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 ① 보길도 트레킹
완도 - ① 보길도 트레킹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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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낙원에서 즐긴 봄의 향연

▲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세연정의 고고한 분위기를 더해줬다. 청록빛 못에 둘러싸인 세연정은 소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 정자다.
겨울에 핀 동백이 봄이 돼서야 지는 보길도는 동백의 섬이다. 화사한 꽃송이가 겨우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길가에 붉은 주단을 깔아 놓는 듯한 아름다운 섬. 남도의 끝자락, 멀고 먼 섬마을은 그 거리만큼이나 이국의 땅처럼 신선함이 가득하다.

3월의 보길도는 어느새 훌쩍 자란 보리와 상록활엽수로 이미 봄빛이 완연하다. 뭍에서야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보길도는 푸근한 봄기운이 한창이다. 무엇보다 섬 어디에서고 지천인 동백꽃의 향연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의 마음을 훌쩍 빼앗을 만큼 아름답다.

보길도는 윤선도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 직후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것을 개탄하며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을 결심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윤선도는 폭풍을 만나 잠시 보길도에 머문 후 섬의 수려한 풍광에 반해 이곳에 거처를 삼았다. 그리고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세연정과 동천석실 등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 놓고 시를 읊으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윤선도가 머문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섬에는 고산의 향기가 가득하다. 동백의 꽃길을 따라, 고산의 흔적을 찾아 발품을 팔며 섬을 돌아보면 그 자체가 휴식이다. 지나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든 고립무원의 섬에서 자연과 대화하며 섬의 소박함에 안거할 수 있는 보길도의 봄.

은거의 유혹 불러일으키는 비경

▲ 부용동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보길도. 계곡물도 티 없이 맑기만 하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뱃길로 40분 거리.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에 연도교가 놓이면서 완도에서 떠나는 배편은 모두 노화도로 들어간다. 노화도에 도착하니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보길도행 버스가 기다린다. 보길도까지는 10여km. 버스로 15분이면 보길도에 닿는다.

보길면소재지에서 세연정~동천석실~큰길재~예송리해수욕장을 거쳐 다시 보길면소재지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트레킹 코스를 잡았다. 배 시간의 제약을 받는 여행객들에게 당일로 보길도 곳곳을 돌아보는 코스는 벅차다. 보길도 여행의 핵심인 세연정과 동천석실, 예송리해수욕장을 둘러보는 4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무난하다.

▲ 몽돌해안이 이색적인 예송리해수욕장.
나루터를 출발해 세연정으로 향했다. 뭍과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탓일까. 토요일 아침인데도 섬은 인적이 드물다. 아무리 교통 사정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수 시간 차를 탄 후 다시 배를 갈아타고 들어와야 하는 보길도는 멀고 먼 섬임에 분명하다.

나루터에서 20여 분을 걸으니 세연정 매표소다. 세연정은 윤선도가 사랑한 정원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정자 곳곳에 가득하다. 고즈넉하면서도 담백한 세연정의 아름다움은 우리나라의 3대 정자로 꼽힐 만큼 일품이다. 화려한 치장으로 무장한 서양의 건축물에 비하면 소박한 듯 보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려낸 우리의 정자는 포근하고 호젓하다.

싱그러운 동백나무와 푸릇한 대나무가 빽빽이 둘러싼 입구를 지나 세연정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생명이 호흡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못이 사방으로 둘러싼 정원 한 가운데 소박한 멋이 깃든 세연정, 못에는 청록빛 물이 세차게 흘러들어 커다란 바위를 휘감아 돌았다. 이 비경을 보고 있자니 물아일체에 빠져 시 한 수를 읊는 윤선도의 모습의 눈앞에 선하다. 술과 책을 벗 삼아 화조풍월을 감상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부용동 조망하는 동천석실

세연정을 지나 부용동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길, 도로를 따라 동백이 완연하다. 유난히 싱그러운 초록잎 사이로 붉디붉은 동백의 화사한 꽃망울이 눈을 맞춰왔다. 길가에도 붉은 주단을 깔아놓은 듯 곳곳에 동백 꽃잎이 떨어졌다. 보길도에서야 어딜 가나 동백꽃이 눈에 치이지만 세연정에서 동천석실로 이어지는 길은 유난히 동백나무가 아름답다.

세연정에서 20여 분, 오른쪽으로 산 중턱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동천석실이 눈에 띈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한 칸짜리 정자는 고산이 사색을 하고 책을 읽고 다도를 즐기던 장소다. 산길을 따라 10여 분 가파른 오르막을 걸으니 부용동 마을이 한 눈에 조망되는 동천석실이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정면에 수리봉에서 격자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 다시 한 번 마음을 달래주니, 욕심마저 사라진 가슴에는 고산이 느꼈음직한 자유로움이 자리했다. ‘산과 들이 둘러 있어 바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물과 돌이 절승하니 물외의 가경이라’ 말했던 윤선도의 말처럼 섬의 한 가운데로 들어서자 바다의 풍경은 온데 간데 없고 평안한 농촌의 모습만 가득하다.

