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따라 소래포구 가는 방죽길
갯벌 따라 소래포구 가는 방죽길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4.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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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시흥 늠내길

▲ 갯골생태공원의 드넓은 갈대밭. 겨울철이라 다양한 염생식물과 게를 볼 수 없지만 눈과 어울려 신비로운 풍광을 연출한다.

갯골 습지 소래산 옛길 아우르는 4개 코스 56㎞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특색 있는 걷기 코스 개발이 한창이다. 그 열기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 정도로 뜨겁다. 경기도 시흥시는 2009년 10월, 도(道)에서 유일하게 내만(內灣) 갯벌을 끼고 있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걷기 코스 늠내길을 만들어 개장했다.

늠내길이란 이름은 예쁘면서도 힘이 있다. 옛 백제 땅이었던 경기도 시흥은 고구려 장수왕 때 주인이 바뀌면서 ‘뻗어 가는 땅’이란 의미의 ‘잉벌노(仍伐奴)’란 이름을 얻었다. 이때부터 잉벌노를 사람들은 ‘늠내’라고 불렀다. 이처럼 고구려의 기상이 담긴 늠내길은 제1코스인 숲길, 제2코스 갯골길, 제3코스 옛길, 제4코스 바람길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 시흥의 자연 지리적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2코스 갯골길이다.

▲ 갯고랑 옆의 드넓은 공터는 눈이 이불처럼 깔려 있다.

고구려 기상이 담긴 늠내길
갯골은 갯고랑의 준말이다. 시흥 도심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장현천을 통해 서해가 내륙으로 들어와 갯고랑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시흥만큼 바다가 도심 깊숙이 들어오는 곳도 드물다. 따라서 갯골의 다양한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고, 도심과 어울린 갯벌 습지는 독특한 풍광이 펼쳐진다. 특히 가을철에 서걱거리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의 염생식물이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은 일품이다.  

갯골길의 출발점은 시흥시청이다. 시청 정문 앞에는 갯골길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고, 정문 안내실에서 늠내길 팜플렛을 받을 수 있다. 갯골길은 시흥시청을 나와 장현천 방죽과 논길을 따라 소래포구 입구인 방산대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번 갯골길 탐사는 늠내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다음카페 ‘늠내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 쌀연구회 뒤편의 썰매장.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시청 정문을 나와 왼쪽길을 따르면 곧 장현천 방죽이 시작된다. 이곳 물줄기는 아이 오줌처럼 가늘지만, 2시간쯤 나가면 배가 드나드는 거대한 바다를 만난다. 방죽 옆으로는 온통 논이다. 시청 가까이 이렇게 개천과 논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구불구불 방죽을 따라 1㎞쯤 가면 쌀연구회가 나온다.

쌀연구회는 연구 단체가 아니라 커다란 방앗간이다. 시흥 들판에서 생산되는 질 좋고 맛 좋은 ‘햇토미’(시흥시 쌀 브랜드)를 모아 도정하는 곳이다. 현장에서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햇토미를 구입할 수 있다. 쌀연구회 뒤편이 시끌벅적하다. 논에 물을 댄 썰매장이다. 깔깔거리며 넘어지는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헌데 자세히 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괴성을 지르며 더 좋아한다.

▲ 팔각정 전망대를 지나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갯골생태공원으로 들어선다.

한동안 이어지는 논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논이 주는 포근함과 정겨움 덕분이다. 이어 팔각정 전망대를 지나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갯골생태공원이다. 이 공원은 소래포구 인근 내륙 깊숙이 형성된 갯벌과 옛 염전, 소금창고의 모습을 살려 조성한 150만㎡ 규모의 자연생태공원이다. 매년 8월에 열리는 ‘갯골축제’는 갯벌 생태계 관찰, 머드 수영, 염전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수도권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낙서판 앞에서 길은 왕벚나무 터널로 들어선다. 봄철에는 그야말로 향기로운 꽃터널을 이룬다. 이어지는 곳은 공원의 중심 시설인 생태학습장. 겨울철이라 갯벌에서 노는 방게, 참게 붉은발농게 등과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의 염생식물을 볼 순 없지만 눈 덮인 광활한 갈대밭이 인상적이다.

