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 캐피탄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는 <엘캡>. |
<엘캡>을 전개하고 있는 동보상사는 오랜 세월 섬유 산업에 몸 담았던 황의윤 대표가 1991년에 설립한 회사로 초창기에는 태평양·쌍방울·FnC코오롱 등 국내 유명 브랜드에 니트 원단을 납품하며 볼륨을 키웠다. 회사가 커지면서 브랜드 런칭에 관심을 가진 황 대표는 사업을 하며 일궈온 신뢰와 신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9년 <엘캡>을 런칭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등산복 개념이 별로 없었죠. <아디다스>나 <푸마> <나이키> 같은 외국산 스포츠 브랜드들이 아웃도어 브랜드를 대신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 국내에도 하나둘씩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생겨나면서 브랜드 런칭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13년 동안 언더웨어 가격 동결
1999년은 이미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 굵직한 토종 브랜드들이 여럿 등장했을 시기다. 수많은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롯해 <코오롱스포츠> <케이투> <블랙야크> 등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포진하고 있던 한국 시장에서 소규모 업체가 런칭한 <엘캡>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바로 ‘생각의 전환’이다.
“이미 시장의 경쟁 구도가 확실했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으로는 잘 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브랜드가 시도하지 않았던 언더웨어를 공략했죠.”
황 대표는 수많은 업체들이 내놓는 비슷한 제품으로 맞서기보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모색했다. 바로 기능성 언더웨어 분야다. 섬유 산업에 오래 몸 담고 있었던 만큼 원단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보인 기능성 언더웨어는 등산 의류 업계에서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엘캡>을 빠르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쿨맥스 스판 런닝 |
<엘캡>의 언더웨어는 99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하루 단위로 물가가 폭등하는 요즘 세상에 13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니.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힘든 결정이다.
“<엘캡>의 언더웨어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다른 브랜드들이 저희 제품을 베껴가더군요. 그만큼 언더웨어의 인기가 대단했죠.”
해외 유명 브랜드를 비롯해 많은 국내 브랜드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지만 <엘캡>은 국내에서 100% 제품을 생산해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해외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제품력 자체만 봤을 때 큰 차이가 없거든요. 각 브랜드 제품을 선별해 품질 테스트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품질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등산복은 패션보단 기능성이 중요
<엘캡>은 최고급 원단만 사용한다. 그래서 타사의 동급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국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도 동보상사는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이유는 하나다. 고품질의 기능성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황 대표는 아웃도어 시장에 패션화 바람을 경계했다. 시시각각 날씨가 변화하는 야외에서 아웃도어 의류는 기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웃도어 의류가 패션이 아니라 장비라고 생각한다.
▲ 동보상사는 제품의 필드테스트를 위해 원정대에 꾸준히 지원을 하고 있다. 사진은 백두산 원정대 모습. |
런칭 이후 지금까지 순탄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엘캡>이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아웃도어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지만 중소업체들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대기업들이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하면서 저희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어요. 어마어마한 마케팅 비용을 써서 홍보를 하고 대규모 물량으로 제품을 공급하니 중소 브랜드들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요.”
황 대표는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해외 브랜드를 선호하거나 브랜드만 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성향이 문제다.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대형 브랜드들이 아웃도어 시장을 독식하면서 무너지는 중소 브랜드가 여럿이다. 문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무너지면서 시장에 풀리는 땡처리 제품들이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땡처리 제품이 시장에 풀리면 정가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존 브랜드들에 타격이 올수밖에 없다.
제품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식도 문제다. 아웃도어 제품은 기능에 따라 소재 사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든 기능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황 대표는 “소비자들이 용도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만이 살 길
▲ 동보상사 사무실 전경. |
“요즘 많은 중소 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토종 브랜드가 날개를 펼칠 수 있게 소비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웃도어 시장 규모 3조원 시대. 거대 시장으로 변모한 아웃도어 시장에도 명암은 있다. 해외 브랜드가 맹활약하는 반면 몇몇 토종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국산 브랜드의 활약이 미비하다. 황 대표는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이 항상 건강하기 위해서는 토종 브랜드의 활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오고 있지만 정작 토종 브랜드가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엘캡>의 로고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거미 ‘주(蛛)’의 전서체죠. 거미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실을 뽑아내는 모습이 꼭 클라이머 같잖아요. 저희 옷을 입는 사람들이 거미처럼 자유롭게 아웃도어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만들었습니다.”
<엘캡>은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다. 자유롭게 산과 들을 누비는 소비자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제품을 제작한다. 황 대표는 “13년 동안 한결 같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사랑에 보답한 만큼 앞으로도 더 나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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