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인 까닭은?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인 까닭은?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6.27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골일기 15

▲ 어색한 자세로 사진에 찍히신 마을 어르신들. 맨 앞에 나선 어르신의 표정이 장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입춘이 지나고 양지쪽 버들강아지가 눈을 틔우려는 요즈음, 마을 뒤편 가리왕산 하봉 밑 산야에 들어서려는 목장 때문에 온 마을이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그 목장은 정선 읍내 아파트 단지 옆에 있어서 늘 민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기 전부터 있었던 목장이라 주민들의 민원에도 꿈쩍 않고 있다가 작년에 정선군에서 목장을 강제 이전을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먼저 내세우는 사회 분위기가 대부분인 요즈음, 이전하려는 목장은 가려는 곳마다 주민들의 반대로, 이전할 땅을 매입했다가 포기하기를 여러 차례 하다가 이번에는 제가 있는 마을에서 가까운 정선읍 용탄1리와 용탄2리에 있는 실론이라는 곳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라고 욕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축사가 들어오면 그 냄새가 산을 타고 넘어와 마을을 점령하고 그 때문에 생기는 파리떼나 모기떼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마을 주민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며 목장 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더군다나 이 산 밑에는 농사를 짓는 땅이 대부분이고 또 마을 사업인 된장공장이며 김치공장 등이 있어 목장이 들어서게 되면 수질 오염도 큰 걱정이라 주민들은 더더욱 목장 이전을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있습니다.

▲ 농협에서 주관하는 마을 영농회. 가운데 앉아 설명하시는 분이 농협 과장님입니다.

오늘 용탄1리 마을회관에서는 마을의 일 년 농사 계획을 세우는 영농회와 목장 이전 반대를 위한 주민들의 모임이 있어,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용탄1리 마을회관을 방문을 했습니다.

정선에 내려 온 지 5년이나 지난 저도 마을 영농회는 처음 보는 행사인데 농협에서 주최하는 마을 영농 자금 대출 설명회 같은 성격을 띠고 있더군요, 달리 농사도 안 짓고 농협하고는 이런저런 통장 거래 밖에 없었던 저로서는 농민들에게 돈을 가져다 쓰라고 아주 고운 목소리로 설명하시는 농협 과장님의 모습이 영 낯설었습니다.

▲ 모든 일이 끝나고 함께 나누는 한 그릇의 메밀국수.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영농회는 농협에서 농협 돈을 대출해 쓰시는 농민들 자녀 가운데 두 분께 장학금을 드리는 걸로 시작을 했습니다. 농협에서 준비한 30페이지 가량의 팸플릿 내용을 어르신들이 행여나 못 알아들으실까 글자 한 자 빠짐없이 아주 쉽게 설명하느라 두 시간을 보내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모여 목장 반대를 위해 마을에서 맞춘 플래카드 앞에 서서 다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린 사진 찍기 위해 주먹 같은 건 안 들꺼야? 그래도 되지??”

“그럼요. 되구 말구요.”

“그럼 다 이리 모여. 안 오는 사람은 반대 안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모이신 어르신들이 열다섯 분 내외.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은 부엌에서 점심 준비 하시느라 사진 찍는 데 안 나오셨습니다.

오늘부터 용탄1, 2리 주민들은 목장 이전 반대를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시려고 합니다. 데모는 대학생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인 이 투쟁이 이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고 다들 한 목소리를 모아 봅니다. 정선 군청에서 이미 허가를 내 줬다고 해도 계속 힘을 모으다 보면 봄이 오겠지요.

마을 어르신들 마음에 더 이상의 상처가 없이 이번 일이 주민 모두가 원하는 쪽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봄바람에 실어 높은데 계신 나으리들께 보내면 좋은 수가 생기기도 하려나요? 봄바람과 함께 좋은 소식이 이 산골에 날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