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러글라이딩 월드컵 챔피언 정세용 선수
세계 패러글라이딩 월드컵 챔피언 정세용 선수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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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5일부터 일주일간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세계 패러글라이딩 월드컵’ 대회 마지막 날. 국내외 내로라하는 비행 고수들이 그동안의 치열했던 경기를 마치고 대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조그만 키의 동양인 선수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전 세계의 일류 패러글라이딩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정세용(45) 선수다.

사실 정세용 선수가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항상 세계 상위 랭커에는 ‘정세용’이란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하거니와 국내에서는 20년 가까이 1~3위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활공스포츠를 시작한 시기가 1986년이었어요. 당시에는 활공스포츠라고 해봐야 행글라이더가 전부였거든요. 이듬해 패러글라이더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 ‘바로 이거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국내 패러글라이딩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가 몇몇 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패러글라이딩의 불모지였던 국내에 첫 발판을 마련한 <진글라이더>의 송진석 사장을 비롯해 이수열 교수, 그리고 정세용 선수가 그들이다.

“패러글라이딩의 메카인 유럽으로 눈을 돌렸죠. 많은 대회 경험을 통해 선진 기술을 습득하고 싶었거든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거였어요. 처음 세계 대회에 참가한 것이 91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는데,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했죠. 첫날 비행부터 부상을 입어 예선 탈락했어요. 정보와 경험,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거죠.”

정세용 선수는 이를 악물고 93년에 열릴 스위스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다. 대회 결과는 21위. 150명의 A급 선수들 속에서 두 번째 출전치고는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그의 기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시기는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7위의 성적을 거두면서부터다.

“당시 10위권 안에는 대부분 유럽 선수들이었어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선수층도 매우 두터웠거든요. 당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양인으로 10위권 안에 들어간 선수는 아마 제가 처음일 겁니다.”

현재에도 세계적인 패러글라이딩 대회에는 정세용 선수가 거의 빠지지 않고 출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출전권은 한 나라 당 순위별로 3~5장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는데, 그가 국내 랭킹 1~3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이 하루 빨리 실력을 쌓아 자신을 넘어서길 기대하고 있다. 자신을 이겨야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경합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하늘은 어렸을 적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제쳐두고 젊은 나이에 패러글라이딩에 입문했다. 그가 패러글라이딩의 매력에 빠진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현재 그는 <진글라이더>에서 이사로 근무하면서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한국활공협회의 기술교육장도 겸하면서 안전한 비행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도 구상중이다. 그의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아직도 멈출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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