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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이란 무엇인가요?”
“만남과 헤어짐이란 무엇인가요?”
  • 글 사진·안광태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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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 ⑪ 외롱쉐산에서 만난 ‘린린’

▲ 외롱쉐산 산행 들머리에서 만난 앳된 얼굴의 린린.

“어째서 이렇게 무거울까요? 그 오랜 세월, 그토록 보고 싶었는데….”

그녀의 질문이 무척이나 쌉쌀하게 코허리에 들러붙었다. 쓰촨성(四川省)의 중심 도시 청두(成都)의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린린(琳琳)은 발아래 흐르는 진사(金沙)강을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옛날에는 저 건너편 외롱쉐산(玉龍雪山, 5596m)과 이쪽 하바쉐산(哈巴雪山, 5396m)에 사는 호랑이들이 강 가운데 있는 저 널따란 바위를 밟고 공중제비를 넘어 두 곳을 넘나들었대요.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낙차가 크다는 이 골짜기를 후티아오샤(虎跳峽)라고 불러요.”

산행길 들머리에서 만난 린린은 여느 중국의 대학생들처럼 선량하고 소박했다.

▲ 나시족의 성산 외롱쉐산.

후티아오샤를 지나는 진사강은 창(長)강의 상류 부분을 부르는 이름이다. 창강은 이름 그대로 중국 대륙의 중앙부 6300㎞를 도도히 흐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창강은 티베트를 일컫는 칭짱(靑藏)고원 토그톤에서 시작한다. 칭하이성(靑海省)의 여러 지류를 흡수한 토그톤은 통티안허(通天河)로 이름을 바꾸고, 칭하이 남부 제쿤도(玉樹)에서 다시 진사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후 진사강은 쓰촨성의 이빈(宜賓)에서 민(岷)강과 합류, 비로소 창강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중국에 ‘창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민다(長江後浪推前浪, 대를 이어 잘 되어 간다는 의미)’라는 말이 있듯이 칭하이성에서 상하이(上海)까지 중국의 11개 성(省), 자치구(自治區), 시(市)를 걸쳐 동중국해로 빠져나가는 창강은 오늘날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의 대동맥이다.

창강은 하류 장쑤성(江蘇省)의 장두(江都)에서 전장(鎭江)에 이르기까지 양쯔(揚子)강이라 불리는데, 이곳에 서양 선교사들과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서방세계에 양쯔강이라 알려진다.

“원래 일본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아버지는 중국인 엄마를 버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린린의 눈가에 깊숙이 파고들어 앉아있던 무엇인가가 산 밑자락의 여름과 산꼭대기의 겨울 사이에 끼인 가을처럼 빨갛게 토해져 나왔다.

“일본인 아버지는 사업차 중국에 왔었답니다. 엄마 역시 빈곤한 시골구석이 싫어 대처인 청두로 무작정 나와 있었고요. 서로가 사랑을 했었는지 어쨌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은 쉽사리 만났고, 또 그렇게 쉽사리 저를 낳았대요.”

린린의 이야기는 아침을 거른 허기진 발걸음만큼이나 터벅터벅 느리게 이어졌다.

“하지만 사업이 여의찮아지자 아버지는 야반도주하듯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렸고, 그 후로는 소식이 끊겼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제대로 된 일본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시골 무지렁이 엄마가 무엇을 했겠어요. 아버지를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울며불며 고향으로 내려갔고,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눈물로 받아가며 여태껏 홀로 저를 키웠으니 엄마의 아픔이야 저 눈처럼 외롱쉐산을 덮고도 남지요.”

▲ 후티아오샤를 흐르는 성난 진사강, 오른쪽 넓은 바위가 후티아오스(虎跳石)이다.

강물과 3900m나 표고차를 보인다는 설산 마루금이 더욱 까마득하게만 보였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 몇 푼 안 되는 학비와 기숙사비가 없어 엄마는 시골에서 올라와 저희 학교 식당에서 궂은일을 하셨어요. 참, 아세요? 중국의 대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해요. 그래서 기숙사가 강의실보다 많지요.”

어느덧 산길은 급격하게 가팔라졌고, 하늘을 뒤덮은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린린의 이야기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후티아오샤는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의 나시(納西)족 자치현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성(古城)의 기와집들 사이로 헤이롱탄(黑龍潭)의 하늘빛 맑은 물이 동바(東巴) 음악과 함께 남실거리는 리장은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는 옛 차 무역로의 거점도시로 삼십만 나시 소수 민족의 중심 도시이다.

나시족은 믿기지 않게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1300자의 그림 상형문자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동바문자를 사용하여 제례의식에서부터 악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활양식을 백과사전식으로 기록 보존하고, 이를 동바(제사장을 뜻함)를 통하여 계승 전수하는 독특한 문화를 지금까지 꽃피워오고 있다. 리장에서 북서쪽으로 50㎞가량 떨어진 후티아오샤를 넘으면 비록 행정적으로는 윈난성에 속해있지만 사람도, 문화도, 풍경도 동쪽의 이른바 중화풍(中華風)과는 전혀 색깔이 다른 티베트 지역이 시작된다.

▲ 리장의 쓰팡지에(四方街)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나시족 여인들과 관광객들이 어울려 흥겨운 춤판을 벌인다.

티베트 고원의 메마른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윈난성으로 내려온 진사강은 ‘창강의 으뜸가는 물굽이’라 불리는 리장 서쪽의 스꾸(石鼓)에서 갑자기 방향을 반대로 틀어 북쪽 후티아오샤로 흘러든다. 외롱쉐산과 하바쉐산 사이, 길이 약 20㎞, 물길의 너비가 30~60m밖에 되지 않으며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200m가 넘는 후티아오샤는 창강의 중류에 있는 산샤(三峽)와 함께 중국이 천하제일이라 자랑하는 협곡이다.

“한때는 친구들에게 창피스럽게 하필이면 같은 학교 식당에서 일하느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자식 뒷바라지하겠다고 등골이 휘는 엄마가 불쌍해 2~3위안(1위안은 한화 130원 상당)하는 점심 한 그릇 아끼겠다고 찬물로 배를 채워가며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아닌 게 아니라 그날 저녁도 밥값이 아깝다며 말라빠진 과자 몇 쪼가리로 끼니를 때우겠다는 린린을 달래 간신히 밥 한 그릇 사 먹였다.

“그러다가 일 년 전 우연히 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아 이제 며칠 후면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에 가게 되었어요. 20년이 넘도록 편지 한 장 없이 살아왔으니 생면부지 남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아버지인지라 늘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막상 만날 날짜가 코앞에 다가오니 착잡하기만 하네요. 아버지를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단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 연기가 궁벽한 산골마의 기와지붕을 뚫고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언젠가는 저도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버린 사람도 버림받은 사람도 없다는 그 말을 이해할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제게는 만남도 헤어짐도 너무나 무겁게만 다가오네요.”

후티아오샤의 요동치는 물결을 잠재우려고 누군가가 나직하니 읊조리는 세레나데가 설산의 검은 벼랑에 부딪혀 동그랗게 부서져 내렸다.
“너르디너른 곳 다 놓아두고, 어쩌자고 진사강은 좁아터진 이 후티아오샤로 흘러들어 누런 물이 퍼렇게 멍들도록 저렇게 몸부림쳐대고 있는지…”

린린은 후티아오샤의 대답을 벌써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40대 초반의 여행작가 안광태 씨는 돌아올 기약 없이 수년째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는 바람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명 관광지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본지는 안광태 씨가 보내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이 녹아있는 흥미로운 인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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