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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히말라야에 핀 동백꽃
황량한 히말라야에 핀 동백꽃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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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 ⑬ 바람 따라 떠도는 백조, 히로미

▲ 초모랑마 전망대 격인 롱푸 사원 근처에서 함께 한 필자와 히로미(오른쪽).

“먼옛날, 이곳이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Oceanus)의 아내 테티스(Tethys)가 다스리던 바다였대요.”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도망쳐 나온 한 줄기 바람이 야크 울음소리를 싣고 찾아와 그녀의 귓불을 살그머니 두드렸다. “바다 왕국을 잃어버린 테티스의 눈물방울일까요? 히말라야의 저 황량함 속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대요, 동백꽃이요.” 그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억 년 전, 지구의 남반구에 있던 곤드와나대륙에서 인도아대륙이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온 인도아대륙은 북반구에 있던 라우라시아대륙을 향하여 이동하였고, 마침내 지금의 티베트 땅에 충돌하였다. 충돌한 인도아대륙이 라우라시아대륙 지각 밑으로 서서히 파고들면서 거대한 융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히말라야 산맥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대륙 이동설’이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집’이라는 뜻이다. 히마(Hima)는 눈(雪)을, 알라야(Alaya)는 집을 뜻한다. 동티베트의 남체바르와(7756m)에서 시작되어 파키스탄 북쪽 낭가파르바트(8125m)에 이르는 지구의 용마루, 대히말라야 산맥(Great Himalayas). 그곳에 세계의 최고봉 초모랑마(8848m)가 우뚝 솟아 있다. 북위 27도 59분, 동경 86도 55분.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어버린 티베트와 네팔의 국경 사이에 자리한 초모랑마는 티베트어로 ‘대지 또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란 뜻이다. 네팔에서는 초모랑마를 ‘대양의 어머니’란 뜻의 산스크리트어 ‘사가르마타(Sagarmatha)’라 부른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초모랑마의 음을 빌려 ‘주무랑마펑(珠穆朗瑪峰, zhu mu lang ma feng)’ 혹은 줄여서 ‘주펑(珠峰, zhu feng)’이라 말한다. 서방 세계에서는 초모랑마를 ‘에베레스트(Everest)’라 부르는데, 이는 세계의 최고봉으로 처음 확인한 영국 측량 장관 조지 에베레스트(George Everest)의 이름을 따라 1865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 올드 팅그리에서 바라본 초오유(오른쪽)와 갸충캉(왼쪽).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에서 히로미와 함께 초모랑마의 관문인 올드 팅그리를 향해 떠났다. “중국의 고도성장 바람이 이곳 티베트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네요. 고작 2년이 지났는데도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변했어요.” 바람 따라 떠도는 백조, 히로미(裕美)는 초모랑마의 전망대 격인 롱푸 사원에 이미 가 본 적이 있었다.

“라사에서 랜드크루저 투어에 참가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겨울이라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없었지요. 보고 싶었던 떨어진 동백꽃도 못 보고, 그저 눈구름 속에 파묻혀 있는 검은 절벽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아왔어요.” 그녀는 초모랑마의 북벽, 노스페이스(North Face)를 그려내고 있었다. 올드 팅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남쪽 멀리 네팔과의 국경을 따라 숨 막히는 설산의 향연이 펼쳐졌다.

