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짙은 계곡에서 여름 추억을 낚으리!
숲 짙은 계곡에서 여름 추억을 낚으리!
  • 글·김영 프리랜서 작가 | 사진·염동우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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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 CAMPING | 치악산 금대오토캠프장

▲ 캠프장 한쪽에 텐트를 치고 별빛을 친구 삼아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구룡사~석조불두~치악민속박물관~금대오토캠프장~치악산휴양림~토지공원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 땅도 아열대기후로 변해가는 중인가보다. 6월 중순인데 날씨는 벌써 후덥지근하다. 이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숲 짙은 계곡이 최고가 아닌가. 때 이른 무더위를 피해 숲 짙고 계곡 좋은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 기슭으로 달렸다.

장비협찬·스타런, 코베아

▲ 구룡사로 오르는 숲길에서 만난 돌탑. 사람들의 작은 소원들이 하나 둘 모여 이루어졌다.
원주의 명산인 치악산(1282m)은 주능선의 길이만도 대략 14km에 이르며, 매화산에서 시작된 등줄기는 비로봉과 향로봉, 남대봉을 거쳐 시명봉에서 머리를 숙이기 시작한다. 이 드넓은 등줄기의 품 안에는 사다리병창, 구룡사계곡, 금대계곡, 황골계곡 등 계곡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세상이 남아 있다. 그중 금대계곡은 은방울꽃과 둥글레꽃이 피어난 산책로와 영원사, 50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오토캠프장이 있어 주말 캠퍼들의 여름철 여행지로 손꼽힌다.

토요일 오후 금대오토캠프장으로 가기 위해 새말에서 막국수와 편육으로 배고픔에 허기진 배를 채웠다. 시원한 육수에 얼음을 둥둥 띄워 먹는 막국수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면서도 지역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다.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달짝지근한 것이 춘천막국수라면 원주의 막국수는 면발이 부드럽고 김과 들기름이 많이 들어간다. 때문에 원주 지역의 막국수가 서울 사람들의 입맛엔 맞지 않을 수 있다.

배를 채우고 찾아 나선 곳은 치악산의 천년고찰 구룡사다. 2003년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최근 복원한 대웅전은 옛 향기가 없다 해도 보광전, 동종, 산신각, 소나무숲 등은 일품이다. 특히 구룡사 들머리에서 공원관리사무소 앞까지 이어진 길은 양쪽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 갈참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서늘한 녹색 바람이 일렁이는 숲길을 지나면 구룡사 입구 상가 주차장이다. 손님맞이에 분주한 상가를 끼고 돌면 구룡사 매표소. 치악산의 명물인 황장목의 벌목을 금했다는 황장금표는 매표소 맞은편 언덕에 있다. 아직까지 제법 글자가 뚜렷한 걸 보면 이 지역의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 흔적이 아닌가 싶다. 구룡교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 구룡사로 들어서니 신령스런 오동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구룡소. 의상대사에게 패한 아홉 마리 용 중 한 마리가 이곳에 기거했다고 한다.

신령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구룡소
화마로 대웅전이 소실된 전력 때문인지 산불을 막으려는 염원을 담은 방제문이 대웅전을 비롯해 곳곳에 붙어 있다. 대웅전을 둘러본 후, 제법 옛 사람의 손때가 묻어 보이는 산신각에 올라 절을 하고 구룡소까지 산책을 했다.

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거친 물살이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구룡사 창건 설화에서 유래한 구룡소는 의상대사에게 도전했던 아홉 마리 용 중 한 마리가 기거하던 곳이라 한다. 전설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사물은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보면 폭포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겠지만, 폭포 아래서 보는 구룡소는 제법 웅장하고 신비롭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듯한 쪽빛 소와 폭포를 끼고 이어지는 급경사의 바위지대는 이곳을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다.

▲ 의상대사와 아홉 용의 전설이 전해지는 구룡사.
구룡소에서 되돌아서 매표소로 나왔다. 치악산을 둘러본 시간이 고작 1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열기 아래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승용차는 의자에 앉기가 겁날 정도였다.

