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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달리다 죽는 게 아닐까?”
“이렇게 달리다 죽는 게 아닐까?”
  • 글 사진·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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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② 칠레 아타카마사막

▲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도 불리는 아타카마사막에서 선수들이 250km의 죽음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가장 험난했던 250km 극한 코스…발목 부상 딛고 선두 그룹으로 완주

남미의 ‘혁명전사’ 체 게바라(Ernesto Guevara)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렸던 광활한 아타카마사막과 평원, 그리고 흥겨운 라틴음악과 감미로운 포도주가 있는 나라 칠레.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으로 떠나기 전부터 낯선 곳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글 사진·안병식 오지 마라토너(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한국에서 칠레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호주나 뉴질랜드 등을 경유해야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다시 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깔라마 공항에 도착한 후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에야 칠레의 북쪽 아타카마 사막 지역의 작은 오아시스 마을,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아름답고 신비로운 아타카마사막.

고지대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레이스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은 남북 약 1000km, 동서 30km의 규모로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 연안의 도메이코 산맥 사이에 위치해 있다. 강수량이 매우 적어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도 불릴 정도로 완전한 불모지다. 또 소금과 탄산칼슘이 많은 진흙이 말라붙어 있는 호수와 소금의 퇴적층으로 덮인 지역이 아주 많다. 그리고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지형 등 다른 사막과는 다른 다양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아타카마사막에 위치해 있고, 1시간이면 마을 전체를 구경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아타카마사막으로 가는 거점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겨울이라 사막의 밤은 매우 추웠다. 텐트 안에도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서 새벽에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다. 각자 개인이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을 먹은 뒤 약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마라톤 출발 장소인 해발 4000m의 고지대에 도착했다. 몸을 풀기 위해 잠시 달려보았는데, 워낙 고지대다 보니 조금만 뛰어도 금세 숨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환경보호단체 소속으로 참가한 선수가 코뿔소의 탈을 쓰고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세 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며 탈을 쓰고 250km를 무사히 완주했다.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환경캠페인을 펼치는 멋진 선수들이다.

4000m의 고지대에서 출발해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로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돌과 바위들이 있는 협곡이라 코스도 험난하고 경사가 심한 암벽을 오르내리는 위험한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레이스에서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되는 계곡 건너기였다. 눈이 녹아 내려오는 물이라 너무 차가워서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온몸이 얼어버릴 정도로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힘든 레이스와 저체온증 때문에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첫날부터 레이스를 포기하는 코스가 되어버렸다.

코스가 힘들어지면 체력 소모도 많아지고 레이스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이 관건이다. 사막에서 지친 육체와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 주는 곳은 CP(체크포인트)와 캠프뿐이었다.

둘째 날에는 다른 사막에서 볼 수 없었던 넓은 소금 호수가 있었다. 소금이 하얗게 햇빛에 반사되어 멀리서 보면 마치 반짝이는 수정처럼 보였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붉게 물든 노을이 호수를 비추자 경이롭다고 할 만큼 아름답게 변해갔다. 

사막레이스 코스는 매년 바뀌지만, 보통 1~2일이 힘든 코스였다면 다음날은 조금 쉬운 코스로 변경되는데, 이번 아타카마사막대회는 매일 매일이 힘든 코스로 설정되어 있었다. 힘든 만큼 참가자들도 순위에 대한 집착보다는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는 분위기였다.

이번 선두 그룹의 참가자들은 사이클 선수 출신이면서 변호사이기도 한 캐나다의 마크 타밍가, 미국 올림픽 스키 대표 선수였던 조 홀랜드, 그리고 지난 고비사막에서 2등을 했고 다른 사막대회라든가 여러 오지마라톤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등이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경험과 이력을 가진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달리면서 서로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다른 어떤 마라톤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사막마라톤만이 가진 매력이다.

▲ 4000m 고지대에 위치한 대회 본부.

부상을 딛고 선두 그룹 유지
사막마라톤은 진행요원이 매일 아침 코스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지도를 나누어준다. 코스 지도를 받아보니 CP2~CP3(14km), ‘Extremely Difficult’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의 레이스도 어려웠는데 지금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어렵다는 뜻이었다.

