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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파란 호수에 잠긴 설악을 보셨나요?”
“그대, 파란 호수에 잠긴 설악을 보셨나요?”
  • 글·김경선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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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03 청초호~영랑호 하이킹

▲ 동명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동해의 풍경. 잿빛하늘과 바다가 경계를 잃었다.

청초호와 영랑호를 두루 꿰는 자전거 일주…약 15㎞ 4시간 소요

‘속초’ 하면 떠오르는 것, 장쾌한 설악산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동해 바다다. 그러나 설악산 정상에 오르고, 대포항에서 회 한 쌈 들었다고 속초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산만큼이나 푸르고 바다만큼이나 파란 청초호와 영랑호에 잠긴 설악을 봐야 비로소 속초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다. 5시20분이면 일출이 시작된다는 소리에 10여분 일찍 도착한 동명항. 항구를 둘러싼 방파제에 서서 저 멀리 설악산을 바라보면,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설악산 산줄기를 훤히 비춰 탄성이 절로 나는 절경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런 기대감에 꿀 같은 단잠을 포기한 사람이 기자 뿐만은 아닌 듯했다. 벌써부터 명당터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세운 카메라족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해가 떠올랐다. 그러나 안개는 설악산의 미모를 시기라도 하듯 웅장한 비경을 뿌연 안개 속에 꽁꽁 숨겨 놓았다. 흐릿하게나마 울산바위의 웅장한 자태가 그 곳이 설악산임을 나타낼 뿐이다.

오롯한 동해의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속초를 더 깊이 알기 위해 자전거 하이킹의 출발지인 청초호로 향했다. 속초를 속속들이 돌아보기 위해서 자전거만큼 요긴한 이동수단도 없을 것이다. 두 바퀴를 반나절 정도만 돌리면 청초호와 영랑호, 속초 시내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한적한 항구 같은 청초호

▲ 동명항의 일출.
오늘 자전거 하이킹은 청초호의 엑스포기념탑을 시작으로 청호동~갯배~속초시내~동명항~영랑호~속초시내~청초호 코스로 원점회귀할 예정이다.

청초호의 아침은 고요했다. 노란 개나리가 호수를 감싸고 먹이 찾아 날아온 새들의 날갯짓이 수면 위에 파동을 일으키는 곳, 알싸한 갯내음을 풍기는 청초호는 그렇게 조용한 항구처럼 아침을 맞이했다.

엑스포 공원은 산책하기 좋게 잔디밭이며 벤치가 조성돼 있어 깔끔하고 쾌적했다. 호수 주위로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따라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왼쪽으로는 호수에 정박한 선박들이 어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고, 정면으로는 대형마트와 멀티플렉스 극장이 현대화된 도시의 풍경을 연출했다. 속초는 그렇게 어촌마을과 현대화된 도시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달린 지 20여분, 청초호의 명물 갯배 선착장 입구에 도착했다. 청호동과 중앙동을 연결하는 유일한 이동수단 갯배는 몇 해 전 드라마 ‘가을동화’를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아닌 게 아니라 갯배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드라마 촬영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이 어색하게 걸려있었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함경남도 출신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그저 잠깐 머물다 떠날 생각으로 움막을 짓고 나무판자로 집을 만들어 살아가던 실향민들은 벌써 50여년이 넘는 세월을 타향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바이마을의 실향민들은 향수를 고향의 맛으로 달랜다. 아바이순대, 가자미식해, 함흥냉면, 명태식해…. 2대, 3대에 걸쳐 수십 년간 고향의 맛을 지켜 내려오는 곳이 아바이마을이다. 그러나 이곳도 몇 해 뒤 항만개발사업으로 일부가 철거될 예정이라니 또 다시 제2의 고향을 잃을 마을사람들의 운명이 가혹하다.

▲ 이른 아침의 동명항은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바쁜 손길에도 한산하다.

