”

▲ 7개의 줄기로 갈라져 자라난 피나무.

외로운 주목의 슬픈 노랫소리
봉우리 간의 높낮이가 크지 않은 비로봉~상왕봉 능선은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진다. 지대가 높아지면서 어느새 무릎까지 쌓인 눈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하얀 눈길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어느새 모습을 감춘다. 비로봉에서 상왕봉 사이에는 유난히 주목(朱木)이 많다. 오대산 주목은 족보까지 있을 정도로 나이가 많고 품질이 좋다는 김진광 팀장의 자랑.

“봄이면 지금 이 길에 얼레지, 복수초, 홀아비바람꽃, 투구꽃 등 아름다운 야생화가 만발해요. 숲이 깊고 오염이 적어 오대산에는 생태계가 무척 잘 보전되어 있거든요.”

▲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길. 하얀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상왕봉 정상에 오르자 동대산을 사이에 두고 446번 지방도가 구불구불 길을 내고 있었다. 오대산의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상왕봉과 동대산을 오가며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낼 텐데 지방도가 헤집듯 길을 내고 있으니 안타까웠다. 그래도 다행히 매해 11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는 차량을 통제해 야생동물들의 겨울나기가 크게 위험하진 않을 듯했다.

눈 쌓인 등산로를 썰매 타듯 내려오니 산길은 어느새 지방도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한 시간 가량 내려가면 상원사 입구. 평평한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 저편으로 앳된 이판 스님 두 명이 성큼성큼 내려가고 있었다. 저 스님들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깨달았을까?

오대산에 온 것만으로 문수의 지혜를 깨닫고자 했던 어리석은 자의 소망은 바람을 타고 달아나버렸다. 정상의 아름다움을 미끼로 우리에게 “덕을 쌓아라” 하고 말하는 오대산에 오기위해 사람들은 노력할 것이다. 자연스레 덕을 쌓게 만드는 문수보살의 이런 재치야 말로 지혜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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