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몇 개의 플라스틱을 사용했을까. 무심코 사용한 플라스틱은 결국 우리 몸으로 되돌아온다.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팩. 리필리 김재원 대표는 종이팩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리필리는 어떤 회사인가요
‘종이팩에는 왜 우유만 담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환경적으로도 문제가 생기지만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런 문제점들 때문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이팩은 재활용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화장지나 페이퍼 타월로 재활용할 수 있는데 왜 많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졌죠. 그렇게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하기 위해 종이팩에 식음료 외에도 생활용품, 화장품 등 다양한 품목을 담을 수 있도록 연구하는 종이팩 패키징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리필리Refeely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리필리는 채우다라는 뜻의 리필Refill과 느끼다Feel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제품을 구매하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하는 여정을 통해 좋은 경험을 만들어 드리자는 의미 죠. 리필리에서는 현재 리필용 종이팩 제품을 출시하고 있어요. 재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이나 유리들은 버리지 않고 세척해서 오래 사용하고, 물질재활용이 가능한 종이팩은 리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리필리가 제안하는 새로운 리필 라이프입니다. 플라스틱 폐기량은 줄어들고 더 활발한 자원순환이 가능한 구조죠. 그래서 리필리는 종이팩에 더 다양한 상품을 담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친환경 패키징 시장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금융학과 경제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을 분석할 때 단순히 재무제표만 보는 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기업 가치를 평가합니다. 우리나라에는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개념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단순히 돈만 잘 벌어서 주주들만 배불리 먹고사는 시대가 아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탄소배출권 컨설팅 회사를 다니면서 유럽 시장을 직간접적으로 접했고, 자연스럽게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잡게 됐고 그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것이 패키징 시장이라고 봤습니다.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한 움직임은 굉장히 활발한데 플라스틱이 저렴하고 편리한 측면은 있으니까 쉽지 않잖아요.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먼저 기업에서 바꿔야 소비자도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구조고요. 그래서 기업의 입장에서 풀어보고자 친환경 패키징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플라스틱과 종이팩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다른가요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생분해되기까지 5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지만, 종이팩은 5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분해되지 않은 플라스틱은 계속 바람이나 물에 의해서 퍼지게 됩니다. 결국 토양이나 해양에 미세플라스틱이 스며들게 되고, 공기 중에도 떠다녀요. 저희가 쓴 플라스틱을 먹고 마시고 있는 거죠. 미세플라스틱이 몸에 들어오면 자폐성 영유아나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기도 하고, 생식기에도 영향을 미쳐 난임·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심각한 문제들이 많죠. 그에 비해 종이팩은 플라스틱과 비교해서 탄소 배출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낮고, 화장지나 페이퍼 타월로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제품을 만들고 폐기하는 전 과정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LCALife Cycle Assessment 환경 측정 방법으로 평가했을 때 종이팩이 플라스틱보다 평균적으로 60% 이상 절감할 수 있어요. 종이팩으로 대체했을 때 환경·경제적으로 많은 이점이 있는 거죠.
리필리는 현재 샴푸나 주방 세제, 바디워시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종이팩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기존 종이팩은 왜 식음료가 아닌 제품들은 담아낼 수 없었나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종이팩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업이 테트라팩과 SIG입니다. 이 기업들이 종이팩을 처음 시작한 품목이 식음료였어요. 식음료를 담기 위해 만든 용기이다 보니까 화학물질이 담겨 있는 세탁 세제나 샴푸나 린스 등을 담으면 새거나 터지는 문제가 발생해 안전성과 보관성이 떨어졌습니다. 또 종이팩은 일반 종이팩과 멸균 종이팩으로 나뉘는데, 멸균 종이팩은 상온에서도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멸균 종이팩은 알루미늄 호일과 천연 파이프 등으로 구성돼 있고요. 기존에 식음료 용도로 구성돼 있는 함유량을 달리해 다른 제품을 넣어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 리필리의 종이팩입니다. 소재와 기계를 연구해 만들어내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리필리 종이팩은 초음파 접합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열 접합 방식과 어떻게 다른가요?
