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매끈한 화분이 불편했던 이유는 모두 완벽함을 쫓는 세상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캔아이〉에서는 완벽하진 않아도 온전히 나를 닮은 화분을 만들 수 있다.
볕이 잘 들어오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창가가 비어 보여 햇빛을 같이 맞을 친구를 들이기로 했다. 평생 스스로 무언가 키워본 적이 없지만 그 시작이 식물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집을 꾸며주는 플랜테리어이기도 하면서, 식물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삶의 사이클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상의 한 부분을 점검하듯 주기에 맞춰 물을 주고, 내 마음을 돌보듯 방치하지 않고 수시로 살펴 주는 일. 나를 돌보듯 식물을 돌보기로 했다. 먼저 식물을 품어줄 화분을 찾아야 한다. 화분의 종류는 많다. 따뜻한 도자기, 황토색의 토분, 깨끗한 분위기를 주는 유리, 가벼운 플라스틱 등등. 모양도 다양하다. 기다란 원통형부터 짧은 사각형, 둥그렇고 귀여운 모양…. 그러던 중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캔을 사용해 화분을 만드는 원데이클래스다. 여기저기 찌그러진 모양이 완벽하고 매끈한 자태를 자랑하던 공산품과는 다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합정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방 ‘캔아이’에서는 캔으로 화분을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색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 타임 당 최대 4명까지만 예약을 받고 있어 공방 투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혼자라도 부담스럽지 않다. 젊은 층이 많은 곳에 위치하는 이곳은 ‘힙’ 그 자체다. 온통 검은색인 공간에 힙한 조명이 비치고 분위기 있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인센스 향마저 힙하다. 클래스가 진행되는 90여 분의 시간 동안 온전히 과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개성 있는 화분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웰컴 드링크가 제공된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나만의 화분에 어떤 색과 모양을 입힐지 고민한다. 자리에는 반짝이는 캔과 도구들이 놓여있고, 벽 한편엔 이번 클래스에 사용할 다양한 아크릴 물감들도 보인다. 앞치마가 제공되긴 하지만 아크릴 물감은 옷에 틔면 잘 지워지지 않아 아끼는 옷은 입고 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첫 순서로 캔을 두드려 모양을 만든다. 목장갑을 끼고 망치로 삶의 굴곡을 새기듯 두드린다. 반대쪽 손으로 캔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 시키고, 원하는 만큼 두드리면 된다. 망치의 넓은 면으로 치면 큰 무늬가 되고, 모서리로 치면 작은 무늬가 생긴다. 힘을 어느 정도 주느냐에 따라 홈의 깊이도 다르다. 처음엔 소심하게 두드리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망치에 힘이 실린다. 중간중간 전체 모양을 확인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한다. 다음으로 캔이 화분으로 변하는 되는 단계, 물구멍 뚫기에 돌입한다. 심을 식물에 따라 물구멍을 뚫는 방법이 달라진다. 하지만 공중에 띄워 키우는 행잉 플랜트만 아니라면 물구멍은 동일하게 작업하기 때문에 화분을 완성하고 나서 어울리는 식물을 찾아도 된다. 화분에 식재할 경우, 물구멍은 아래에 원 모양으로 하나씩 표시한 뒤 여섯 개의 구멍을 송곳으로 뚫어준다. 이제 화분의 형태는 완성됐다.
색감을 입힐 차례다.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혀주기 전에 젯소를 칠한다. 젯소는 물감의 밀착력과 발색력을 높여주고 캔이 녹슬지 않도록 코팅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얀색 젯소를 붓으로 뭉치지 않게 얇게 펴 바르고, 드라이어로 말리면 투명하게 변한다. 몇 번 반복해 주고 완전히 마르면 색을 선택한다. 정확히 원하는 색상이 없어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아크릴 물감을 섞어 자신이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다. 푸른빛이 도는 청록색과 주황빛이 가미된 베이지색. 집에 놓일 모습을 상상하며 색을 만든다. 보통 배경색은 두 번 정도 칠해야 색이 잘 올라가는데 투명도가 높은 색상일 경우에는 덧바르기도 한다. 물감을 묻힌 뒤 물을 조금 섞어 잘 펴 바른다. 이제 클래스 중 제일 고난도 과정이자 성패를 좌우하는 무늬를 넣어야 한다. 무늬는 칫솔을 사용하기도 하고 손으로 바르기도 하며 그러데이션 등 원하는 무늬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한다. 고민 끝에 이 화분에는 자유로운 격자무늬를 칫솔로 새기기로 했다. 에디터는 붓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와 도자기 체험 당시에 과감한 붓질로 결과물을 망쳐버렸던 전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배달된 도자기는 회사 한편에 조용히 숨어 있다.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손이 떨리는 에디터. “잘하고 계세요!”라며 계속 응원을 북돋아 주는 사장님의 말에 다시 자신감이, 아니 자존감까지 올라가는 느낌이다. 여기저기 칫솔로 무늬를 더해주니, 어느새 내가 바랐던 모습의 화분이 탄생했다. 화분이 완성되면 안에 배수망을 넣고 굵은 마사토를 깐다.
공방 한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식물들을 화분에 넣어보며 반려 식물을 고른다. 여러 종류의 식물에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캣 그라스 씨앗도 준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초록빛 안개를 닮은 아스파라거스라는 식물을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막상 식물을 화분에 담아 보니 아기자기한 다육이에 정이 간다. 줄기는 여리지만 잎은 통통하고 강인해 보이는 친구를 화분에 식재했다. 키우는 법을 몰라도 괜찮다. 돌아가는 길에 식재한 식물의 관리법과 식물 영양제까지 받을 수 있다. 식물을 식재한 후 어울리는 색깔돌도 골라 마무리해 준다. 이제 캔아이의 시그니처 카드에 ‘Can I □?’의 빈 공간을 채워 오늘의 문장을 만들 차례. 평범한 캔에서 나와 같이 갈 화분이 된 기념으로 ‘Can I go home now?’로 완성했다.
캔아이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3길 31-26 4층
화요일~일요일 10:00~19:00(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화분 ONEDAY CLASS 5만5천원
blog.naver.com/can_i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