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 서핑. 서핑의 성지 양양에서 첫 파도를 만났다.
서핑을 즐기는 이들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바다로 간다. 몸보다 큰 보드를 안고 묵묵히 바다로 들어간다. 언제 올지 모를 자신의 파도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도가 밀려오면 순리처럼 몸을 싣는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잠시, 서퍼들에게는 왠지 모를 여유마저 느껴진다. 밀려오는 대로 모두 해내야 했던 현실의 일들이 무색할 만큼 바다는 그저 넓고 자비로워 보인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두려워할 필요도,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었다.
이른 여름이 시작된 화창한 어느 날, 양양의 죽도해변을 찾았다. 서울의 아침과는 전혀 다른 양양의 오후가 나른한 환영을 보낸다. 부지런히 죽도해변을 누비는 서퍼의 수를 세다가, 최정훈 프로 서퍼가 운영하는 드리프터 양양에 도착했다.
서핑 준비 운동
첫 서핑이다. 초보 운전도 아닌 필기시험도 치르지 않은 무면허 수준. 미지의 것과 친해져야 한다는 두려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이 뒤섞인 채 서핑 슈트를 입는다. 슈트를 입은 후에는 슈트가 가려주지 않는 노출된 부위에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서핑에 대한 짧은 영상 강의를 듣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한 파도에 서퍼 한 명(one wave one surfer)만 타야 한다는 것. 파도의 가장 높은 지점인 피크에 가장 가까운 서퍼가 파도의 주인이 된다. 두 번째는 통행을 방해하는 끼어들기, 즉 드롭 인Drop in을 하면 안 된다. 기다리던 파도가 왔다고 해서 파도를 선점한 서퍼를 방해하면 안 된다. 서퍼 사이의 매너를 배우니, 그들의 세계에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다.
초보자용 서프보드를 손에 들고 죽도해변으로 향한다. 화창한 하늘 이 자신감을 불어 넣는 듯하다. 서핑을 시작한다고 해서 바로 바다에 입수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지상에서 서핑 기본자세를 배운다. 파도를 타기 위한 기본 중에 기본, 보드에서 일어서는 법인 ‘테이크 오프’ 동작이다. 테이크 오프 동작은 패들링 이후 푸시 업, 스탠드 업 순서로 이어진다.
테이크 오프 자세에서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발을 뒤쪽에 두어야 한다. 오른발이 뒤쪽이면 레귤러Regular, 왼발이 뒤쪽이면 구피Goofy다. 오른발잡이인 에디터는 레귤러로 테이크 오프 자세를 연습한다. 먼저 보드 위에 엎드린 상태로 패들링을 하는데, 패들링은 파도와 속도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다. 바다에 손을 꽂아 넣고 노를 젓듯 팔로 물을 밀어내야 한다. 그렇게 파도에 닿았다면 일어서기 직전 단계인 푸시 업 동작과 스탠드 업 동작이 연계돼야 한다. 상체를 일으키며 균형을 잡는 푸시 업 동작은 가슴 아래에 양쪽 손을 대고, 팔을 쭉 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때 손바닥과 발끝을 제외하고는 보드에 몸이 닿지 않아야 한다. 이 상태에서 가볍게 뛴다는 느낌으로 앞발을 양손으로 짚었던 위치에 두고 뒤에 둔 오른 다리도 세운다. 무릎은 살짝 구부리고, 오른팔은 뒤에서 굽힌 채 앞을 향하고 앞쪽에 있는 팔은 쭉 펴서 균형을 잡는다. 폭은 어깨너비가 기준이지만 서핑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형태를 찾아가면 된다.
코치님의 콜 사인에 맞춰 동작이 이어지도록 연습한다. 실전을 코앞에 두고 보드 뒤에 달린 리시Leash를 스탠스에 맞게 오른발에 고정한다. 리시는 보드가 서퍼와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 연결해 주는 끈으로,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안전장비다. 운전자가 도로 위에서 차를 잘 간수해야 하듯, 서퍼는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해 바다에서 보드를 사수해야 한다.
