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빛의 폐광촌에도 별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흑빛의 폐광촌에도 별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6.27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골일기 14

▲ 청소년 극 ‘사랑의 빛’을 연습하고 있는 흑빛 청소년문화센터 어린이들.

지난 며칠간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마당의 굵은 잣나무 가지가 쌓인 눈 때문에 휘어진 걸 보니 며칠간 바깥나들이는 어려울 듯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선에서 만난 친구인 연극배우 김광용(36) 씨의 초청으로 고한에 위치한 흑빛 청소년문화센터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어서 오전 내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약속이 약속인지라 어렵사리 마음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작년 4월에 운전면허를 처음 취득한 초보운전자인 제가 눈길을 운전한다는 것은 정말 죽기를 각오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지라 해도 워낙 제설 작업이 잘 되는 정선 지역인지라 집에서 나오는 길만 조금 어려웠을 뿐 국도로 접어드니 언제 눈이 왔냐는 듯 도로가 멀쩡해 아침 내내 한 고민이 참으로 머쓱하였습니다.

▲ 방과 후 갈 곳 없던 폐광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고한성당 신부님과 주민들이 애써서 만든 흑빛 청소년문화센터. 시설이 너무나도 훌륭해서 참으로 놀랐습니다.
흑빛 청소년문화센터는 1993년 고한성당 수녀님들과 신자들의 도움으로 처음 생긴 후 광산촌 청소년들의 방과 후 교실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지난 2001년 도로 신설로 기존의 공부방이 헐리게 되자 고한성당으로 옮겼다가 작년 3월에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으면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고한성당 신자들과 천주교 원주교구, 정선군, 지역민간단체가 협력해서 마련한 이 센터는 폐광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과 지역주민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정배 신부님이 센터장님으로 계시고, 총 여섯 분의 선생님들께서 이곳에 오는 아이들 60여 명의 방과 후 시간들을 책임지고 계시답니다. 아이들은 학교 끝나는 시간에 와서 저녁 8시까지 이곳에서 지내며 즐거운 방과 후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를 초대한 김광용 씨가 내일 있을 아이들 스키 캠프 준비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공부방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곳저곳을 안내받고 보니 참으로 훌륭한 시설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이들이 춤을 출 수 있는 춤 연습실도 있고요, 도서실, 악기 연습실, 미술 작업실, 그리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미디어 실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연극 연습을 하는 공연장은 하늘과 별을 담아 이름을 ‘별별’이라고 했다는데, 별별 걸 다하고 싶은 마음에 지어진 이름이기도 하답니다.

▲ 정선에서 만난 연극배우 김광용 씨. 정선문화원에서 피리를 가르치는 피리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연극배우 김광용 씨는 지난해 고한성당에 들렀다가 신부님과 인연이 닿아 이곳의 어린이들에게 ‘사랑의 빛’이란 연극 대본으로 연극을 가르치고 있는데 연극의 내용은 자신을 희생하여 빛을 얻는 개똥벌레 이야기입니다.

연극 연습을 위해 모인 김광용 씨와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자니 아이들이 이런저런 질문들을 제게 쏟아 냅니다.

“아줌마 기자에요?”

“아줌마 사진 찍으면 사진 주실 건가요?”

“유명한 책인가요?”

일일이 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 그러나 아이들은 금세 자기들이 한 질문은 잊고 다시 다른 호기심을 발동합니다. 반딧불을 맡은 어린이는 제게 전구가 달린 반딧불 엉덩이를 보여주며 자랑도 합니다.

▲ 연극 연습을 하는 도중에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서 함께 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다들 연습에 열중,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은 천연덕스럽게 반딧불로, 나비로, 귀뚜라미로, 별님으로 연기를 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자랑스러운 아이들의 공연 장면을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연극은 ‘검은 하늘에서 더욱 빛나는 별들 흑빛 청소년문화센터 별들의 잔치’라는 이름으로 흑빛 청소년문화센터에서 2008년 1월18일 오후 6시에 펼쳐졌습니다.

강원도 오지 산골마을에서 탄광촌으로, 폐광촌으로, 그리고 다시 카지노로 변한 사북·고한 그 어두운 흑빛 폐광촌에 빛나는 별들이 있다면 바로 청소년들입니다. 그 청소년들이 더욱 빛을 발하게 도와주는 흑빛 공부방 선생님들이나 김광용 씨가 있어 흑빛 천지인 이곳에도 희망의 별빛이 반짝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