“와! 저기 저 높은 산이 초모랑마인가요?” 하늘 한쪽을 차지하는 설산을 가리키며 히로미가 말했다. “아니, 저것은 초오유(8201m)란 산입니다. 왼쪽으로 약간 낮아 보이는 산이 8천미터급 산이 되지 못해 언제나 서글픈 갸충캉(7922m)이고, 더 왼쪽으로 수줍은 색시처럼 얼굴을 구름에 살짝 가리는 저 산이 바로 초모랑마지요.” 그녀는 대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었다. “나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단조로운 직장 생활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에 진저리나게 지쳐 있었던 거죠. 그래서 찾아온 곳이 이 티베트 땅이었어요. 하지만 또다시 그 지긋지긋함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올드 팅그리를 떠나 베이스캠프까지, 다시 베이스캠프에서 빠이바를 거쳐 올드 팅그리로 되돌아오는 6박7일의 일정은 히로미의 하얀 영혼과의 만남이었다. 야크와 말들이 목을 축이는 개천을 건너고 양들이 풀을 뜯는 습지와 초원을 지나 벌거벗은 황무지를 자유롭게 가로질러 설산의 빙하 속으로 차갑게 빨려 들어갔다. 메마르고 거친 그 땅에서 풍요와 안녕을 비는 룽다만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그네의 걸음걸이를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히말라야의 부락은 산악 지역 특성상 집촌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마을 간 거리가 상당히 멀어 하루 종일 걸어야 마을 하나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가옥 구조는 흙벽돌로 쌓은 단층이나 아래층이 주로 헛간으로 쓰이는 이층으로 되어 있다. 대개 담장 안에 가축우리가 함께 있다. 별도의 화장실이나 세면장은 없으며 주거 공간은 흙바닥 중앙에 조리와 난방을 겸한 난로가 있고, 벽 주변으로 작은 제단과 침상들이 놓여 있는 한 개의 커다란 방이다. 손님을 포함한 모든 식구들이 이 방 하나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냉혹한 자연 앞에서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이방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누구이건 어디서 왔건 모두가 한 식구다.

“히말라야가 주는 해방감이 좋아요.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티베트 땅에서 초록빛 자유로움을 마음껏 맛본 후라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한평생 떠돌아다녀야만 직성이 풀리는 역마살이라도 끼었던 것이었을까요. 아무튼 금단 현상이 심했어요. 다시금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본에서의 생활은 무섭도록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요. 결국은 또다시 이 땅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히로미는 사방으로 펼쳐지는 설산의 파노라마를 껴안으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목청껏 소리쳤다.

나흘을 꼬박 걷자, 드디어 초모랑마가 그토록 감질나게 감추고 있던 전라의 몸매를 드러냈다. 검은 피부와 고혹적인 풍만함으로 비췻빛 하늘을 유혹하고 있는 초모랑마의 모습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현기증이었다. 사실 베이스캠프(5200m)까지만 트레킹이 허용되어 있었지만, 여신의 유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절벽 밑으로 내려가 급류 계곡을 건너 전진캠프 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 트레킹 중에 만난 티베트의 개구쟁이 소년들.

장쾌하게 펼쳐지는 롱푸와 동 롱푸 빙하의 빙탑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3천미터의 검은 직벽, 노스페이스. 그곳은 말 그대로 조물주의 세계였다. 창체(7583m)의 창(chang)은 북쪽, 체(tse)는 봉우리란 의미로 창체는 초모랑마의 북봉이란 뜻이다. 마찬가지로 로체(8516m)는 남봉을, 눕체(7879m)는 서봉을 뜻한다. 눕체, 푸모리(7165m), 갸충캉으로 이어지는 백색의 장관. 참으로 깨어나기 싫은 취몽이었다. 그래서일까, 어처구니없게도 풀 한 포기 없는 그곳에 꽃이 있었다. 그것도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히로미, 여기 떨어져 있는 이 싱싱한 꽃 좀 보세요. 어떻게 여기까지 꽃을 가지고 와서 버리고 갔을까?”
“어머나! 이것은 버려진 꽃이 아니에요. 땅속으로 줄기가 있고 뿌리가 있는, 살아있는 꽃이에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치톡(tsi tog)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고산 토종꽃이었다. “제가 찾던, 바로 그 떨어진 동백꽃이에요!” 히로미의 가냘픈 떨림이 초모랑마를 흔들어 한줌 바람을 일으켰다.

그곳이 먼 옛날 바다 밑이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암모나이트 화석을 팔고 있는 천막 상가촌을 떠나 빠송과 팡라(5120m)에서 하룻밤씩을 더 신세 지고 원점, 올드 팅그리로 되돌아간 것은 사흘이 더 지나서였다.

안광태 | 40대 초반의 여행작가 안광태 씨는 돌아올 기약 없이 수년째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는 바람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명 관광지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본지는 안광태 씨가 보내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이 녹아있는 흥미로운 인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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