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한라산은 한 몸이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한 몸이다
  • 글·김성중 기자 |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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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RK TRAVEL 01 성판악~관음사 트레킹

▲ 화창한 날씨에 한라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백록담으로 향하고 있다.

검은 섬 제주는 사시사철 빼어나다. 봄이면 유채꽃으로, 여름이면 신록으로, 가을이면 억새로, 겨울이면 눈꽃으로, 숨 쉴 틈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를 수놓은 수백 개의 오름과 깎아지른 절벽은 섬을 더욱 이국적으로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풍광에 젖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우리는 풍만한 대지를 만난다. 보아도보아도 질리지 않는 제주도, 그 섬에 가고 싶다. <편집자주>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록…노루·구상나무 등 동식물 다양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으로 끝나지만, 우리나라의 처음과 끝을 잇는 상징적인 산은 바다 건너의 한라산이다. 한라산은 제주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고향인 동시에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하늘을 가릴 듯 빼곡히 들어선 울창한 수림,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역사와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곳, 한라산 산행은 그래서 더욱 즐겁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중앙에 위치한 한라산(漢拏山, 1950m)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름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다(雲漢可拏引也)’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부악·원산·진산·두무악·부라산·혈망봉·여장군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왔고, 영주산이라 하여 금강산(봉래산)·지리산(방장산)과 함께 삼신산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20만 년 전에 생성된 제주도에서 네 번의 화산 폭발 끝에 탄생한 한라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옛날에는 고관대작들의 유배지로, 일제강점기 때는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로, 8·15광복 이후에는 4·3사건 등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제주도에서 한라산은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렇게 한라산은 섬의 중심에 서서 제주도의 모든 역사와 함께 했다. 그래서일까. 한라산에 올라 귀 기울이면 섬사람들의 애절한 한숨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 성판악 코스 등산로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바람과 돌이 만들어낸 검고 푸른 산
한라산 산행의 들머리는 해발 750m에 위치한 성판악휴게소. 등산로에는 따가운 햇볕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간혹 바람이라도 불면 시원함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한라산의 나무들은 금강송처럼 중간에 잔가지가 없고 곧게 자라 있었다. 아마도 곧게 자라지 못하면 쌓인 눈 무게에 부러져 저절로 도태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라산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할 정도로 기상변화가 심한데, 맑은 날을 찾아 산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1km 정도 가고 나서야 해발 100m씩 오를 정도로 길이 아주 완만했다. 하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안내판에 적힌 거리만도 성판악휴게소에서 백록담까지 9.6km.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높은 한라산이 그리 쉽게 정상을 보여줄 리 만무했다. 걷기 쉬운 대신 그만한 대가를 치르라는 뜻일 게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등산로 옆 산죽 우거진 숲 사이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루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소리였다. 한라산에는 약 1500마리의 노루가 서식한다고 하는데, 이 넓은 한라산에서 그것도 가장 등산객이 많이 찾는 성판악 코스에서 운 좋게도 노루를 본 것이다.

사라악대피소에 도착하기 전 사라악약수터가 나왔다. 사라악약수터는 성판악휴게소에서 4km, 해발 12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약수 한 모금 쭉 들이켜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한라산은 대부분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기 때문에 덩치에 비해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성판악휴게소부터 백록담까지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사라악약수터와 진달래밭대피소, 단 두 군데다. 무엇보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는 약수터가 없고 식수를 유료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사라악약수터에서 충분히 식수를 담아 가는 것이 좋다.

▲ 고지대에서 자란다는 구상나무. 한라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구상나무 군락지가 분포해 있다.

진분홍색 산철쭉은 오백장군의 눈물인가
초보자라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만큼 길이 완만했지만, 왠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진달래밭대피소까지 3.2km라는 안내판을 보자 기운이 더 빠졌다. 등산로 주위로 빼곡히 자리한 울창한 숲길도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지루해질 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한라산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초록색으로 한껏 물들었던 지금까지의 길과는 달리 울긋불긋한 산철쭉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주왕이 흩뿌린 피가 꽃이 되었다는 주왕산의 수달래처럼 주변을 붉게 수놓은 한라산의 산철쭉들. 이쯤에서 이곳에 전해지는 애잔한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제주도 천지창조 설화 속에 등장하는 ‘설문대 할망과 오백장군’의 이야기다.

옛날에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울 정도로 힘이 세고 키가 큰 설문대 할망이 살고 있었다. 누우면 다리가 문섬에 닿았고, 한라산 정상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빨래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큰 거인이었겠는가. 백록담이 지금처럼 움푹 파인 것도 사실은 설문대 할망의 머리와 엉덩이 무게를 못 이겨내서라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설문대 할망은 자식 욕심도 많아서 슬하에 아들 500명(오백장군)을 두고 살았다. 그러나 대흉년이 들어 가난에 허덕이던 설문대 할망은 오백장군을 먹여 살리기 위해 큰 솥에서 죽을 끓이다가 그만 솥 속으로 빠져 죽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백장군은 배고픔에 못 이겨 허겁지겁 죽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기던 막내아들이 솥에서 어머니의 뼈를 발견하고 비통하게 여긴 나머지 형제들과 이별하여 떠났다.

