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리듬에 맞춰, 무의도 둘레길 트레킹
봄의 리듬에 맞춰, 무의도 둘레길 트레킹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4.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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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가 춤을 추는 듯한 형태라 하여 무의도舞衣島라 불리는 이 섬. 봄바람 따라 잔잔히 밀려오는 바다와 새 숨을 틔워내는 나무들, 말간 얼굴을 드러낸 갯바위까지, 섬을 딛는 발걸음에 자꾸만 리듬이 실린다.

당신의 첫 섬은 어디인가요
감정이든 상황이든 물건이든 ‘첫’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오래,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에디터의 첫 섬은 무의도였다. 썰물처럼 밀려드는 공부와 숙제에 잠겨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멀리 바라보고 싶어도 시선 끝엔 늘 벽이 가로막고 있어 탁 트인 시야가 간절했다. 그렇게 선택한 섬은 국제공항과 관광 시설로 이미 잘 알려진 영종도에서 한 번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무의도였다. 10여 년 전인 당시에는 작은 항구에서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어 낭만 비슷한 기분도 느꼈던 것 같다. 탁 트인 시야는 당연하고, 온갖 형태의 자연을 집합시켜 놓은 듯한 풍경은 원래 알던 지구의 것이 아닌 듯 생경하고 경이로웠다. 좀 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 누군가와 이 풍경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다만 만조와 간조 시간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손에 닿을 듯 눈앞에 펼쳐진 실미도를 바라만 봐야 했던 점이 오랜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이후 여행 기자가 되어 여러 섬을 다녔지만 ‘첫’이라는 베네핏 때문인지 19살의 무의도가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다.
봄 트레킹 장소로 무의도를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긴 시간 잠들었던 생명이 움트고 있었으며 봄 햇살은 따스하다 못해 강렬했고, 바다 아래 잠겨있던 길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간조가 한낮에 이뤄지는 그런 날이었다. 배 시간과 간조 시간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2019년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차로도 닿을 수 있게 된 것. 온 지구가 케케묵은 아쉬움을 게워주려는 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차려졌다. 망설임 없이 ‘첫 섬’ 무의도를 향해 달렸다.



다채로운 무의도의 매력
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 9.432km2, 해안선 길이 31.6km에 달한다. 연륙교로 연결된 작은 섬, 소무의도가 있어 본섬을 대무의도라 칭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무의도라 부른다. 섬 크기에 비해 볼거리가 많은데, 북쪽으로는 당산(124m)이, 중앙에는 국사봉(236m)이, 남쪽에는 호룡곡산虎龍谷山(245.6m)이 있어 산행 명소로 꼽힌다. 더불어 동쪽에 실미도 해변과 하나개 해변이 있어 해수욕부터 트레킹, 하이킹, 백패킹, 캠핑 등 자연 속 아웃도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지형은 대부분이 산지이며 서쪽 해변가에는 해식애가 발달했다. 섬 전역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남쪽 호룡곡산에는 다양한 종류의 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제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대신 이곳의 사람들은 사람의 일을 한다. 대체로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어 맛있는 요리를 내는 식당이 여럿 있으며 지역 특산물로는 무의도 포도와 청정김이 유명하다.
무의도의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건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영화에 등장하는 자연 명소를 비롯해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의 황홀한 경관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하게 늘면서 실미도 유원지가 조성되었고, 천국의 계단 촬영 세트장과 실미도 촬영 명소 표지판이 만들어졌다. 무의도 제일의 명소인 호룡곡산과 국사봉, 하나개 해수욕장과 큰무리 해수욕장 등에는 등산 코스와 트레킹 코스가 개발돼 사계절 구분 없이 많은 이들이 찾게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진도 선착장에서 페리호를 타야 했으나 2019년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접근하기도 편리해졌다.


