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빙하호와 뾰족한 암봉의 황홀한 하모니
푸른 빙하호와 뾰족한 암봉의 황홀한 하모니
  • 글 사진·김진아 기자
  • 승인 2011.06.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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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대륙, 남미를 가다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 트레킹 셋째날 캠핑을 한 파이네 그랑데의 전경.

파이네 삼형제봉, 그레이 빙하 등 볼거리 가득한 4박5일 트레킹

파타고니아 안데스(Patagonia Andes) 산맥이 끝없이 펼쳐진 남미로의 여행.
설산이 보이는 고지에서의 캠핑생활을 꿈꾸고 있다면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으로 떠나자.
꿈같은 풍경을 거닐며 자연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풍경이 그리워진다.

글 사진·김진아 sogreen78@hotmail.com


칠레의 산티아고(Santiago)에서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로 향하는 항공기에서 내려다본 안데스 산맥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할 만큼 아름답다. 푸른색을 띠는 빙하들이 산 정상 곳곳에 자리 잡아 위용을 떨치며 서있는 안데스 산맥. 빙하가 녹아 굽이굽이 흐르는 빙하호는 그 색채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푸르러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판타지의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트레킹의 시작 지점인 호스테리아 라스토레스에서 칠레노로 이동중이다. 저 멀리 빙하호가 보인다.

세계적인 자연다큐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중 우선 순위로 꼽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속한 파타고니아는 푸른 빙하와 호수, 그 주변에 자리 잡은 드넓은 초록의 평원, 그리고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파타고니아는 남위 37도 이남 지역을 총칭하는 말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두 국가의 남쪽, 즉 콜로라도강(Rio Colorado) 이남을 가리키며 안데스에서 대서양까지 펼쳐진다.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안 안데스와 파타고니안 평원으로 나뉜다. 파타고니안 안데스는 해발고도 3500~3600m의 높은 산과 2000m 안팎의 낮은 산맥을 품고 있다. 파타고니안 평원은 평균 해발고도가 300~1000m이며, 분지와 빙하호가 많아 30여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 칠레노 캠핑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국 원정대의 반가운 메모.
파타고니아는 맑은 빙하호와 설봉들, 안데스산맥의 피츠로이(Fitzroy), 쎄로토레(Cerro Torre), 파이네(Paine)의 직벽들이 그 위용을 떨치고 있어,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등반가들이 찾는 명소다. 특히, 칠레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와 암벽 코스로 파타고니아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국립공원이다.

토레스는 봉우리란 뜻이고 파이네는 지역 이름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는 ‘파이네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로는 4~5일 일정의 W코스와 8~10일 정도의 W코스를 포함하여 외곽을 원형으로 도는 써킷(Circuit)코스가 있으며, 이 외에도 여행객의 일정과 난이도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다. 파타고니아의 절경을 음미하고 싶었던 나는 4일의 W코스를 택하여 트레킹을 준비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로 향하는 시작점인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는 장비점과 대형마트가 있는 작은 마을로 대부분의 트레커나 등반가들은 이 마을을 거쳐 파이네나 피츠로이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 대여나 식량 구입이 가능하다.

파이네 공원 내에는 캠핑장과 함께 레푸히오(Refugo)라는 산장이 있는데 트레커들이 많이 몰리는 1~2월 사이에는 예약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다.

남미의 대자연과 맞닥뜨리다

▲ 첫째날, 칠레노 캠핑장으로 향하던 길에 나타난 계곡. 빙하가 흘러내리고 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2차례 운행한다. 여행사에 신청하면 버스가 숙소 앞까지 픽업하러 온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2시간정도 평원을 달리게 되는데 운이 좋으면 차창 밖으로 펼쳐진 무지개를 만날 수도 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트레커들을 맞이하는 것은 안데스 지방에 많이 볼 수 있는 낙타처럼 생긴 구아나꼬(guanaco).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망갈 기색도 없이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미니버스로 환승하여 트레킹의 시작 지점인 호스테리아 라스토레스(Hosteria Las Torres)로 향했다.

첫날의 목표는 파이네 삼형제봉(북봉·중앙봉·남봉)의 우뚝 솟은 경관을 즐기는 것. 호스테리아 라스토레스에서 캠핑장인 칠레노(Chileno)까지 가는 구간은 파이네 봉으로 향하는 길이니 만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짐으로 인한 부담감을 줄이려면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지그재그 언덕길을 오르다 잠시 쉴 겸 뒤를 바라보니 푸른 빛깔의 호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마음을 설레게 한다.

칠레노 캠핑장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텐트를 설치했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 칠레노 캠핑장에서 파이네 봉까지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한 시간쯤 올라가니 급격한 경사의 바위 너덜길이 이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보니 한 폭의 그림처럼 3개의 화강암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이곳에서는 커다란 콘도르(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맹금류)가 날개 짓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콘도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파이네의 삼형제봉을 뒤로 하고 칠레노 캠핑장에서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람이 거셌다.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빗방울로 쉽게 잠이 오지 않는 파이네에서의 밤이다.

