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스포츠웨어> 경북 청송 주왕산 걷기.
<콜롬비아 스포츠웨어> 경북 청송 주왕산 걷기.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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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래는 스러져도 기암은 남았구나!”

▲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주봉으로 가는 길,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어 걷기 수월하다.
어느 봄날, 삐죽삐죽 솟은 돌산이 발그레한 볼을 지닌 수달래를 ‘쿡’ 찌른다. 어리둥절해 바라보는 수달래, 모른척하고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꼿꼿이 세운 돌산. 살짝 바라보다 눈이 ‘딱’ 마주치자 괜히 부끄러워진 수달래는 물가로 숨어든다.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 주왕산을 붉게 물들이는 수달래.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전설을 품고 오늘도 두 볼만 빨개진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주왕산(720.6m)은 삐죽삐죽 돌산이다. 아니, 그냥 돌산이라고 하기엔 미안한 구석이 있다. 웅장하고 힘있는 돌산이라고 해야 할까. 높이로 따지면 북쪽 경계에 위치한 태행산(933.1m)이 가장 높지만 대전사 뒤의 720m봉을 주봉으로 삼는다.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신기하게도 기암을 품은 덕분에 거칠고 뚜렷한 남성적인 선을 지닌 주왕산에는 봄이면 수달래라고도 불리는 어여쁜 이름의 산철쭉이 피어난다.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뜻의 척촉(擲燭)이 변해서 된 이름 철쭉. 얼마나 예쁘길래 가는 걸음을 붙잡았을까 하는데, 눈길 끌기로 따지자면 산철쭉을 따라올 수가 없단다.

산철쭉은 물가에서 핀다고 해 물철쭉, 수달래라고 불리고 또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봄이 깊어지면 주왕산 계곡을 물들이는 수달래의 분홍 물결을 찾아오는 이들이 제법 된다. 덕분에 수달래가 만개하는 4월 말에서 5월 초면 주왕산 주방계곡 자락에서는 수달래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5월 중순인 지금, 수달래가 남아있을까 약간 불안하기는 하지만 오늘 산행에서 수달래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부디 어제 내린 빗방울에 행여나 남아있을 꽃잎이 쓸려가지 않았기를. 함께 산행할 경주와 울산 고객들도 ‘여기 수달래가 참 곱다던데….’ 하며 한 마디씩 거든다.

오르막이 힘든 줄도 모르게 하는 기암

▲ 제1폭포의 물줄기를 품은 기암의 모습이 거대하고 비밀스러워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주봉코스다. 상의매표소에서 주봉에 올랐다가 후리메기를 거쳐 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상의매표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다. 대전사의 배경으로 펼쳐진 산(山)자의 기암이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을 알린다. 눈이 번쩍 뜨인다. 푸릇푸릇하게 생명력을 가득 머금은 산의 기운에 힘껏 솟은 잘생긴 기암이 더해지니 잘 생긴 남자의 얼굴 옆선을 몰래,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에서 비롯된 대전사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주봉코스는 예전에는 가파르고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고 하는데 보수가 된 지금은 걸을 만하다. 다만 주봉까지 1시간가량 계속되는 오르막에 조금 숨이 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중간중간 만나는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기암 덕분에 지칠 틈도 없다. 장군봉이며 병풍바위며 어쩜 이름은 그리도 잘 지었는지, 연이은 소개팅 약속에 설레는 것처럼 기암 하나하나가 기대될 뿐이다.

대전사에서 주봉까지는 약2km로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벌써 정상인가 하는 아쉬움도 잠시, 주봉에서 나무 사이로 바라보는 주왕산의 풍광에 눈이 호강이다. 참가자들은 정상이라고 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성미 급한 참가자들은 벌써 자리를 펴고 앉는다. “뭐니뭐니 해도 산행의 백미는 정상에서 먹는 도시락”이라며.

▲ “안녕! 안녕! 반가워요!” 산행 중 만난 이번 트레킹에 참가한 경주, 울산 고객들의 인사.
이제 주봉에서 후리메기를 거쳐 주방계곡을 따라 대전사로 하산하면 된다. 한시간 반만에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야 하다니. 아쉬움에 주봉에서 후리메기로 가는 길은 걷는 데 집중한다. 걸을만한 숲길이다. 나무 사이사이로 빠꼼 고개를 내민 기암들이 한시도 빼먹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학자로 꼽히는 이중환 선생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한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물줄기와 기암의 소곤거림
주왕굴, 연화굴, 무장굴처럼 산 곳곳에 깊고 깊게 숨어들 공간이 자리했기 때문일까. 주왕산은 예로부터 난리가 날 때마다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많은데다 선사들이 이 산에 와서 살았다 해 대둔산,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석병산이라고도 불렸다. 그중 신라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위에 등극하지 못하고 이곳에 와 은거했다 해 그의 이름을 본떠 주왕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산세 곳곳의 굴처럼 여기저기 숨어있을 것 같다.