CP1까지는 모래가 아닌 자갈밭과 반복되는 오르막 코스였고, 체크포인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는 100m 정도의 급경사 언덕을 내려가는 위험한 코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언덕을 내려오면서 모래가 많아 다행이었지만, 균형을 잃어 넘어져 구르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험난한 구간이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자 그전에는 보지 못한 너무나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지면은 자갈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평탄했고 CP2까지는 거의 내리막이었다. 마크와 프란체스코가 짝을 이뤄 앞에서 달렸고, 미국인 조 3명과 내가 짝을 이뤄 20~30m 뒤에서 달렸다. 거리는 벌어졌다 좁혀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제 달리면서 발목을 접질렸던 부분이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 계곡 건너기 코스. 몇몇의 선수들은 체력 소모가 크고 저체온증에 시달려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평원을 지나 우리 4명은 CP3에 같이 도착했다. 하지만 다시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소금사막은 보는 것만으로도 레이스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진흙과 소금 등이 함께 섞여 굳어진 지형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힘든 코스였다. 여러 번의 사막레이스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이번 대회는 사막마라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모래사막보다는 산, 계곡, 협곡, 소금사막 등 코스도 다양하고 힘든 레이스가 매일 반복됐다. 코스가 험해 14km의 거리를 한 번도 뛰지 못하고 걷다보니 2시간30분이 걸려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CP3을 지나 캠프까지는 6km였다. 길을 따라 가는 코스라 쉬웠지만 발목이 많이 아팠다. 마크 등이 먼저 캠프에 도착했고 몇 분 후에 우리 일행도 도착할 수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음식을 먹을 정신도 없이 텐트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누워 있으면서도 내일은 롱데이 코스라 많이 걱정 되었다. 발목도 많이 부어있었다. 오늘 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도 세차게 불어대는지 누워있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 아타카마사막 마라톤대회에는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막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서바이벌 마라톤이다.

우승보다는 우정을, 우린 모두 친구!
사막마라톤에서 롱데이 코스는 보통 80~100km의 거리로 진행되며 선두 그룹과 하위 그룹간의 시간 격차가 크기 때문에 롱데이 날 아침에는 두 팀으로 나뉘어서 대회가 진행된다. 어제보다 발목이 많이 부어 있어 테이핑으로 발목을 감으며 출발 시간을 기다렸지만 오늘 레이스가 많이 걱정되었다. 지금까지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롱데이 코스는 많은 부담이 되는 거리였다. 어제와 같이 우리 4명은 무리를 지어 같이 달렸다. 소금사막과 갈대밭을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크고 웅장한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모래언덕을 오르고 나니 멀리에는 아름다운 사막풍경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언덕 위에는 처음 보는 신비한 풍경이 나타났다. ‘달의 계곡’이라는 곳인데 지구상에서 달의 표면하고 가장 비슷한 곳이라서 미국의 우주 비행사들이 여기에 와서 훈련을 한다고 한다. 불규칙적인 바위들과 하얗게 뿌려진 소금이 굳어있는 형상은 낯설면서도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달의 계곡’은 일반인들에게 따로 관광 코스로 소개될 만큼 아타카마사막을 대표하는 명소다.

▲ 달의 표면하고 가장 비슷한 곳이라고 해서 지어진 ‘달의 계곡’에는 소금으로 둘러싸인 동굴들도 있다. 이곳은 일반인들에게 관광 코스로 소개될 만큼 아타카마사막을 대표하는 명소다.
이날 우린 순위에 대한 집착보다는 서로 함께 달리면서 레이스를 즐겼다. 덕분에 발목이 많이 부어 제대로 달릴 수 없었던 나에게는 여유를 가지고 달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우린 저녁노을이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마지막 체크포인트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달의 계곡’이 시작되는데, 날이 어두워 희미하게 형상만 보이는 ‘달의 계곡’의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바닥에는 마치 눈이 온 것처럼 하얗게 소금이 쌓여 있었고 소금으로 둘러싸인 동굴 속으로도 여러 번 지나갔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날씨도 매우 쌀쌀해졌고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달리다보니 체력도 모두 소모된 상태였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들 너무 배고프고 많이 힘들었는지 서로 포옹하며 격려했다. 서로 많은 얘기들은 안했지만 힘든 레이스를 같이하면서 우린 서로 너무 가까워졌다는 것을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달리면서 우린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 레이스였다. 힘든 레이스도 누군가와 같이 한다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고, 순위와 경쟁에만 집착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그동안 그냥 지나치기만 하면서 보지 못한 또 다른 멋진 세상이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그동안 난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날이었다. 그것은 마라톤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는 모든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며 달리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사막마라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모래사막보다는 산, 계곡, 협곡, 소금사막 등 다양하고 힘든 코스가 매일 반복됐다.

너무나 길었던 롱데이의 하루. 롱데이 코스는 1박2일로 대회가 진행되기 때문에 일찍 들어온 그룹은 다음날은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캠프 주변을 산책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아래 현지인들이 피워놓은 모닥불과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갔다. ‘별’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의 영혼이 자꾸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레이스는 12km이고 이미 순위는 정해졌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가 ‘SAVE THE CLIMATE : ENERGY REVOLUTION -GREENPEACE-’ 라고 적힌 깃발을 꺼내 들고 함께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사실 난 발목이 많이 부어있는 상태라 이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두 그룹이라 많은 카메라 불빛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너무 힘들었던 이번 대회도 이제 모두 끝이라는 생각에 우린 서로를 껴안으며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그동안 참가했던 사막마라톤 중 가장 힘들었던 250km의 레이스와 너무나 멋진 친구들과의 만남은 칠레 아타카마사막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 대회 협찬 : <노스페이스>, JDC(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 제주대학교, 제주특별자치도 스포츠 산업과

▲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선수와 함께 ‘SAVE THE CLIMATE : ENERGY REVOLUTION -GREENPEACE-’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안병식
| 1973년 생, <노스페이스> 소속이다.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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