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과 장비점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_도봉산 유원지 기점
산꾼과 장비점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_도봉산 유원지 기점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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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05 산 동네 이야기

서울 도심을 품고 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얼굴, 북한산과 도봉산. 이 중 교통이 편리해 각양각색의 등산객들이 몰리는 도봉산에는 브랜드 매장부터 저렴한 ‘리어카 매장’까지 많은 등산 장비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의 오름짓이 주를 이루는 북한산 도선사 기점은 역시 브랜드 매장이 주를 이루지만 20여 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등반장비 위주의 토털 장비점들이 터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산과 산자락의 장비점.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산자락 장비점에 둥지를 튼 산꾼들이 아닐까?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유원지 기점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에서 내려 걸으면 바로 도봉산 자락이다. 찾는 이들이 워낙 많아 지하철 광고판에 ‘도봉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 달라’는 문구가 붙어있을 정도인데,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사람들의 발길은 끊일 줄을 모른다. 찾는 이가 많은 만큼 장비점도 다양할 터. 산이 좋아 산을 찾던 이들 중 아예 산자락 장비점에 터를 잡은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산은 더 이상 ‘바라보는 그대’가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야 할 ‘동반자’다.


<네파> 구은수 점장

1994년, 대한민국 육군 구은수 중사는 정승권 등산학교에 입교해 본격적인 오름짓을 시작한다. 군대에서 암벽교육을 받던 중 남다른 재미를 느꼈기 때문. 그리고 제대하면서 바름산악회에 가입한다. 이때 산악회는 원정 준비중이었고,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구은수 점장은 원정팀에 합류해서 1996년 맥킨리로 첫 해외원정을 떠난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1996년 이후 거의 해마다 원정을 떠난 구 점장은 사실, 노는 것이 좋아서 따라갔다고 한다. 선후배들과 함께 어울려 등반하고, 둘러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산이 좋아 시작했지만 결국 여직 그곳을 떠나지 못한 것은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충북 제천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구 점장은 까까머리 중학 시절부터 시내에서 하숙을 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만 하는 산은 구 점장에게 떨어질 수 없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가 엄마품을 그리워하듯이 산과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구 점장에게는 또 하나의 품이었으리라.

1996년 맥킨리(6194m)를 시작으로, 무크트파르밧(7130m, 한국 초등), 아비가민(7355m, 루트 초등), 시샤팡마(8027m) 남벽, 칸첸중가(8603m), 브리그판스(6772m, 한국 초등) 등반에 이어 2003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등정으로 이어지는 고산등반 경력의 소유자인 그는 2006년 <네파>원정대로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 등정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해부터 <네파> 도봉산점의 점장으로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일주일 중 주말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매장에 있다고. 그렇게 훌훌 돌아다니던 이가 한곳에 매여 있는 것이 갑갑하지 않냐고 묻자 <네파>에서 진행하는 ‘등반열전’ 빙벽 촬영으로 틈틈이 등반을 하고 있다며 말을 잇는다.

“산 아래 있으니까 선배들이 후배들이 지나가다 들러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건 참 좋은데 나는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요. 허허.”

산이 좋아 산을 찾았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이 좋아 산을 떠날 수 없었다. 이제 그 산에서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는 그에게 올해 5월 로체남벽 정찰 등반 계획이 잡혀있다.


<에코로바> 권순재 점장
열아홉, 까까머리 소년이 산악회에 가입한다. 취업은 100%로 보장된다는 선배들의 꼬임(?)에 빠져서. 그리고 4년 후인 1993년, 소년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피츠로이(3441m) 정상에 선다.

도봉산 자락 <에코로바>의 권순재 점장의 이야기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자그마한 키에 앳된 얼굴로 고객을 맞는 그를 점장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인터뷰 중에도 유독 권 점장에게만 질문을 하는 여성 고객들을 보니 장난기가 발동한다.

“주부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으신가 봐요?”

짓궂다면 짓궂은 질문을 받아들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에 열아홉 소년의 산행이 그려진다.