갯배에 올라탔다. 청호동과 중앙동을 오고가는 갯배는 두 마을을 잇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물론 시내로 돌아 갈 수도 있지만 갯배로 1분이면 갈 거리를 차로는 10분, 자전거로는 20~30분쯤 달려야 한다. 겨우 50m를 오고가는 갯배지만 그만큼 유용한 이동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배를 움직이는 동력이 독특했다. 두 지역을 연결한 쇠밧줄을 승선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당기고 있었다. 배는 이 힘으로 움직였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외지 사람들은 잠시 멀뚱한 표정을 짓고 서있다가도 금세 동참해 배를 끌어당겼다. 그러는 사이 갯배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짧은 눈인사가 오고 갔다. 갯배가 선사하는 잠깐의 여유다.

▲ 청호동의 명물인 갯배. 50m의 수로를 오가는 갯배는 청호동과 중앙동을 이어주는 이동수단이다.

운치 있는 청초호와 세련된 영랑호
갯배로 수로를 건너면 바로 속초 시내다. 우체국, 시청, 은행들이 밀집한 번화가를 지나 10분쯤 달려 동명항에 도착했다. 항구는 조용했다. 지금은 오전 10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기울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 항구에는 그물 손질하는 어부들만이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까칠한 바다만큼이나 억세 보이는 어부들은 동료들과 웃음을 나누며 한적한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동명항은 회가 싸기로 유명하다. 저녁이면 “모듬회 2만원! 2만원!”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인지도가 훨씬 높은 대포항보다도 저렴한 가격이다. 게다가 자연산만 취급해 현지인들은 대포항 대신 동명항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싱싱한 회 생각에 빠져든 사이 어느새 영금정이다.

▲ 파도와 바위가 부딪혀 거문고 소리는 낸다는 영금정. 시원한 동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바다를 향해 50여m 길을 내고 그 위에 정자를 지어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영금정이다. 영금정이라는 이름은 파도와 바위가 부딪혀 거문고 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졌는데, 콘크리트로 기둥을 세우고 철지붕을 올린 정자의 실물은 낭만적인 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지만 정자에서 바라보는 속초 앞바다의 풍광은 그림 같다. 바다 위를 지나가는 어선 몇 척, 그 사이를 날아가는 갈매기들, 갑작스럽게 포착된 그 순간을 재빨리 사진기에 담았다.

동명항에서 해안을 따라 20여분을 더 달리면 영랑호다. 영랑소방파출소 건너편에서 호수를 끼고 외길 자전거도로를 달리면 자연스럽게 호수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영랑호는 청초호와 함께 자연적으로 형성된 속초의 대표적인 석호다. 그러나 바다의 연장선 같은 느낌의 청초호와 달리 영랑호는 한적한 공원의 분위기가 더 짙었다.

호수를 왼쪽에 끼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렸다. 영랑호의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하이킹을 즐겁게 만드는 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 너머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마치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운 양 더욱 또렷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설악. 페달을 밟을수록 설악의 품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태의 범바위. 실제로 보면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신라의 유명한 화랑이었던 영랑은 호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범바위의 형상에 매료돼 오랫동안 영랑호에 머물렀다고 한다. 건너편에서 보면 영락없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호랑이의 형상이다. 범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 월랑정에 올랐다. 정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바위와 나무에 가려 전망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정자 뒤편으로 돌아 범바위 정상에 서니 호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범바위에서 10여분을 달리면 대명타워다. 타워 앞 도로를 우회전해 호수 일주로를 빠져나왔다. 속초중앙초등학교와 공설운동장을 지나 도로를 건너니 자전거 하이킹의 최대 난코스인 속초 중앙시장. 좁은 인도와 그 위를 장악한 노점상들을 피해 가고서기를 반복하다보니 길은 다시 번화가와 만났다.

활기가 가득한 속초 시내를 지나 다시 청초호로 돌아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이는 호수는 설악과 어우러져 더욱 빛이 났다. 푸른 동해바다와 반짝이는 호수, 설악이 어우러진 속초의 아름다움은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 거대한 범바위의 규모에 사람들이 작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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