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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 ① 왕피천 트레킹
울진 - ① 왕피천 트레킹
  • 글·김경사진·이소원, 김성중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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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신비 간직한 야생낙원

▲ 왕피천 트레킹 초입. 완만한 계곡이 수묵화의 한 장면처럼 평화롭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본 사람이라면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이 얼마나 여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수면을 향해 예술 같은 캐스팅(미끼를 원하는 방향으로 던지는 일)을 하는 장면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 아닌가. 하지만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영화속 몬타나 강처럼 아름다운 계곡이 있으니 말이다. 울진의 숨은 보석, 아니 한반도의 숨은 보석 왕피천이 그곳이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가는 약 68km의 긴 하천이다. 이 중 울진 서면 왕피리에서 근남면 구산리까지 도로가 뚫리지 않은 약 5km 구간은 아직 문명이 침입하지 못한 천혜의 오지로 수많은 희귀 생명들의 터전으로 남아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우렁차게 흐르는 계류 속에는 은어며 꺽지·메기·뱀장어·피라미 떼가 한가롭게 노닐고, 산양과 수달·노루·날다람쥐 등 귀한 동물들도 계곡과 더불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때 묻지 않은 오지의 모습 그대로다.

왕피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오지의 명성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실직국의 마지막 왕인 안일왕이 예국의 침략을 받고 마을로 피난을 왔다는 이야기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마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왕피리는 왕이 피난 온 마을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야기가 진실이든 첩첩산중에 가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왕피천이 예로부터 오지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평화로운 오지마을 지나 절경속으로

▲ 왕피천 물길을 따르다보면 곳곳에 절벽 지대가 나타난다.
취재팀은 왕피리에서 구산리로 이어지는 오지 계곡 트레킹을 위해 왕피리 속사마을로 향했다. 울진에서 영주 방향 36번 국도를 타고 삼근리 삼거리에서 좌측 왕피리 방면으로 들어서니 길은 오지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런 외딴 마을까지 도로가 포장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지던 길은 약 13km를 달려 왕피리 속사마을에서 끊겼다. 왕피천 트레킹의 시작점이 되는 마을이다.

속사마을 포장도로가 끊기는 지점에 왕피리 3관리초소가 있다. 약 3천만평 규모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왕피천은 현재 대구지방환경청과 왕피천 인근 주민들의 살뜰한 보호를 받고 있다. 왕피리 내에만 3개의 초소가 있고 왕피천 전체에 9개의 관리초소가 있다. 트레킹에 동행하기로 한 용도식(50), 이규봉(43) 씨도 왕피리 관리초소 소속이다.

“올해 봄 가뭄이 심해서 왕피천 수량이 적어요. 지금껏 계곡이 이렇게 가물었던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좋았다. 속사마을의 마지막 집인 부원농장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니 눈부시게 빛나는 계류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깊은 오지에서 만난 야생의 풍광. 태양빛이 수면에 반사될 때마다 반짝이는 왕피천 계곡의 절경은 외지인들의 눈과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우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 같아요!”

크고 작은 돌들이 만들어 놓은 물줄기를 따라 하류로 걸어가는 일행의 발길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평탄하게 흐르는 계류와 신록 완연한 숲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왕피천 계곡은 평온 그 자체였다. 수량도 많지 않아 수시로 물길을 건널 때도 계류가 무릎 이상 넘어오질 않았다. 하지만 물이 적다고 방심하면 금물. 이끼가 잔뜩 낀 계곡 속 돌멩이가 워낙 미끄러워 자칫하면 넘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출발한 지 20여 분, 물줄기가 왼쪽으로 한 굽이 몸을 크게 틀더니 계곡 초입과는 전혀 다른 풍광을 보여줬다. 이제 평탄하고 널찍한 강변은 사라지고 아찔한 절벽 구간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심산오지에 꽁꽁 숨어있는 왕피천이기에 제 모습을 그리 쉽게 보여주지는 않을 모양이다.