고교 졸업 후 현역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신기하게 단기사병소집 통지를 받은 그. 취사병으로 배치된 덕에 이틀을 근무하면 하루 휴가를 받을 수 있어 남들 같으면 공백기가 생길 군생활 동안 등반에 더욱 탄력이 붙게 된다. 쉬는 날이면 인수봉으로 가 혼자서 줄을 묶고 바위에 올랐다.

군복무를 마치자 산악회에서 피츠로이 등반계획이 나왔고 권 점장은 공사장에 취직해 막노동을 하며 원정에 필요한 분담금 300만원을 모았다. 당시 주말이면 설악산에서 원정훈련을 했는데 최정희 선배가 그를 태우고 오가며 등반을 했다고.

피츠로이 등정 후 1994년 권 점장은 <에코로바>의 전신인 남대문 <메아리산악>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검악산악회와 함께 북미 맥킨리 산군의 헌터봉 북서벽, 맥킨리 웨스트버트레스, 헌터봉 북벽, 시샹팡마 남서벽 등을 시도했다.

일을 하면서 등반을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그렇게 끊임없이 산을 찾던 그이지만 1999년 결혼을 하면서 이전처럼 산에 매달리지는 못한다. 소중한 아이와 아내를 둔 남편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기에.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

“산보다 더한 중독이 있더라구요. 가족은 제게 새로운 중독을 선물했죠.”


<노스페이스> 방기득 점장
대학 산악부 출신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방학 때 장기 훈련에 들어 갈 때면 산에 오르기 전 후배들 돈을 다 뺏는다고. 왜? 도망갈까봐. 고된 훈련에 지친 후배들은 맨몸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잡혀 온다고.

그를 만나기 전까지 바람결에 들리던 이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 솜사탕처럼 보송보송 부풀어 오른 어느 빛나는 한 때의 치기어린 무용담. <노스페이스> 도봉산점의 방득기 점장의 대학시절은 그 전설과 붕어빵처럼 꼭 닮아 있었다.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던 대학 신입생 시절 방 점장은 멋모르고 제 발로 산악부에 가입한다. 산이 좋기도 하고 관심도 있었다고. 산에 가면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였을까? 스무 살 그는 산에 푹 빠져버린다. 결국 산악부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는 나이 서른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노스페이스>도봉산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대학 신입생, 스무 살의 그는 사람들과 산에 가는 것이 참 좋았다며 말을 이었다.

“이유 없이 깨질 때도 있었지만 그 왜 있잖아요? 끈끈한 것. 울컥 하는 것. 그냥 이유 없이 따뜻해지는 거요. 스무 살 처음 떠난 동계산행은 아직도 생생해요. 죽어라 걷고, 빙벽하고, 또 죽어라 걷다가 밤이면 둘러 앉아 허기를 채웠어요. 그게 단순히 배만 채운 게 아닌가 봐요. 힘들어서 도망간 적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만 생각하면 든든해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명성 자자한 선배들도 있는데 원정에 갈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원정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삐뚤 빼둘 낯설고 날선 스물 언저리에 만난 산은 그에게 동반자였다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고 싶다며 말을 이었다.

“천천히 꾸준하게 오래오래 사귀고 싶어요. 매장도 산처럼 대하려구요. 매출이야…. 아고 머리야, 진심이 통하면 다 오르는 거라구요. 굳이 잔머리 쓸 필요 있나요?”

2002년 10월 박영석, 유진욱, 방기득 동국대 산악부 OB의 합작품 <노스페이스>도봉산점은 오픈 당시 박영석 대장의 매장이란 소문에 박대장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고. 살짝 귀띔하자면, 박영석 대장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이다.
 

<예솔스포츠> 신석 점장

광운고 산악부 출신인 신석 점장은 1986년, 까까머리 고교생 시절 산을 만났다. 본인이 원했다기 보다는 선배들에게 착출(?) 당해서 찾게 된 산이었지만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 취해 20여 년 넘게 산과 함께 하고 있다. 산 밑 현실에 있을 때에도 산을 동경하고, 산에 안겨 있을 때에도 산이 그립다는 신 점장은 스키, 스노보드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아웃도어 마니아.

