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꺾으러 가던 날
고사리 꺾으러 가던 날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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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28)

▲ 고사리를 꺾으러 산길을 오르는 일행들. 제가 사는 곳은 예전 탄광이 흥하던 곳이라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가 잘 닦여 있습니다.
봄이 무르익어 여기저기 피어나는 달콤한 봄꽃의 향기에 취해 보는 것도 잠시입니다. 산나물이 흔한 시기가 되니, 그동안 여유로웠던 산골의 일상이 언제 그랬냐 싶게 바빠져서 5월 한 달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산나물과 씨름하는 산골 아낙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두릅·엄나무 새순 같이 잠깐 나왔다가 없어지는 산나물들은 간장소스를 끓여 부어 장아찌를 만들어 두고, 곰취를 비롯해서 취나물·곤드레 나물들은 삶아 얼려 두거나 말리거나 하는 방법으로 일년 동안 먹을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나물 중에 정작 제가 제일 좋아 하는 고사리는 아주머니들이 말리는 걸 구경만 할 뿐 제가 말려 보거나 꺾어 본 일이 없어서 늘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말리신 걸 사서 먹어야 했습니다.

▲ 산행 채비를 다하시고 숲으로 들어서시는 김화자 언니. 저렇게 가슴에 보자기를 두르고 가셨는데 꺾은 고사리를 손에 들고 다니는 저는 보자기가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정선에 내려와 살면서 일곱 번의 봄을 지내면서 해마다 5월이면 마을 아주머니들께 제일 부러운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아주머니들이 고사리 밭을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새벽에 운동 삼아 고사를 꺾어 내려오시곤 하는 데 그걸 구경만 하자니 참으로 부러운 마음만 컸습니다.

그래서 저도 데려가 달라는 말씀을 드려도 아주머니들께서는 늘 “언제 한번 같이 가는 게 어려워? 함께 가자.”는 말씀은 하시지만 정작 함께 가자고 연락을 하시는 분들은 없으셨고 전 7년 동안 고사리만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오늘 새벽의 고사리 꺾으러 가자는 동네 아주머니의 전화, 어찌나 반갑던지요. 자던 이부자리도 정리 못하고 부랴부랴 채비를 해서 아주머니 두 분과 길을 나서며 “언니들 데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거듭 거듭 드리는 저. 정말 저를 데리고 고사리를 꺾으러 오신 아주머니들께 그렇게 말로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제가 처음으로 발견한 고사리, 어설픈 초짜 나물꾼은 고사리를 보고 고사리랑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삼십분쯤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이제부터 고사리 밭이야.” 하시며 보자기를 허리에 두르시고 나물 뜯을 채비를 하신 뒤 숲으로 들어가시는 아주머니들, 저도 엉겁결에 따라 들어가다 보니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그런 잡목 숲이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은근히 뱀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저, 정신없이 잡목을 헤치며 온 힘을 다하다 보니 뱀에 대한 두려운 생각은 저만치 달아나고 혹여 이 엄청난 잡목 숲에서 길을 잃을까 아주머니들 뒤를 바싹 따라 붙어 가는데 온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분명 함께 한 아주머니는 늘 고벵이(무릎의 정선 사투리)가 아프시다고 약을 드시는 분이었는데 고벵이가 성한 제가 못 따라 가는 상황을 어찌 이해 할 수 있을까요?

▲ 한 걸음도 걷기 어려운 잡목 숲을 정말 잘 올라가시는 동네 아주머니 김화자 언니, 고맙게도 초보 나물꾼이 저를 데리고 산에도 데려 가 주셨고 그날 꺾은 고사리를 제게 다 주셨습니다. 인심도 참 좋지요?
그렇게 저도 잡목 숲을 정신없이 헤치다가 발견한 굵은 고사리 한줄기, 심봤다! 아니 고사리 봤다! 그 통통한 고사리의 몸통을 딱 하고 꺾는 기분이란 직접 해 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즐거운 일었습니다.
한 개의 고사리를 발견해보고 나니 다른 고사리들이 마치 매직아이처럼 고사리만 눈에 확 띄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며 그 엄청난 잡목 숲도, 뱀에 대한 공포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고사리만 목표인 채로 돌진!!

그렇게 4시간쯤을 산에서 고사리도 꺾고 취나물도 뜯고 참으로 풍요로운 풍경 속에 들어 있다 보니 이 산골의 봄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요로운 산나물들을 농사지으신 산신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안 드릴 수 없었습니다.

“가리왕산 산신령님, 이렇게 많은 산나물들을 농사지으시어 미천한 제게까지 나누어 주시니 정말 고맙고 고맙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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