후리메기에서 하산하는 길, 폭포를 품은 주방계곡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대전사로 이어지는 코스는 주방계곡코스라고도 하는데 물가에 핀 수달래 외에도 다양한 전설을 담은 명소들과 기암절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길이 평탄하고 넓어 가족 트레킹코스로 좋다. 대전사부터 제3폭포까지 왕복 10km가 조금 못되며 2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주방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계곡을 따라 얼마 전까지는 수많은 수달래가 발그레한 두볼로 탐방객들을 반겼을 게다. 올해는 지난 5월 2~3일 수달래축제가 진행됐는데 남아있던 몇 송이마저 아쉽게도 엊그제 내린 비에 모두 스러진 모양이다. 애잔한 수달래의 기운이 전해지지 않는다. 수달래는 잡힐 것 같아서 손바닥을 펴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고 마는 봄볕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 “치이즈~!” <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의 경주, 울산 고객들과 함께 기암을 배경으로 찰칵!
서운함을 뒤로하고 걷는데 후리메기에서 처음 닿는 제2폭포에 가까워지나보다. 등산로에서도 살짝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제2폭포와 제3폭포 모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고, 가장 멋지다는 1폭포는 하산길에 거치므로 제2, 제3폭포는 생략하기로 한다. 물줄기 덕분인지 5월 햇살이 견딜 만하다.

기암의 형태가 심상치 않다. 한껏 솟아오르고 한껏 모양낸 기암 사이로 물줄기가 보인다. 제2폭포와 제3폭포를 건너뛰면서 고대하던 기대치를 제1폭포가 꽉꽉 채워준다. 기암과 물줄기가 제법 잘 어울린다. 뭔가 저들끼리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다.

기암의 잘생긴 외모에 반했는지, 참가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1폭포 구경에 여념이 없다.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웅덩이에 들어가 있으면 선녀가 될런가, 하는데 가물가물 나무꾼과 선녀가 보이는가 싶기도 하다.

무열왕이 후손인 김주원이 주왕산에 은신하며 살았다는 급수대,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았다는 학소대, 그리고 떡을 찌는 시루를 닮았다는 시루봉도 하산길 ‘눈의 즐거움’에 한 몫 거든다. 삐죽삐죽 솟은 기암에 뭔가 비밀이 스며있는 것 같기도 한데 바위로 둘러싸여서 인지, 아니면 별로 말 걸고 싶지 않은지 별다른 말이 없다. 한번쯤 말 걸어주어도 좋으련만 우뚝 솟은 기암은 여전히 멋있기만 하다.

IMformation
주왕산국립공원 주봉코스

상의매표소~주왕산~칼등고개~후리메기~제1폭포~상의매표소로 돌아오는 주봉코스는 주왕산 산행 코스 중 가장 일반적인 길로 총 8.9km 정도 된다. 4시간 반 정도 소요. 산행 시작부터 선보이는 대전사 뒤편의 산(山)모양의 기암은 앞으로 펼쳐질 기암의 향연을 알린다. 보는 재미 덕분에 걷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산행이라면 상의주차장에서 학소대를 거쳐 제3폭포까지의 코스가 좋겠다. 대전사 문화재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600원. 주차료 5000원. 주왕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www.npa.or.kr/chuwang, (054)873-0018.

별미

대전사 입구 식당들은 대부분 산채를 재료로 삼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달기약수 근처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달기약수백숙 덕분에 백숙도 종종 보인다. 주차장에서부터 제법 몰려있는 음식점들은 거의 비슷한 산자락 음식들을 선보인다. 그중 직접 캐낸 산나물로 정성껏 준비해내는 향촌(054-873-0202)이 깔끔함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푸짐하게 한 끼 즐기고 싶다면 산채정식(1만5000원), 간단하게 한끼 해결하고 싶다면 산채비빔밥(6000원)이 적당하다.
교통
▶ 수도권→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서안동IC→34번 국도(안동댐 방향)→안동댐입구→진보/영덕방향(34번국도)→청송→주왕산국립공원 상의주차장 <5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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