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헐~,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 글·김성중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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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등산장비점 집중탐구|남대문 VS 동대문- ② 현재

젊은 피 수혈, 2세 경영으로 변화 모색…최근 체육대회 등 단합 모임 활성화

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등산장비=남대문&동대문’이란 공식이 언제부턴가 무너졌다.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등산장비점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두 곳 모두 다시 활성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은 우리나라 등산장비점의 메카였다. ‘우리가 파는 것이 곧 명품이다’라고 할 정도로 업주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수많은 수입상들이 그들에게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 정도였다. 또 대부분의 매장은 등산장비를 판매하며 쌓은 지식으로 자체 브랜드를 제작하기도 해, 수입품으로 얻는 수익과 함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도 많았다.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의 등산장비점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 중반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칠 줄 모르던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 등산장비점의 호황도 1997년 IMF 이후 점차 퇴색되어 갔다. 당시 등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그만큼 등산장비점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클라이머들의 겔렌데인 북한산과 도봉산을 비롯해 서울 인근의 등산객들로 붐비는 청계산·수락산 등에 수많은 등산장비점들이 들어서면서 굳이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지 않더라도 귀한 전문 등반장비를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비점 난립, 재고 부담 등 커져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 등산장비점에 타격이 커졌다. 최근에는 대기업마저 아웃도어 브랜드에 손을 대면서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 대형 대리점이나 직영점을 오픈하는 등 영세 장비점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결국 문을 닫는 장비점들이 늘어났고, 남아있는 장비점들도 뾰족한 수 없이 한숨만 내쉬게 됐다.

오랫동안 동대문 시장에서 몸을 담고 있는 <승희산악>의 김금자 사장은 앞으로도 등산장비점들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1983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매장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죠. 하지만 5~6년 전부터 서울 인근의 산이나 도시에 수많은 장비점들이 생기더군요. 지금은 1990년대보다 장비점들이 10배 넘게 생겨난 거 같아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등산인구가 많이 늘긴 했지만, 장비점들이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는 현상이 빚어진 거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여러 브랜드의 장비를 판매하는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의 멀티숍들이 속속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판매 방식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였다. 즉 이전에는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먼저 주고 대금을 나중에 받던 ‘위탁판매 방식’이었는데, 이 무렵에 들어와서는 제조업체가 수주회를 통해 선주문을 받는 ‘사입 방식’을 택하면서 판매자가 재고를 고스란히 떠맡게 돼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탁판매 방식을 하고 있는 대리점이나 직영점에 비해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동대문 시장 34개의 장비점 중에 <종로산악> <현대설악> <동방레저스포츠> <승희산악> <디딤돌> <동대문산악> <러셀> 등 20개 정도가 멀티숍이다. 나머지는 멀티숍에서 대리점이나 직영점인 브랜드숍으로 업종을 변경했거나, 새롭게 들어선 브랜드숍이다.

남대문 시장은 동대문보다 장비점 수가 조금 줄었다. 동대문은 폐점하는 멀티숍이 많았지만 멀티숍이 다시 업종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브랜숍이 들어서면서 결과적으로 장비점 수가 줄지 않았다. 하지만 남대문 시장 등산장비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25개 정도였으나 현재 18개의 장비점만 문을 열고 있다. 그중에 멀티숍은 12개다. 그나마 동대문이 남대문보다 장비점이 많은 이유는 동대문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싸고 교통이 편리하며, 주위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상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대문 시장 등산장비점의 특징은 2세 경영이다. 부모 밑에서 일을 배운 2세들이 부모의 노하우와 자신의 새로운 경영 방식을 접목한 마케팅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 20~30대 직원을 현장에 배치해서 고객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현재 <종로산악> 이수강 여사의 아들인 이홍건 씨를 비롯해, <밀레> 김용기 사장의 아들 김동진 씨, <동대문산악> 이창헌 사장의 아들 이장욱 씨, <캠프1> 임경민 사장의 아들 임기혁 씨 등이 동대문에서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남대문 등산장비점 중에서 2세 경영을 하는 곳은 황보현 사장의 아들 황한배 씨가 회현역 인근에서 운영하는 <아리랑산맥> 한곳뿐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으로 승부한다
이외에도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의 멀티숍들은 그들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멀티숍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과 전문성. 브랜드숍은 대부분 한 브랜드의 제품만을 판매하는 반면, 멀티숍은 여러 브랜드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암·빙벽 전문장비점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전문 산악인 출신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전문성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은 멀티숍들도 있다. 오래전부터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던 동대문의 <동진레저>는 <블랙야크> 간판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브랜드숍으로 변화를 꾀했다. 동대문 <밀레>의 김영우 사장은 <밀레>를 중점적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여러 거래처와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악스포츠’라는 상호와 브랜드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즉 멀티숍과 브랜드숍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불황 속에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 브랜드숍이 들어서자 대부분의 업주들은 이를 아주 마땅치 않게 여겼다. 실제로 <아크테릭스> 수입업체인 넬슨스포츠코리아에서 직영점을 오픈했을 때만 해도 큰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직영점이라는 특성을 잘 살려서 다른 매장을 찾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없을 때 직영점에서 제품을 바로바로 공급해주는 허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금은 기존의 멀티숍들도 더 많은 멀티숍이나 브랜드숍이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 들어서기를 바라고 있다. 1979년부터 남대문에 터를 잡은 <유명레저>의 김태서 사장은 “어차피 앞으로 매장이 계속해서 늘어날 추세라면 동대문과 남대문에 훨씬 더 많은 장비점이 들어서야 한다”며, “동대문과 남대문에 오면 세계의 모든 브랜드와 제품을 한번에 볼 수 있게 대중적인 제품과 전문적인 제품을 모두 갖추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현재 동대문을 보면 선의의 경쟁이 가장 눈에 띈다. 지난 4월13일에는 동대문 시장 대부분의 등산장비점이 문을 닫고 업주와 직원을 비롯해 거래처 직원들까지 참여한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다. <디딤돌>의 서명수 사장과 주위의 젊은 직원들이 나서서 개최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사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 장비점이 모두 참여하는 체육대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서로 다툼이 일고 문제가 생겨서 그 후에 없어졌죠. 이번에도 준비하면서 ‘또 예전처럼 불미스런 일이나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막상 체육대회를 하고 나니 다들 좋아하더군요. 이후로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고요. 앞으로도 매년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를 열 생각입니다. 그때는 한 곳도 빠짐없이 100% 참가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또 발전적인 방향에 대해 회의나 모임도 자주 가질 계획이에요.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야죠.”

▲ 동대문 등산장비점의 ‘산증인’ <종로산악> 이수강 여사
최근 동대문 시장 등산장비점 골목을 보면 멀티숍과 브랜드숍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계천 방향 라인에는 <살로몬> <케이투> <쉐펠>, 지하철 종로5가역 주변에는 <블랙야크> <네파> <에코로바> 등의 브랜드숍이 들어서 있다. 지난 6월1일에는 <러셀> 김춘호 사장이 메드아웃도어(대표 김병철)와 디케이크리에이션(대표 이종수)에서 전개하는 브랜드가 주축이 된 멀티숍 <러셀> 2호점을 오픈했다.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대부분의 등산장비점 업주들은 “앞으로 대중성을 고려한 브랜드숍과 전문성을 고려한 멀티숍의 조화가 큰 장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랜드숍이나 멀티숍 모두 각각의 특징을 잘 살려야만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이 다시 대한민국 등산장비점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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