▲ 아름다운 페호 호수의 모습.

무지개빛 품은 파타고니아의 호수
지난밤에 내렸던 비가 무색하게 하늘이 맑다. 텐트 밖으로 보이는 파이네 봉우리들은 서로 위용을 뽐내느라 바쁘다. 오늘은 이탈리아노 캠핑장까지 6시간의 구간을 이동해야 한다. 칠레노에서 이탈리아노 캠핑장까지 가는 구간은 파이네 트레킹 코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눈 덮인 화강암 봉우리들이 ‘우르르쾅쾅’ 소리를 내며 빙하를 흘려보내고, 왼쪽으로는 옥빛 호수가 흐르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눈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구아나꼬나 작은 타조 같은 냔두(Nandu)가 나타나 동화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걷는 중간중간에 만나는 호수의 색상도 다양하다. 호수들은 성분에 따라 그 빛깔이 초록색에 황토색까지 다양한데, 일부 호수는 2가지 이상의 색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내일 만날 페호(Pehoe)호수는 호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규모가 큰데, 가장 긴 구간은 17km에 달한다고 한다. 수심도 280m나 되어 잔잔한 파도까지 치고 있을 정도니 아름다운 암봉만큼이나 파타고니아를 아름답게 하는 존재다.

▲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설치된 멋스러운 나무 다리.
이탈리아노 캠핑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편의시설이 없지만 캠핑장 주위로 계곡물이 흘러 식수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탈리아노 캠핑장에서 보이는 파이네의 최고봉 파이네 그랑데(3050m)는 허허벌판에 솟아오른 봉우리로 머리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고, 그 주위로 안개가 둘러있어 신비롭다. 가만히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굉음을 토하며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파이네 그랑데에서 흘러내린 빙하는 프란세스 빙하(Frances Glacier)라고 한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다면 한 시간 정도 브리타니코(Britanico) 캠핑장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왔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이동중에도 그칠 줄을 모르고 내렸다. 햇살이 따사롭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가 하면, 때로는 우박을 쏟아내기도 하는 곳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다.

비가 세차게 퍼붓다 멈추고 나니 파이네 그랑데의 설봉 위로 무지개가 그려졌다. 2시간을 걸으니 파이네 그랑데 캠핑장이다. 트레커들을 반기는 것은 한 무리의 새끼 냔두들. 캠핑장은 우천 시에도 조리 가능한 취사실인 퀸쵸(Quincho)를 비롯하여 샤워실, 화장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비가 그쳐 텐트를 설치하고 W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그레이 빙하(Grey Glacier)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캠핑장에서 그레이 빙하까지 향하는 길은 위험한 낭떠러지 길로 바람이라도 강하게 불면 몸이 휘청거릴 정도이니 주의를 기울여야했다. 길은 험하지만 왼쪽으로는 그레이 빙하가, 오른쪽으로는 삐죽삐죽 솟아 있는 파이네 그랑데와 올후인 빙하(Olguin Glaciers), 로스페로스 빙하(Los Perros Glaciers)가 있어 눈과 발이 동시에 바빠졌다.

▲ 파이네 그랑데 초입에서 트레커들을 맞이하는 냔두.

캠핑장에서 3시간 정도를 오르면 그레이 빙하 전망대가 있다. 트레킹이 힘들다면 전망대에서 빙하를 관찰하고 다시 캠핑장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파이네 공원에는 빙하만 12개가 있는데 남극과 그린란드 다음으로 큰 규모다. 캠핑장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하면 빙하 위를 걸어갈 수 있는 그레이 빙하 트레킹이 가능하다.

▲ 파이네봉을 배경으로 함께 트레킹을 했던 요리사 개빈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파이네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파이네 그랑데 캠핑장에서 하루 정도 여유를 부리며 자연을 느끼는 것도 좋다. 특히 일몰을 절대 놓치지 말 것! 하늘과 설봉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파이네의 노을은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다.

파이네 그랑데 캠핑장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공원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파타고니아 호수를 배로 건너보고 싶어 파이네 그랑데에서 페호 호수로 향했다. 여름시즌에는 매일 2회 정도 운행하지만 비수기에는 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캠핑장에 있는 매표소를 통해 일정을 확인해 봐야한다.

푸른 호수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데 저 멀리 파이네의 설봉들이 차례차례 작별인사를 건네 왔다. 파타고니아의 푸른 초원과 설봉, 빙하를 뒤로 한 채 생각한다. 다시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면 조금 더 오래 캠핑생활을 즐기겠다고.

▲ 파이네 그랑데와 올후인 빙하의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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