“바닷가는 일주일만 있으면 지루해져요. 그런데 산은 한 달, 일 년을 있어도 좋더라구요. 병이죠 뭐. 상사병.”

이렇게 산이 좋아 결국 그 안에 터를 잡고 현실과 동경을 한 곳에 모아 살아가고 있는 그는 산 가까이에서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활하는 대신 온전히 산에 안길 기회는 줄어들었다며 아쉬워했다. 매일 옆에서 바라보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끙끙 앓아대는 짝사랑 소년의 벙어리 냉가슴이랄까.

“제가 산을 좋아하고 자주 찾았던 사람이잖아요? 상품 판매도 중요하지만 산을 찾는 고객들에게 그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제품을 권하는 것. 그게 우선이에요.”

장비를 사러 온 고객에게 장비를 파는 것이 무에 대수겠냐만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그 안전의 기본은 처음 등반을 시작할 때 형성된다며 그는 인터뷰 내내 기초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산에 다녔던 그의 동지애이기도 하고 또 장비점 점장으로서의 긴 안목이기도 하다. 눈앞의 매출보다는 고객들과의 신뢰감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산장풍의 매장에는 평일 이른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물건을 보러 온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동행하는 이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별 거리낌 없이 매장에 들어와 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머무르다 일행이 오자 가벼운 인사로 자리를 떴다. 통유리로 들어오는 볕이 제법 따뜻했다.


<엑셀시오> 황기수 점장

2006년 5월부터 <엑셀시오> 도봉산점에 몸을 담은 황기수 점장. 그는 입사 초기 테크니컬 매니저로 근무할 당시부터 고객들과 빙벽등반을 하는 등 익스트림 아웃도어를 경험해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더해 고객을 맞았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기능성 의류와 장비에 관한 상담을 전담하는 그는 암벽, 빙벽 뿐 아니라 산악스키, 산악자전거 등 산에서 즐길 수 있는 대부분의 아웃도어를 섭렵하고 있다.
1988년 코오롱 등산학교 정규 암벽반을 이수하며 본격적으로 암벽등반에 발을 들여 놓은 그는 그저 자연이 좋아 산을 찾았다고 한다. 산으로 들로 바람처럼 떠돌다가 매트리스 한 장 깔고 앉아 바라보는 풍경에 세상 시름 따위는 모두 잊었다고.

처음부터 산이 좋아 찾아다닌 만큼 그는 자연에 대한 어떤 사심도 없다. 그저 좋고, 편안하니 찾을 뿐이다. 그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도 뛰어넘어야 할 한계도 아닌,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20년 넘게 산과 함께 해온 그에게 ‘꿈’을 물으니 또 산이다.

“기회가 된다면 6000미터급 벽등반을 자비로 도전하고 싶어요. 8000미터급이야 이미 많은 원정대가 하고 있는 걸요? 저에겐 자비로 등반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스스로 해보자는 거죠. 스폰을 받고 등반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거야 뭐 할 사람도 많고 하니….”

청암산악회 소속인 그는 1997년 트랑고타워 원정을 다녀왔다. 말끝을 흐리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때에도 그가 책임져야 할 이들이 없다면 꼭 한번쯤 자비로 벽등반을 하겠노라 말하는 그의 코앞에 8박9일짜리 샤모니 몽블랑 산악스키 계획이 잡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을 물었다. 해외원정이나 그럴싸한 장소를 기다리며 받아 적을 준비를 하던 기자에게 답한다. “저는 기나긴 산자락을 휘적휘적 걷는 게 좋아요. 후배 둘과 함께 갔던 설악산이 생각나는 군요. 빨리 걸을 필요도 없고 빨리 오를 이유도 없던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그래도 “이제 산꾼보다는 장사꾼이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은 선인봉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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