▲ 거대한 바위 협곡지대인 용소는 왕피천 트레킹 중 가장 위험한 절벽 지대다.
“외지 사람들이 초입의 계곡만 보고 왕피천 트레킹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난 여름에는 한 가족이 저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을 시도했다가 절벽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이규봉 씨의 말처럼 왕피천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거무스름한 이빨을 드러낸 수직절벽이 일행을 향해 계속 경고를 보내는 느낌이다.  물길 양쪽이 모두 수직절벽인 첫 번째 난관이 나타났다. 물속으로 들어가 절벽구간을 지나자니 짙은 청록빛 물색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안 그래도 계곡 바닥이 미끄러운데 잘 보이지도 않는 물길을 따르자니 걱정이 앞선다. 결국 절벽 위로 올라 위험지대를 지나가기로 했다. 바위에 붙어 절벽을 오르는데 틈 사이에 낀 이끼가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아찔한 절벽구간을 10여분 지나니 계곡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탄해졌다. 계곡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도 높지 않고 아담한 모습이다. 평화로운 풍경은 물속도 마찬가지. 갖가지 민물고기가 계류 안에서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용이 지나간 흔적, 용소
절벽 구간을 지나서 단정한 계곡을 따라 20여 분을 더 걸어 내려가니 물줄기가 북쪽으로 크게 몸을 틀며 숨어있던 비경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위섬 두 개가 왕피천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용소와 더불어 왕피천의 아름다운 절경을 뽐내는 학소다.

▲ 왕피천 물길을 따르다보면 곳곳에 절벽 지대가 나타난다.
뾰족한 바위 위 소나무 몇 그루,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학소 일대는 깊은 소와 바위섬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냈다. 마을사람들은 두 개의 바위 중 뒤 쪽 바위의 모양이 학이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학바위로 부른다고 했다.

학소에서 크게 휘어진 물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몸을 틀어 용소를 만들었다. 용소는 왕피리에서 구산리까지 이어지는 왕피천 구간 중 가장 깊은 소로 물빛이 검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함을 불러일으킨다. 절벽 위에서 바라본 용소는 한 마리 용이 몸부림을 치 듯 구불거리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상류 쪽이 용의 머리고 하류 쪽이 용의 꼬리예요. 머리 부분의 수심이 가장 깊죠. 대략 13m 내외예요.”
용소에서 잠시 쉰 일행은 절벽을 우회하기로 했다. 용소 일대의 절벽지대가 워낙 험하고 거칠어 걸어서는 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줄기 왼쪽의 가파른 산사면으로 들어섰다.

▲ 왕피천을 따르다보면 수시로 물길을 건너야 한다. 이끼가 잔뜩 낀 계곡 속 돌멩이를 조심스럽게 밟아본다.
길도 없는 산사면을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복하게 쌓인 낙엽과 부스러진 바위들이 산으로 오르는 일행의 발길을 자꾸만 아래로 잡아당겼다. 나무며 바위를 조심조심 붙잡고 한참을 오르니 산사면을 따라 오른쪽으로 횡단하는 작은 길이 나타났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만한 좁은 길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가니 길은 계곡으로 고도를 낮춰 잔잔한 왕피천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언제 그리 험한 풍광을 보여주었냐는 듯 왕피천은 다시 얌전해졌다. 잔잔한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크게 한 굽이를 돌아가니 트레킹의 종착지 상천동이다.

왕피천 관리초소와 농가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면 민가가 몰려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그러나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길을 나섰다.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 어둡기 전에 속사마을로 되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온 길을 되짚어 가는 일이 지루할 것이라는 걱정은 왕피천에서 만큼은 접어두자. 절벽은 여전히 아찔하고, 용소는 여전히 기묘하며, 평화로운 계곡의 풍광은 여전히 편안했다.  왕피천의 속살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선물 같았다.

왕피천 트레킹

왕피천 트레킹은 상류인 왕피리 속사마을과 하류인 구산리 상천동 중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무방하다. 왕피리에서는 속사마을 끝에 있는 부원농장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류의 구산리 상천동까지는 약 5km, 왕복할 경우 10km의 만만치 않은 거리다.

물론 왕피천이 전체적으로 완만해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물길을 수시로 건너야 하고 곳곳에 아찔한 절벽지대를 지나야하기 때문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속사리에서 상천동까지 3~4시간 정도 걸리며, 왕복할 경우 8시간 정도 소요된다. 트레킹 구간 중 용소 일대는 아찔한 절벽이 이어지는 구간으로 산사면을 따라 우회해야 한다.

왕피천은 트레킹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자에게 다소 위험하다. 어린이나 초보자가 동행할 경우 구산리 상천동에서 시작해 용소까지 왕복하는 약 5km의 코스를 추천한다. 계곡이 완만해 가볍게 트레킹할 수 있는 구간이다.

왕피리 속사마을과 구산리 상천동은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마을이다.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울진에서 택시를 이용할 경우 요금은 편도 6만 원 정도다. 왕피리 3관리초소에 미리 연락하면 생태트레킹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문의 : 017-532-3322(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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