다음의 목적지는 금대오토캠프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석조불두다. 42번 국도 상에 위치한 석조불두는 원래 교항리와 평장리의 경계에 있었다고 한다. 이 불두를 도로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교항리 자리로 옮긴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병을 물리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하지만 조각 양식 수법으로 보면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두의 크기를 보아선 몸체가 4m 이상은 됐을 것이다.

문화재나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면 길을 변경해서라도 지켜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문화재를 옮겨 버린다. 이 불두 역시 고속도로 공사로 몸을 잃은 것이다. 달랑 머리만 남은 불두를 보고 있노라니 이 땅의 문화재에 사형선고를 내린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 무더운 날씨를 맞아 야외로 나온 캠퍼들로 금대오토캠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캠프장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낭만
교항리에서 금대오토캠프장으로 달리다 치악산민속박물관 이정표를 따라 행구동으로 들어섰다. 국도를 버리고 간선도로 들어서자마자 차량들로 정체다. 행구동에 원주 시내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들어선 후, 멋진 풍경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의 자동차가 1차선 도로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물어물어 박물관을 찾아가니 박물관은 임시 휴업이란다. 힘들게 찾아간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42번 국도로 내려와 판부면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금대오토캠프장으로 들어섰다. 계곡 입구부터 차들이 줄은 서는가 싶더니 야영장으로 들어서자 발 디딜 틈도 없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다 보니 너도나도 시원한 계곡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람들로 가득 찬 캠프 사이트를 비집고 들어가 제법 아담한 공간을 만들었다.

느지막이 텐트를 치고 나니 향긋한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한다. 삼겹살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돼지고기 삼겹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고기도 없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삼겹살은 더더욱 캠퍼들에게 인기 있는 품목이 돼 버렸다. 하지만 찾는 이가 많다보니 이젠 ‘서민의 고기’라고 하기엔 다소 턱이 높아져 버렸다. 예전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말은 이제 ‘금겹살에 소주 한 잔’이란 말로 바꿔야 할지 모른다.

지글지글 타는 고기에 시원한 소주 한 잔이 온종일 더위에 지친 몸을 녹인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즐기는 휴식. 기름이 쫙 빠진 고기는 그래서 더 맛있는가 보다. 달무리 진 밤하늘을 벗 삼아 일상의 일들을 되뇌다 깜박 잠이 들었다.

박경리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토지문학공원

▲ 박경리 선생의 체취가 남아 있는 토지문학공원.
이른 아침부터 캠프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소란스럽다. 도심의 찌든 공기, 부모님이 짜 준 빡빡한 일정에 갈피를 못 잡던 아이들이 오랜만에 자유를 얻었다. 가족 캠핑의 즐거움은 이렇듯 아이들의 꾸밈없는 웃음을 접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른 아침, 고 박경리(朴景利, 1927~2008) 선생의 흔적을 살피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김약국의 딸들’ ‘토지’로 널리 알려진 박경리 선생은, 지난 1980년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옥바라지 하는 딸을 위해 서울을 떠나 원주로 터전을 옮겼다. 선생은 이곳 단구동 저택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토지’ 4부와 5부 집필하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5월5일 선생은 이 세상을 영영 떠나셨다. 지금은 고향인 통영에 잠들어 계시지만 평소 화려한 것을 싫어한 선생의 뜻에 따라 묘비도 세워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이곳 토지문학공원은 선생이 살던 집 주변을 공원화한 것이다. 1995년 선생의 옛집이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돼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한국토지공사가 공원 부지로 결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엔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평사리의 모습을 축소해 놓았고, 생전에 글을 쓰던 방과 집 앞의 고추밭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 선생은 이 세상을 떠나셨으니 누가 또다시 질박한 서민의 삶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선생의 체취가 남아있는 공원을 거닐다보니 먼 남쪽나라 통영에 잠들어 계신 선생이 또 그리워졌다.

▲ 42번 국도 상의 교항리에 있는 석조불두. 도로공사로 인해 몸은 묻히고 머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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