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듬산의 속살을 보셨나요?”
“한듬산의 속살을 보셨나요?”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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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대둔산 - 수락리~석천암~낙조대~마천대~군지골~수락리 원점회귀 코스 4시간 소요

대둔산(878m)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다.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더미란 뜻의 ‘듬’이 합쳐진 것이다. 또 ‘한듬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한(恨)이 깃든 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름에 여러 이야기를 품은 만큼 대둔산의 역사 역시 순탄치 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임진왜란부터 동학농민항쟁을 거쳐 6·25전쟁까지 강약을 가늠할 수 없는 생채기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남쪽으로는 전북 완주, 서북쪽으로는 충남 논산, 동쪽으로는 충남 금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에는 전북 완주 방면에 3개, 충남 논산 방면에 2개, 금산 방면에 1개 등 모두 6개의 등산로가 있다. 이중 기암괴석이 뚜렷한 선을 자랑하는 전북 완주 쪽과 깊은 계곡에 비밀을 간직한 듯한 충남 논산 쪽을 포인트로 산의 동쪽과 서쪽이 또렷하게 구분된다. 물론,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대둔산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고 싶다면 기암봉과 괴석들이 많은 전북 완주 쪽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를 비롯해 입석대·신선바위·장군봉·낙조대 등이 주능선 남쪽인 완주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산중턱까지 놓인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등이 편안한(?) 산행과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하지만 논산 수락계곡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완주 쪽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수락계곡 군지골의 고즈넉한 계곡길과 함께 낙조대에서 마천대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이들 코스는 결국 원점회귀나 종주 등 다양한 코스와 연결된다. 이게 또 대둔산 산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낙조대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에 숨이 턱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면 그게 산행인가, 여기 계곡이 조용하고 얼마나 좋다고.”
이제 막 주차장에서 승전탑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자 고즈넉한 숲길이 나온다. 이번 <컬럼비아스포츠웨어> 충남 아산·천안·보령 고객들과 함께 할 산행은 대둔산 북서쪽의 수락계곡 주차장에서 시작해 석천암~낙조대~마천대~군지골을 거쳐 수락계곡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초입 오르막이 가파르긴 하지만 건강한 성인 걸음으로 4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석천암과 수락계곡 갈림길에서 석천암으로 발길을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일 뿐이었다. 잠시 후 낙조대와 석천암 갈림길이 나오자 대둔산이 “진정한 오르막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하고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싶다. 숨이 턱 끝까지 끌려온다.

가파른 오르막에 한 박자 쉬어가려나 보다.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목도 축이고 간식도 먹는다. 한 참가자가 급한 오르막 산행에 놀란 근육을 툭툭 두들기며 올라가는 기자에게 참외를 건넨다. 희미하게나마 찬 기운이 스며있는 참외 한쪽에 기운이 난다.

물줄기를 품은 산줄기를 걷는 재미

한 시간쯤 올라 왔을까. 이름 그대로 일몰과 일출이 장관이라는 낙조대에 닿는다. 이제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대둔산 정상, 마천대에 도착할 것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좀 쉬어볼까 하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끝내준다.”는 말에 금방 마음이 급해진다. 낙조대 사거리를 지나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줄곧 능선길이다. 중간중간 이정표가 있으니 길 잃을 염려는 없다.

겁이 많다면 움찔 거릴 만한 암릉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 사방이 탁 트인다. 마천대다. 삐죽 솟은 개척탑의 번쩍거리는 금속 표면이 생뚱맞긴 하지만 동쪽으로 펼쳐진 계룡산(845m), 서대산(904m), 천태산(631m)과 남쪽으로 자리한 덕유산 향적봉(1,614m)에서 남덕유에 이르는 덕유능선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거기에 전북 완주 쪽의 집단시설지구며 케이블카도 보인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양 옆을 봐도 이어지는 산줄기에 속세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온 것 같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란 의미로 ‘마천대’라고 했다는 것이 이해된다.

무사히 정상에 오른 참가자들은 대둔산 산행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 사진 찍어주기 바쁘다. 어디를 배경으로 해도 섭섭하지 않다. 날씨도 좋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한두 시간 전쯤 괴로워하던 오르막도 이미 옛일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낙석 때문에 우회하도록 한 220계단에 이르자 대둔산은 울뚝불뚝 근육자랑을 시작한다. 수락계곡 지대를 ‘리틀 캐니언(canyon)’이라고도 부른다더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암 사이를 계단으로 걷는 기분, 구름 위를 걷는 기분도 어쩌면 이와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산에 폭 안긴 숲길이 고즈넉하다 못해 어두침침한 것이 살짝 한기마저 든다. 바로 수락계곡의 백미인 군지골이다. 수직절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동학혁명 때 관군에게 쫓기던 동학군이 오도 가도 못하고 전멸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군인들의 지옥’이라고도 불렸단다.

이름 때문인지 한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골짜기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더해진다. 어쩌면 깊은 협곡에 긴긴 세월 동안 상처 난 속을 숨기느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발길만 아니라면, 그 상처 함께 보듬으면 좋으련만. 대둔산은 여전히 말이 없다.

대둔산 트레킹
수락계곡 주차장에서 시작해 석천암~낙조대~마천대~군지골을 거쳐 다시 수락계곡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는 전북 완주, 충남 금산·논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의 등산로 중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총 5km 정도 되는 거리로 4시간에서 넉넉하게 5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하다. 수락계곡을 끼고 있지만 마실 물을 구할 곳은 마땅치 않으니 든든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낙조대 근처에 매점과 산장이 있지만 여기까지 가는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아 목이 탄다.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쯤 걸으면 6·25전쟁 때 전사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대둔산승전탑이 보인다. 여기부터 산길이 시작되고, 석천암과 수락계곡 갈림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석천암이 아닌 수락계곡으로 방향을 틀면 군지골을 지나 220계단에 닿는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대둔산 정상 마천대에 도착한다. 호젓하고 시원하게 계곡길을 걷고 싶다면 이 길을 택하면 된다. 다만 가파른 계단이 많으니 관절이 좋지 않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 없음.
주차료는 승용차 2000원, 버스 3000원. 대둔산 수락계곡 관리사무소 (041)732-3568


별미
수락계곡 주차장 근처에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전국 공통의 산자락 메뉴와 꼭 같이 산채비빔밥부터 보리밥, 두부 그리고 얼큰한 닭볶음탕으로 이어진다. 비슷비슷한 음식점들 중 수락상회대둔산식당(041-733-9855)이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단체산행이 있을 때 찾으면 괜찮다. 산채비빔밥 5000원, 보리밥 5000원.




교통

▶ 수도권→경부고속도로→서대전IC→1번 국도(논산 방면)→연산 사거리→벌곡 방면(좌회전)→벌곡면 소재지 삼거리(우회전)→수락계곡 주차장 <2시간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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