바다에서의 실전
양양의 여름 바다는 입문자들에게 친절한 파도를 내어준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파도를 향해 몸을 옮긴다. 최대 기온 20도의 날씨, 아직 수온이 높지 않음에도 드리프터의 5mm 웨트슈트를 입으니 춥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해변에서 연습했던 패들링을 시도한다. 손이 노가 된 듯 물을 밀어내고, 방향을 바꾸려면 배의 노를 젓는 것처럼 팔을 회전시킨다. 몸에 더해 보드까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니, 수영과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흔들리지 않는 지상에서 일어서는 것은 수월했으나,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첫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어려웠다. 입문자의 특권으로 코치님이 적당한 파도를 골라 보드를 밀어줬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는 파도를 놓치기 일쑤였다. 마음이 급해 패들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파도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파도에 닿았음에도 일어서지 않으면 보드와 함께 그대로 침몰한다. 파도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감각을 한껏 끌어올려야 한다. 아무리 설명을 들었어도 몸이 적응하지 못하면 코앞까지 온 파도를 놓쳐버리고 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보드 위에 올라섰다. 서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첫 관문을 넘고 나니 더 큰 관문이 남았다. 바로 균형이다. 스탠드 업 동작을 할 때 보드의 가운데 지점에 발을 두어야 보드가 앞으로 간다. 중앙 지점을 넘어 좌측이나 우측으로 발을 두면 그 방향으로 보드가 움직이거나, 초보자의 경우 균형을 잃고 바다로 고꾸라진다. 뒷발에 체중을 실으면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보드가 멈춘다. 신경 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반, 잘하고 있나 하는 의심 반으로 재차 균형을 잡아본다.
수많은 시도 끝에 파도를 타고 해변에 안착한 첫 순간을 기억한다. 파도와 속도를 맞춘 성급하지 않은 패들링, 파도에 닿았음을 알아채는 기민한 감각, 정확한 위치에 발을 올려 잡은 균형, 그 뒤를 따라오는 하얀 파도. 서핑은 모든 것의 조화를 향해 가는 스포츠가 아닐까.
▶드리프터 양양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중앙길 89
서핑 강습 2시간+종일 장비 대여 8만원
0507-1457-9310
interview
최정훈 드리프터 대표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국제심판, 국제 인스트럭터, 양양서핑헤드심판인 최정훈 프로 서퍼입니다. 현재 드리프터 양양과 서프보드 브랜드 ‘라운드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드리프터 양양은 어떤 공간인가요?
2021년 문을 연 서핑 숍 겸 카페입니다. 서핑 후 테라스에서 태닝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죠. 강습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드리프터drifter는 방랑자라는 뜻이잖아요. 많은 서퍼들이 방랑하며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 정착해 편하게 서핑을 즐기라는 의미로 드리프터 끝에 마침표를 찍었죠.
어떻게 서핑을 시작하게 됐나요?
서핑을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됐네요.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서핑을 배우고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제주도에 놀러 가게 됐습니다. 파도가 좋으니 꼭 타 보라는 말을 듣고 무작정 보드만 빌려서 중문 바다에 들어갔죠. 3시간 동안 패들링만 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누군가 “지금 패들링 해봐요!”라고 외쳤어요. 그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패들링을 하니 파도가 저를 천천히 당기면서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는 거예요. 그때 어정쩡한 자세로 테이크 오프를 하면서 보드에서 일어났습니다. 뒤돌아보니 하얀 파도가 뒤를 쫓아오는 게 보이더군요. 그때 소름 돋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저에게 제2의 인생을 가져다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지금도 그때도 파도는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서핑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은 서핑이 일기장 같아요.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고 힘들고 짜증이 날 때 바다에 들어가면 모든 걸 다 잊은 듯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바다에선 아이처럼 재미있고 근심거리가 있으면 바다에 떠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바다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옵니다. 서핑에 제 일상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양양에 오게 된 이유는?
대도시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한 바다가 평온하고 좋았습니다. 2013년 서핑 숍을 오픈하려 할 때 고향인 부산이냐 양양이냐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당시 부산에 살고 있어서 첫 가게는 부산에서 열게 됐지만, 두 번째 숍인 드리프터는 양양에 열게 됐습니다. 2017년과 2018년 즈음 서핑 붐이 최고였죠. 아직도 비수기나 평일에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다지만, 주말이나 성수기 때는 양양을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양양은 서핑을 즐기기도 좋지만 그 외의 즐길 거리들이 잘 형성되어 있으니까요. 서핑 문화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곳이죠.
서핑은 계절을 타지 않는 스포츠지만, 계절마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많이 달라요. 강원도 동해권은 봄, 가을, 겨울의 파도가 좋고 오히려 여름에는 파도가 작죠. 반대로 부산이나 제주 등 남쪽 지역은 여름이 더 좋습니다. 파도 방향의 차이 때문인데, 강원도 등 동해 지역은 북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많이 생성됩니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서 강원도에는 큰 파도가 잘 생기지 않는 거죠. 대신 태풍이 오면 여름 전후로도 파도가 많이 생겨서 크고 좋은 인생 파도를 만날 수도 있어요. 보통 여름에는 작은 파도들이 일기 때문에 입문자들에게는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은 수온이 낮아 서핑하기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상급 서퍼들은 오히려 겨울에 양양을 많이 찾아요.
추천하는 국내 여름 서핑 스폿이 있나요?
전국에 많은 스폿이 있지만 그중 몇 곳만 꼽는다면 양양 죽도 해변, 부산 송정해변, 제주도 중문해변, 서해 만리포해변 정도네요. 양양을 제외한다면 조금 부럽지만(웃음) 여름에는 부산과 제주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