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기름으로 반죽하는 ‘스트루델’
돼지기름으로 반죽하는 ‘스트루델’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4.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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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루델(strudel)

▲ 티롤의 전통 요리인 스트루델과 생햄 요리.

티롤에서 전세계로 뻗어나간 빵
좀 다른 얘기지만, 나도 명색 ‘아웃도어’ 애호가다. 주야장창 술청에서 막걸리나 푸던 솜씨에 아웃도어라니 좀 웃기는 수작이지만 인생의 뜻하지 않은 우여곡절 끝에 그리 되고 말았다. 그건 두어 해 전의 일인데, 식당 주인과의 불화로 술을 아예 ‘고푸’로 들이붓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간경변이 틀림없군요. 술은 이제 못 드십니다.”

간경화라고도 부르는 그 병 말이야? 의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3분간 말이 없다. 검사 수치를 불러줬더니 잠시 후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거, 돌이킬 수 없는 병이란다. 친구가 말한다.

“산에 가자.”

등산은 간경화를 고쳐준 명의
그렇게 새벽 4시에 일어나 꼬박 1년을 하루걸이로 산에 갔다. 울면서 갔다. 내가 이 지상에 던진 모든 업을 끌어안고 사과했다. 3월의 관악산이 처음이었다. 딱 약수터까지 갔더니 공황이 몰려왔다. 죽을 것 같았다. 못 간다고 했다. 새순이 돋고, 바야흐로 봄이었다. 봄이 되니 그때가 생각난다. 살자고, 산에 가서 빌었다. 나 좀 살려달라고, 치사하게 굴었다.

신영복 선생은 차마 상처 입은 산이 미안해서 가서 빌지를 못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염치가 없는 잡놈이라 그냥 떼를 썼다. 관악산 약수터도 못 가던 저질 체력이 4개월 만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주파하는 몸으로 변했다.

1년 후 다시 검사를 했더니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원래 간경변은 원상복구가 안 된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흔적이 없어졌네. 이상하네. 도대체 뭘 했어요?”

▲ 알프스 자락에 자리 잡은 어느 와이너리.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산이 즐비하다. 그렇지만 아기자기하지 않고 좀 무섭다. 나무는 성기고, 골이 깊다. 늑대와 멧돼지가 출몰한다. 정겹지는 않다. 그래도 수려하긴 하다. 물이 좀 적은 편인데, 어떤 국립공원에는 탁한 회색 물이 흐른다.그래도 좋다고 한다. 한국 설악의 물을 보여주면 아마 울 것이다.

이탈리아는 알프스를 이마에 이고 있다. 서쪽의 피에몬테(동계올림픽을 했던 토리노가 속한 지방)에서 동쪽의 베네치아 쪽으로 달리다보면 저 멀리 알프스의 연봉이 머리에 눈을 지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이탈리아 동쪽의 저 멀리 북부지방을 여행했다. 바로 트렌티노-알토 아디제 지방이다. 이렇게 부르면 잘 몰라도 티롤이라면 안다. 바로 라인홀트 메스너의 고향이 티롤이다. 과거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다. 그래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공용으로 쓴다.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이름도 그가 독일어권의 혈통임을 말해준다.

이 지역은 산악지역인데도 중턱 아래쪽은 와인이 잘 된다. 최상급의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 나온다. 너무 비싸서 한국에는 수입이 잘 안 될 정도다. 사과는 이 지역 특산이다.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후지’가 통일한 나라가 아니어서 다양한 사과를 맛볼 수 있다.

홍옥과 국광 합쳐놓은 사과 맛
티롤 지방의 사과는 마치 홍옥과 국광을 합쳐놓은 맛이다. 아삭하고 신선한 신맛이 있다-나는 오직 달기만 한 후지가 너무 싫은 사람이다. 오래 전, 우리 사과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티롤의 사과를 맛보고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산악지역이라 음식 문화가 좀 뒤떨어질 것 같은데, 식당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다양한 재료를 모두 쓰는 건 아니지만, 산악 특유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려 아주 맛있는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돼지 가공품은 아주 훌륭해서 그냥 소금에 절여 산악의 서늘한 기후에 말린 비계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추운 지방에서 비계는 아주 훌륭한 음식이다. 추위를 막아주고 충분한 열량을 준다. 과거 우리나라의 추운 지방에서도 개고기나 돼지고기를 처마에 걸어두고 그냥 말려서 썰어먹었다.

이 지역의 유명한 요리로 스트루델(strudel)이 있다. 유명한 사과를 졸여서 넣고 계피를 뿌려 내는 빵인데 반죽은 돼지기름으로 한다. 디저트처럼 설탕을 치지 않고 요리로 먹는 경우도 있다. 스트루델은 이 지역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세계의 빵집에서 즐겨 만든다. 한국에서 이 빵을 보고 반가워했던 기억도 있다.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지방은 이탈리아 관광 중에 꼭 들러볼 곳이다. 추천 루트는 우선 베네치아나 밀라노를 구경하고 연계해서 갈 수 있다. 밀라노에서 3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스키, 트레킹 등 아웃도어가 아주 잘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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