동천석실 아래서 길은 서쪽의 정자리로 넘어간다. 예송리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로를 벗어나 섬 남단을 횡단하는 능선을 넘어야한다. 곡수당과 낙서재 방향 이정표를 보고 샛길로 5분 정도를 들어가니 곡수당터다.

곡수당은 고산의 아들인 학관이 공부하고 휴식하던 공간으로 현재 초당과 평대·연지·다리·월하탄 등을 복원해 놓았다. 곡수당에서 바라보니 낙서재터는 한창 복원공사중이다. 보길도가 윤선도의 섬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곡수당터 옆으로 큰길재로 향하는 산길이 잘 다듬어져있었다.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해있는 만큼 등산로 정비가 깔끔하다. 다소 완만한 산길을 따라 20여 분 오르자 큰길재 정상이다. 서쪽의 격자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동쪽의 면소재지·예송리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사거리다.

▲ 세연정에는 동백나무가 많다. 선홍빛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이 세연정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예송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스산했다. 오후가 되면서 서쪽으로 넘어간 해가 동쪽 산사면에 미치지 못하는지 길이 어두웠다. 등산로를 따라 10여 분을 내려오니 다시 바다다. 보길도에서 해돋이가 가장 아름답다는 예송리 해안. 동글동글한 몽돌이 이색적인 예송리해수욕장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아직은 쓸쓸하다.

▲ 큰길재로 오르는 길.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해있어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활처럼 휜 해변에 하얀 조각배며 바다 곳곳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남해 비경의 한면을 보여준다. 해안 한쪽에 정성스럽게 갈무리한 미역과 다시마가 빨래처럼 널려있는 풍경과 잘 말린 미역을 관광객들에게 권하는 동네 아낙들의 모습이 여느 어촌마을처럼 평온하다.

예송리 해안의 방풍림은 팽나무며 측백나무·동백나무 등 화사한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다. 선홍빛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는 예송리 해안에 앉아 바다를 휘감고 들어오는 짭조름한 바람을 맞고 서있자니 윤선도가 즐겼던 풍류도 부럽지가 않다.

이 고립된 섬에서 말년의 한 때를 행복하게 보냈던 윤선도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바다면 바다, 들이면 들, 산이면 산,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보길도에서 여행자는 무한한 욕심을 버린다. 그저 소박한 정취에 젖다보면 섬은 편안한 휴식처를 내어주는 것이다. 보길도는 그 자체로 쉼이었다.



보길도 트레킹

▲ 예송리 샛바우재 정상의 전망대. 활처럼 휜 해안과 정겨운 마을이 섬의 평온한 풍광을 보여준다.
보길도는 당일로 섬 한 바퀴를 돌아보기 힘들다. 섬 전체를 둘러볼 요량이라면 보길도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당일 여행이라면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중심으로 돌아보자. 보길면소재지~(1.5km, 20분 소요)~세연정~(1.5km, 20분 소요)~부용동(동천석실, 낙서재터, 곡수당터)~(1km, 20분 소요)~큰길재~(1km, 10분 소요)~예송리해수욕장~(5km, 1시간10분 소요)~보길면소재지로 순환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총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섬 서쪽의 망끝전망대로 이어지는 코스로 트레킹하려면 보길면소재지~(1.5km, 20분 소요)~세연정~(1.5km, 20분 소요)~부용동~(1km, 20분 소요)~큰길재~(0.9km, 20분 소요)~수리봉~(1km, 30분 소요)~격자봉~(1.6km, 1시간 소요)~뽀래기재~(1.5km, 1시간 소요)~망월봉~(0.7km, 10분 소요)~망끝전망대~(10km, 2시간30분 소요)~보길면소재지로 돌아오는 코스가 있다. 총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망끝전망대에서 택시를 타고 보길면소재지로 돌아올 경우 요금은 약 1만1000원이다. 보길택시(061-553-8876) 보길개인택시(061-553-6262)

▲ 교통
완도→노화도 완도화흥포항(061-555-1010)에서 노화도 동천항까지 배편이 약 한 시간 간격으로 매일 10회(07:00~17:30) 운항한다. 40분 소요, 요금 6250원.
노화도→완도 동천항(061-553-5635)에서 완도화흥포항까지 배편이 약 한 시간 간격으로 매일 10회(07:30~17:50) 운항한다.

※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 연도교가 생기면서 노화도 동천항에서 배 시간에 맞춰 보길면소재지까지 버스가 운행한다. 보길도에서 동천항으로 가는 버스는 배 시간 20분 전에 보길면소재지에서 출발한다. 15분 소요. 요금 1000원. 동천항에서 보길도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은 1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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