▲ 갯골생태공원을 만들면서 새로 복원한 소래염전. 여름철에는 염전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중후한 연륜 풍기는 소래염전과 소금창고

생태학습장 옆이 염전 체험장이다. 이곳 소래염전은 역사적 무게가 만만치 않다. 소래염전은 1934~1936년경에 만들어졌으며 갯골을 중심으로 145만 평 정도가 펼쳐져 있었다. 소래염전은 인근 남동염전, 군자염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소금 총생산량의 30%를 차지했다고 한다. 포동과 방산동, 월곶동 등 이 일대 주민들의 중요한 생활 기반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당시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 대부분은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로 부산항에 옮겨진 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 갯골축제에서 염전 체험을 즐기는 아이들(사진 시흥시청).

소래염전은 천일염 수입자유화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1996년 7월 31일 폐염 되었다. 그후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방치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염생식물 및 각종 어류, 양서류 등이 살아가는 독특한 환경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갯골생태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염전 일부가 다시 복원된 것이다.

소금밭 뒤로 보고 싶었던 소금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슬레이트 천정은 녹이 슬었고, 구멍 뚫린 곳은 마치 조각보처럼 빨간 슬레이트로 기웠다. 뼈대를 형성하는 오래된 나무는 지붕과 어울려 중후한 연륜을 물씬 풍긴다. 소금창고는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작 서너 채만 남았다.
공원을 지나면 긴 방죽길을 걷는다. 길은 눈으로 덮였고 길섶은 온통 습지다. 습지의 칠면초 군락은 내려앉은 눈을 파스텔 색조로 바꿔놓았다.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칠면초는 그야말로 변신의 귀재다. 습지 너머로 멀리 삭막한 아파트 숲이 아스라하다. 습지가 아파트숲과 어울린 풍경은 묘하면서도 서글프다.

갯골길은 방산대교를 건너 다시 반대쪽 방죽으로 돌아오게 된다. 방산대교에서는 배들이 정박한 소래포구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소래포구를 지나면 드넓은 서해다. 소래포구를 바라보다 저절로 미소를 머금는다. 예전 협궤열차인 수인선을 타고 소래포구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일부러 소래역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손바닥만 한 철길을 걸어 소래포구에 도착했었다. 그 추억과 정감이 잔잔히 밀려온다.

▲ 눈과 어울린 칠면초가 눈빛을 파스텔 색조로 바꿔놓았다. 드넓은 습지 뒤로 삭막한 아파트 숲이 펼쳐진다.

갯고랑 따라 이어진 광활한 갈대숲
방산대교를 내려오면 방산펌프장과 포동펌프장을 연속으로 지난다. 이제 길은 갯고랑 옆을 바투 붙어 간다. 눈이 덮인 갯벌은 오묘한 무늬와 색을 내뿜는다. 이곳 갈대밭은 갯골길 가운데 갈대가 가장 큰 군락을 이루고 있어 걷는 재미가 더욱 특별하다. 갈대밭 사이로 난 탐방로를 따르면 앞서 간 사람은 갈대에 묻혀 보이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만 들려온다.

다시 모퉁이를 돌자 오리 주검이 나타나 화들짝 놀란다. 이곳에 사는 맹금류가 오리를 잡아먹은 것이다. 오리의 죽음에서 갯골의 건강한 생태계를 들여다본다. 갈대숲 가운데는 갈대로 방게와 자그마한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그곳은 게처럼 걸어 지나야 제맛이다.

▲ 습지 따라 길게 이어진 방죽길. 갯골길은 뒤에 보이는 방산대교를 건너 다시 돌아오게 된다.
갯골길을 안내하는 오리 솟대를 따라 구불구불 방죽을 돌면 이윽고 부흥교에 닿는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갯골생태공원으로 들어간다. 갯골길은 여기서 계속 방죽을 따른다. 배수갑문을 지나면 논길이 시작된다. 시흥 들녘은 쌀도 생산하지만 연밭도 조성하고 있다. 여름이면 들녘 한가운데에 뽀얀 연꽃이 피어난다. 연꽃은 현재 시흥의 상징이 되었다. 연꽃 테마파크가 들어선 관곡지가 특히 유명하다. 고속도로 아래로 난 농로를 지나면 우리쌀연구회를 만나고 시흥시청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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