접합을 잘 해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종이팩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종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예민해서 접합을 잘못하면 타거나 내용물이 샐 수 있어요. 서울우유나 매일유업 같은 기업들은 해외에서 기계를 수입해 오는데, 열을 가해서 상단과 하단 부분을 밀봉하는 방식인 열 접합 기계입니다. 저희는 서로 다른 면 사이에 초음파를 쏴 순간적으로 붙게 하는 초음파 접합 방식으로 특허를 출원했죠. 생산 속도가 열 접합 방식에 비해 평균적으로 20% 정도 빠르고, 전력비용도 7배 정도 낮출 수 있어요.
기업에서도 종이팩에 대한 수요가 높을 것 같아요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재 리필리에서도 다양한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한킴벌리와 함께 출시한 ‘종이팩 핸드워시’와 오뚜기와 협업한 ‘오뛰르 주방 세제’ 등이 있어요. 많은 업체가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종이팩을 적용할 뿐만 아니라, 생분해성 비닐이나 바이오 플라스틱 등 재활용 가능한 새로운 소재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움직임이죠. 하지만 기업의 그런 노력들을 단순히 그린워싱으로 폄하해버리면 그런 시도는 줄어들고 소비자도 플라스틱 밖에 쓸 수 없게 되잖아요. 소비자들도 개발하려고 하는 업체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신다면 더 좋은 제품이 개발되고 친환경 산업이 발전해서 우리 생활에 더 유익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제공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이팩이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겠죠. 종이팩은 종이 소재니까 플라스틱만큼 견고하지 않아요. 리필리 종이팩도 일반 종이팩보다는 습도나 물에 훨씬 잘 견디는 편이지만 플라스틱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종이팩은 차폐성이 좋아요. 빛을 차단해서 내용물을 더 안전하게 오랫동안 보관할 수가 있죠. 근데 투명 플라스틱 같은 경우는 빛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미세플라스틱이 제품에 빠르게 녹아들어가요. 실제로 그렇게 제품 속에 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을 우리는 한 달에 카드 한 장만큼 섭취하고 있습니다. 이게 몸속에 쌓이면서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고요. 때문에 100%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부분은 종이팩으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활용이 잘 되려면 분리배출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어요
리필리 종이팩은 일반적인 멸균 종이팩과 동일하게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종이팩 분리배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멸균 종이팩을 종이류로 분리배출하면 일반 골판지나 상자로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화장지나 페이퍼 타월로 만들기는 어려워요. 원래 종이팩 수거함이 따로 있어야 해요. 그런데 주거 단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요. 종이팩을 사용하는 품목이 보통 우유나 두유 정도라 배출하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플라스틱은 다양하게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폐기량이 많거든요. 폐기량이 많으면 수거 업체에서 수익이 나기 때문에 수거해 가는데 종이팩은 수거량이 굉장히 적다 보니까 수거하는 업체가 우스갯소리로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손해라고 수거하지 않아요. 앞으로 종이팩을 사용하는 품목을 다양하게 확장 시켜서 의미 있는 배출량이 나오면 활발한 자원 순환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상품을 계획하고 있나요
지금은 콩이나 쌀 종류를 종이팩에 담아보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많이 증가하면서 소비하는 형태가 바뀌고 있죠. 소용량 제품을 원하는 추세에요. 그런데 소용량 제품들은 대부분 비닐이나 플라스틱에 담겨 있습니다. 비닐 같은 경우에는 물질재활용이 어려워 태워서 발생하는 열을 에너지로 이용하는 형태로 활용하고 있고, 플라스틱에 담겨 있는 제품들은 미세플라스틱이 녹아 있으니까요. 쌀 같이 1인 가구의 수요가 많은 소용량 제품들을 종이팩으로 대체해보려고 해요. 앞으로는 조미료나 가공식품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리필리의 목표는
저희는 가능한 많은 품목을 플라스틱에서 종이팩으로 대체해 소비자분들이 안심하고 사용하고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원 순환이 가능해야 하잖아요. 최근 YMCA 기관과 자원순환 및 플라스틱 사용 절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한국멸균팩재활 용협회 등을 포함해 종이팩 자원순환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많아요. 숲과나눔재단은 종이팩 컬렉티브 정책 포럼을 개최하고 있고요. 벨기에나 독일 같은 경우는 종이팩 재활용률이 굉장히 높은데, 우리나라는 아직 15% 정도밖에 안돼요. 리필리도 우리나라에서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