▲ 큼직막한 분화구 속에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백록담.

막내아들은 바다에 나가 며칠을 구슬피 울다가 섬이 되었는데, 그 섬이 바로 제주도 서쪽에 있는 차귀도라 한다. 그리고 나머지 499명의 아들들도 슬픔에 통곡하다가 한라산 영실에서 기암괴석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한라산은 늦봄이 되면 이렇게 오백장군의 눈물이 진분홍색 꽃이 되어 다시 피어난다.

아무튼 진달래밭대피소는 지난해 들렀을 때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새롭게 단장을 한 상태였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는 1.5km 정도. 진달래밭대피소가 해발 1500m에 위치해 있으니 앞으로도 해발 400m가 넘는 높이를 올라가야 했다. 등산로를 따라 고개를 들자 백록담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백록담으로 이어진 계단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완만하던 등산로가 갑자기 가팔라졌다. 뜨거운 햇빛도 고스란히 머리위로 떨어졌다.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고 장딴지에 힘을 한껏 주고 올랐다. 여름이 오기 전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듯 산철쭉은 진분홍색의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백록담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다. 계단 뒤로는 제주 시내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봉긋 솟아오른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들도 눈에 들어왔다. 검고 거친 현무암을 녹색의 옷으로 갈무리한 오름들은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한 풍광을 연출했다.

‘백록담 가서 부정한 소리 하면 안개 껴서 길 잃는다’는 말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구름 한 점 없던 한라산에 조금씩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한라산의 기상은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구름의 기세도 백록담의 위용에 수그러들었는지 더 이상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다.

▲ 백록담에 오르기 전 초원처럼 넓게 펼쳐진 지대가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백록담 맑은 물은 아직도 흰사슴을 기다린다
흰사슴이 물을 마시던 곳이라 했던가. 드디어 큼지막한 분화구 속에 맑은 물을 담고 있는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백두산의 천지에는 못 미치겠지만, 이렇게 푸른 하늘을 모두 품은 듯 고요히 물을 담고 있는 백록담을 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 관음사 코스 용진각대피소를 지나고 있다. 뒤로 한라산 북벽과 왕관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백록담에서 하산길은 성판악휴게소로 다시 내려가거나 관음사로 내려가는 코스, 두 개가 있다. 어리목이나 영실 코스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은 분화구 안쪽 사면에 분포한 암석이 쉽게 붕괴되는 돌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어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왔던 길보다는 새로운 길로 하산하는 코스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백록담에서 한라산의 북쪽 사면인 관음사 코스로 내려갔다.

관음사 코스는 산세가 가파르지만 한라산의 다른 코스에 비해서일 뿐, 이곳 역시 넉넉한 한라산의 여유가 느껴졌다. 오히려 성판악 코스보다 훨씬 풍광이 좋았다. 앞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졌고, 왼쪽으로는 화산이 만들어낸 검은색의 기암절벽이 이어졌다. 넓고 평탄하게 이어지다 쏙 들어간 장구목 능선도 장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라산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구상나무 군락지도 볼 수 있었다. 구상나무, 고사목 등 등산로 사이로 빼곡하게 늘어선 숲길은 ‘하늘 위의 수목원’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용진각대피소를 지날 때는 삼각봉과 왕관바위가 멋진 위용으로 취재진을 마중했다. 이렇게 맑은 날 멋진 절경을 볼 수 있게 해준 설문대 할망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내려올 수 있는 관음사 코스에서는 이렇게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웅장한 기암절벽과 숲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용진각대피소를 지나 만나게 되는 탐라계곡도 이 코스의 자랑거리다. 비록 비가 오지 않으면 쉽게 물을 볼 수 없는 마른 계곡이지만, 장마철에는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급류가 흐른다고 한다. 용진각대피소에서 3시간 남짓 걷자 비로소 관음사지구 안내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선명한 날씨 덕에 제주도 시내와 푸른 바다, 그리고 여기저기 솟아오른 오름들을 볼 수 있었다.

힘든 만큼 보답을 얻는다고 했던가. 9시간이나 걸려서 둘러볼 수 있었던 한라산은 지루하고 힘들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 하늘의 푸른 빛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백록담, 짙은 향기 내뿜으며 머리를 맑게 해준 울창한 숲, 그리고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기암절벽들….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서나 보이는 한라산이지만 백록담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한라산과 제주도의 모든 모습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제주가 한라산이요, 한라산이 제주’라고 했던 걸까. 그렇구나.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이 자연스레 한라산으로 향하는 까닭이.

▲ 관음사지구 안내소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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