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감자는 요즘이 제철이에요”
“강원도 감자는 요즘이 제철이에요”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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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20

▲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구름에서 가을느낌이 나지만, 무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게 힘든 가운데 감자를 캐고 있습니다.

한창 장마철이라는 7월 초순, 이 산골에는 마른장마가 계속되어 비다운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농사짓는 분들의 한숨 소리가 드높습니다. 마른장마 속에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려 덥기만 한 오늘, 친한 댁에서 감자를 캔다고 해서 일손이라도 거들 요량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감자밭으로 갔습니다.

감자밭 주인인 송 선생님께서는 줄기가 아직 푸를 때 감자를 캐야 오래 저장해도 썩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올해는 예년에 비해 사나흘 늦게 캐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10년쯤 전 대전에서 이 산골까지 건강을 위해 오신 송 선생님은 자신이 지으신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십니다.

“소똥을 일 년 내내 모아 거름을 만들어서 비료로 주고, 제초제 한번 안 치고, 우리 안 사람하고 다섯 번도 더 넘게 감자밭을 맸어.”

“내가 지은 농사자랑 같지만 우리 밭에서 나는 것들은 어디 내놔도 내가 떳떳한 유기농이여! 유기농 인증? 그런 거는 안 받았지만 화학비료 안 주고 제초제 안 치고 키운 내 자식들이여!”

▲ 유난히 가물었던 올해는 아직 감자가 제대로 영글지 않았습니다.

송 선생님의 감자 자랑을 들으며 달려들어 조심스레 호미질을 해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캐는 감자마다 작기도 작고 호미질에 비해 소출도 적어서 밭주인이나 도와주러 간 저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봄 가뭄이 극심했던 것이 원인인 듯싶다는 송 선생님의 말씀에 일단 비라도 한 번 더 내린 후에 감자를 다시 캐기로 하고 아쉽지만 오늘은 두어 평 정도 캐는 것으로 일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 마을 어르신들의 새참인 찐 감자. 감자를 상추에 한 입 크기로 싸서 막장을 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힌답니다.
처음 정선으로 내려와 도시생활의 때를 못 벗고 살았던 서울 촌색시인 제가 그래도 뭔가 농사를 지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 뒤편의 야산을 서너 평 개간해 텃밭을 만들어 처음으로 심었던 것이 감자였습니다. 난생 처음 짓는 농사라 다른 댁들이 감자를 다 캐고 나서야 ‘알이 커졌을까’ 하고 밭에 가서 감자 포기를 들어 보았는데, 글쎄 겨우 손톱만한 감자만 달려 나올 뿐 주먹만한 굵은 감자는 없었습니다. 뒷날에서야 감자는 줄기 주변의 땅을 파며 캐는 거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쑥스러움이란.

어쨌든 오늘 빈손으로 돌아오며 집 근처 가리왕산휴양림 입구의 얼음동굴에 들러 땀을 식히려고 가보니 마을 어르신들이 이미 얼음동굴 앞 정자에 둘러앉아 피서를 즐기고 계셨습니다. 동네 어르신들 모두 갑자기 나타난 저를 반가워라 하시며 음식을 먹고 가라며 흥겨운 잔치에 합석시켜 주셨습니다.

▲ 도시에서 온 새색시인 제게 유난히 친절하신 마을 어르신들. 이날 저는 마을 어르신들이 정으로 따라주시는 막걸리에 취해 오후 한나절을 잠으로 보내야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드시는 음식은 분이 파삭한 찐 감자에 돼지머리 수육과 막걸리. 그런데 특이한 것은 찐 감자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상추쌈에 싸서 막장을 얹어 드시는 어르신들의 식성이었습니다. 예전에 가난 하던 시절에 여름이면 감자로 한 끼를 때우곤 하셨을 그 곤궁함이 느껴져서 저도 어르신들을 따라 상추에 감자를 싸서 한입 먹어 보니 그 맛이 참으로 눈물겨우면서도 좋았습니다.

이 산골에는 감자며 옥수수 같은 농산물이 7월 중순경부터 마구마구 쏟아집니다. 다들 농사지으시며 판로를 걱정하시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 요즈음 강원도에는 감자가 제철입니다. 가벼운 주머니나마 털어 감자 한 상자 사서 드신다면, 입도 즐겁고 마음도 흐뭇하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삼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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