낯을 가리지 않는 숲
무의도 둘레길 트레킹은 큰무리어촌체험마을에서 시작된다. 지도에서 ‘큰무리어촌체험마을’을 검색하면 〈카페 뮈〉와 〈무의편의점〉 건물이 나오는데, 이 건물 왼편에 트레킹 표지판과 지도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어 찾기 쉽다. 이번 트레킹을 함께하는 친구는 모델이자 인플루언서를 겸하는 승모다. 자연을 좋아하지만 트레킹은 초심자에 가까워 나름 전문가인 에디터와의 동행을 반겨줬다. 산을 향해 난 나무 계단을 몇 개 오르자 곧장 깊은 자연으로 빠져든다. 우리의 입도를 환영하는 듯 금세 품을 내어준 자연이 사랑스럽다. 시린 산바람이 옷깃에 파고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완연한 봄은 서해 끝자락의 섬까지 포근하게 감쌌다. 봄날의 나무가 피워낸 싱그러운 잎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서해를 눈에 담으며 폭신한 흙길을 오르다 보니 콧노래가 절로 난다. 막 피어난 듯 진한 꽃향기와 옅은 바다 냄새가 조화롭 게 어우러져 흥을 더한다. 평일에 방문한 덕분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풀잎을 스치는 소리뿐인데도 어쩐지 어깨가 들썩인다. 10분쯤 올랐을까, 〈구낙구지〉라 적힌 표지판이 본격적인 탐방로의 시작을 알린다. 구낙구지는 조선 후기 명장인 임경업 장군이 연평도를 가기 위해 무의도를 주둔지로 삼고 진을 치던 곳이라 붙은 지명이다. 여기서 300m쯤 더 걷다 보면 무의도의 가장 북쪽, 웬수부리에 도착한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원수와 맞부딪치는 것과 같이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지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실제 어민들이 물질을 나갈 때 높은 파도와 삼각 파도의 해상을 통과하기 어려워 ‘웬수(원수의 방 언)’와 ‘부리(짐승의 주둥이처럼 튀어나온 부분)’를 붙여 부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도 한다. 간조 시간대에 맞춰 방문했기에 파도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바다 쪽으로 난 산세의 가파른 정도만으로도 충 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최근 개발된 코스답게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니 지루할 틈이 없다. 지명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기며 숲길을 빠져나오자 갑작스레 시야가 탁 트이며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무의도 둘레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해안데크길의 시작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
해안데크길은 깎아지른 해안절벽을 왼편에, 드넓은 서해를 오른편에 두고 잘 정비된 데크 위를 걸을 수 있어 인도人道처럼 편안하면서도 자연의 품속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간조에는 바다 아래에 숨어있던 갯바위 무리가 드러나 신비로운 자연경관도 함께 누릴 수 있다. 마치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진수성찬 같은 길을 한걸음, 한걸음 음미하며 걷는다.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때로는 기이한 패턴이 새겨진 암석이 끊임없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 보니 발걸음은 어느새 실미도 해수욕장에 닿았다. 이곳에서는 바다 건너로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한 실미도가 한눈에 담긴다. 연일 봄철 미세먼지 때문에 뿌연 하늘만 바라보다 청명하고 맑은 하늘 아래 덩그러니 놓인 섬을 보니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아득하다. 해외 휴양지의 외딴 섬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섬이 영화 〈실미도〉 속 사건의 실제 배경지라니,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당시 모습을 그리기 힘들다. 간조 시간이 다다르자 모세의 기적처럼 실미도 해수욕장에서 실미도까지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듯 길이 드러났다. 오랜 시간 바닷속에 숨어있던 땅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갯벌 속 다양한 생물들이 이때만큼은 바깥 공기를 양껏 마신다는 것, 한낱 인간이 바다였던 그 길을 두 발로 딛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실미도를 만나기 위해 벌어지는 신비로운 의식처럼 느껴졌다. 승모는 이를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했다. 실미도를 감싸 안은 해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정말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봄이 피는 곳
무의도는 처음이 아니지만 실미도는 처음이다. 에디터의 새로운 ‘첫’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웬만하면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섬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하얗고 뽀얀 굴 껍데기 밭이 길을 안내하더니 곧이어 크고 작은 암석들이 섬과 바다를 잇고 있다.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암석들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둥글둥글하니 귀엽고 친절하다. 어떤 것은 커다란 소파 형태를 띠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미리 준비해온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을 꺼내 테이블이 될만한 바위를 골랐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앉기에 넉넉한 소파 바위와 붙어있는 명당이었다. 일회용 용기를 줄이자는 마음으로 밀폐용기에 담아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인도에 쓰레기통이 있을 리 만무했고, 음식의 신선도가 유지돼 맛이 좋았다. 바위에 걸터앉아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서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식사라니. 아름다운 풍경 덕분인지 오래 걸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유독 꿀맛 같은 식사를 했다.
배도 채웠겠다. 슬슬 돌아갈 코스를 되짚어봤다. 온 길을 되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실미도 유원지에서 찻길로 빠져나와 산속 숲길로 돌아가는 코스를 택했다. 실미도 유원지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서울의 벚꽃들은 이미 꽃잎을 떨어트리는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벚꽃 개화 시기가 늦은 인천은 지금이 만개 시즌이다. 바쁜 일정 탓에 벚꽃놀이도 놓쳤는데, 보상처럼 주어진 꽃무리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 다. 찻길 양옆으로 벚꽃나무가 늘어서 있어 아늑한 꽃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다시 같은 시즌에 무의도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찻길을 지나 실미도 유원지에 도착해 반대로 트레킹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해 마지막 봄 길을 천천히 돌아갔다.



EDITOR’S PICK
봄 트레킹 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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