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강변에 피어난 동강할미꽃
아라리 강변에 피어난 동강할미꽃
  • 글 사진 |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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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16

▲ 동강 뼝대에 피어난 동강할미꽃. 이 꽃은 석회암 절벽에서 자라는 희귀식물입니다.<사진=정선군청 관광문화 포털 사이트 www.ariaritour.com>

봄볕이 참 따사롭습니다. 오늘은 동강의 봄을 부르는 동강할미꽃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아직은 때가 일러 음지쪽에 있는 꽃들은 꽃망울만 맺혀 있지만, 양지쪽에 있는 꽃들은 기지개를 활짝 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할미꽃을 한자로는 백두옹(白頭瓮)이라 쓴다고 하지요. ‘머리가 하얀 노인’이라는 뜻인데 그 이유는 꽃이 지고 맺힌 홀씨가 마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머리카락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할미꽃의 꽃말은 ‘슬픈 추억’, ‘충성’입니다.

이중에서도 ‘슬픈 추억’은 할미꽃의 전설과 연결이 되지요. 부잣집으로 시집 간 딸에게 얹혀살던 어머니가 이런 저런 구박에 쫓겨 가다시피 작은 딸 집으로 가게 되어 길을 나섰다가 객사를 했답니다. 그 어머니가 묻힌 무덤가에 피어난 꽃이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지요.

▲ 동강변 귤암리 마을 주민들, 모두가 동강할미꽃 보존회 회원들입니다. 맨 왼쪽에 서 계신 분이 회장님이신 김형태 님입니다.

그러나 동강에 피는 할미꽃은 무덤가에 피어나는 허리 굽은 할미꽃과는 달리 석회암 절벽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할미꽃에 얽힌 전설보다 더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자연적인 것은 자연 안에 있어야 더 아름다운 것인데, 동강할미꽃을 무분별한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채취해 가면서 처음 학계에 보고 된 1997년 당시에 3000본이나 되던 동강할미꽃의 개체수가 지금은 겨우 800여 본 밖에 안 남았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강할미꽃 서식지 주위의 마을인 정선읍 귤암리 주민들 모두가 동강할미꽃의 멸종을 막기 위해, 처음 꽃을 발견한 사진작가 김정명 선생을 모시고 지난 2005년 11월에 ‘동강할미꽃 보존 연구회’를 창립하여 동강할미꽃 서식지를 지키고 있어 그나마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 동강할미꽃과 함께 정선 동강 주변에서만 자라고 있는 동강 고랭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선 황새풀’로 불렸으나 이영노 박사가 ‘동강 고랭이’라고 이름을 붙여 학계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동강할미꽃이 피어나는 무렵이 되면 3월22일부터 4월22일까지 한 달 동안 평일에는 2인1조, 주말에는 3인1조의 감시단으로 동강할미꽃 서식지 근처를 지키고 있지만 무분별한 체취 말고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진가들의 횡포도 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으며 꿀벌을 불러 온다고 꽃에다가 꿀을 바르기도 하고 석회암 절벽에 사는 동강할미꽃을 찍는다고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절벽으로 올라가며 다른 식물들을 밟아버리고 있는 일도 모자라 사진을 찍거나 다른 사람이 못 찍게 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찍은 동강 할미꽃을 잘라버리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무조건 자기만 취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만행이 동강의 뼝대(강원도 사투리 절벽을 뜻함)에 어렵게 자라고 있는 동강할미꽃의 멸종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지요.

▲ 석회암 뼝대에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자라나는 동강 할미꽃.

동강의 귤암리 주민들이 대부분인 동강할미꽃 보존회 회원수는 35명, 하지만 이 숫자로는 동강할미꽃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바꾸고 동강할미꽃을 귀하게 여긴다면 귤암리 주민들이 노심초사, 하던 농사일을 제쳐두고 동강 변을 서성이는 일이 없을 텐데…. 동강할미꽃을 멸종위기 식물로 만들어 동강할미꽃의 체취하면 법적으로 무거운 벌이 가해 졌으면 좋겠다는 귤암리 주민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참, 오는 4월12일과 13일 이틀간 동강할미꽃이 자라고 있는 동강에서는 귤암리 주민들이 주최하는 ‘동강 할미꽃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동강할미꽃을 보러 오시는 분들께 동강할미꽃의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개최한다는 이 축제가 성황리에 치러져서 동강 주변에서 노심초사하는 귤암리 주민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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