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목이 타는 산골
한파에 목이 타는 산골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4.06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굴삭기를 동원해 언 수도관을 녹이는 작업 중입니다. 응달쪽 라인에 있는 댁들은 모두 물이 얼어 버려 따뜻한 봄이 오기 전까지는 수돗물을 쓰기는 어려운 사정입니다.

도대체 3한4온이라는 우리나라 겨울 기온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로 실종된 걸까요? 추워도 너무 추운 올해 겨울. 3한4온 대신 1월 한 달 중 3주는 영하 20도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기온 덕분에 이 산골은 때 아닌 물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초겨울에 눈이 자주 내려 작년 같은 겨울 가뭄은 없으리라 모두들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 연일 계속 되는 강추위에 산에 쌓여 있는 눈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대기로 증발해 버리는 것입니다. 칼바람에 계곡의 물도 얼어버렸고요. 상수원의 물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는 소식에 모두들 작년 같은 가뭄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 석탄을 캐던 광산이 있던 우리 동네는 땅을 파면 검은 흙이 나오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넉넉지 않은 물 사정이라지만 그래도 수돗물이 나오니 안심하며 겨울을 견디고 있던 우리 마을. 이번에는 기나긴 한파로 마을 각 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메인 수도관들이 얼어 버려 마을 곳곳에 식수난들이 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1m도 넘게 파서 뭍은 수도관이 얼어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게지요.

수도관이 얼어 버리고 나니 온 마을은 물난리. 정선 상수도 사업소에서 임시로 노출된 수도관을 가설하거나 언 수도관들을 녹이는 작업을 2월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희 집은 양지 바른 남향인데다가 겨울이면 늘 긴장하고 수돗물 관리를 하던 터. 덕분에 제대로 물이 나오는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였지요. 그동안 이 산골의 겨울을 지내며 노하우가 쌓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처음 정선에 내려오던 해, 서울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저는 물 걱정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겨울을 시작했답니다. 물이 얼어 간이 상수원에서 집까지 수돗물 연결 호수를 몇 번이나 새로 가설했는지 셀 수도 없지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산골 생활인지라 수도꼭지를 통해 들어오는 물은 곧 돈이라는 느낌이어서 수돗물을 잠그고 물을 아끼다가 정말 여러 번의 물난리를 겪고 또 겪었습니다.

▲ 마사회에서 지원한 급수 차량 2대가 정선지역에 투입되어 집집마다 물을 날라다 주어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게 합니다.

노출된 수도 배관이 얼어서 배관을 다시 하는 경우는 그래도 가벼운 경우. 어느 해 겨울에는 하수관이 얼어서 물이 안내려 가는 정말 혹독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겨울에는 보일러로 들어가는 배관이 얼어붙어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다 보니 서울에서는 알지도 못하던 수도 배관이니 보일러 배관이니 하수관 매설이니 하는 단어들을 입에 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웬만한 고장이나 상황쯤은 끄덕도 없는 산골 아낙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같은 산골이지만 더 깊숙한 산골인 ‘임계’라는 동네에는 온 동네가 수돗물이 안 나와 마을 회관에 모여 생활하기도 한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합니다. 계곡물을 쓰던 집에서는 계곡까지 얼어 버려 겨우내 우리집에 빨래를 하러 오는 주민도 있습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물 고생하는 겨울은 처음”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제 긴 겨울이 물러갈 즈음이면 봄이 오겠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름이 그 뒤를 이을 겁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계절이 변하는 자연의 순리가 어쩌면 물 때문에 고생하는 이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하는 힘은 아닐까 싶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