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꾼들 사연 굽이치는 동강 속살 엿보러 갔어요”
“떼꾼들 사연 굽이치는 동강 속살 엿보러 갔어요”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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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스포츠웨어>와 함께 하는 우리 강산 걷기 ⑤영월 잣봉~어라연

▲ 제2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어라연 전경.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해 ‘정자암’이라고도 부른다.

물줄기는 말이 없다.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했는지. 다만 그 옛날 목숨 걸고 물길에 오르던 떼꾼들의 눈물을 담은 듯 여울소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길이 휘돌아가는 산에 올라도 물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물소리를 따라 걷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를 위한 작은 선물이다. 


영월 남북을 관통하는 동강 줄기는 어디서 시작하는 것일까? 우선 태백 금대봉 자락 검룡소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골지천을 이루고 이는 정선에서 송천과 만난다. 그후 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한 오대천과 더해져 동강이 된다. 그리고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몸을 섞어 남한강 줄기를 이룬다.

▲ 푸른 나무 물결을 따라 이어지는 자갈길을 걷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자연이 만들어낸 S라인에 눈앞이 아찔!
험한 산봉을 감싸 안은 동강 물줄기는 숱한 산굽이를 따라 빼어난 경치를 만든다. 한때 동강댐 추진으로 수장될 뻔한 광경이다. 이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줄기는 여전히 유유하다.

우리가 동강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 물길을 타고 오르는 래프팅이고, 또 하나는 주변 산줄기를 걸으면서 굽이치는 물줄기를 감상하는 것이다. 동강 주변엔 깨끗한 숲과 강물을 두루 즐기며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여럿 있는데 그중 거운리에서 잣봉(537m)으로 올라 어라연을 본 후 강줄기를 따라 만지나루로 내려오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적당히 땀 흘리며 울창한 숲과 굽이치는 물줄기를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는 이 코스를 <컬럼비아스포츠웨어(대표 조성래)>의 춘천·원주 고객들과 걷는다.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자마자 시작되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농가를 지나자 널찍한 숲길이 짧게 이어지고 곧 가파른 오솔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이지만 방향 팻말이 잘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가파른 오솔길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낙엽송숲 사이로 다시 완만한 숲길이 펼쳐진다. 능선길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숲을 거닐다 보니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까마득한 동강 물줄기가 보인다.

기분 좋게 밟히는 흙길을 따라 잣봉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작은 전망대 두개를 만난다. 첫 전망대에서는 어라연의 삼선암쪽 일부 물길만 보이나 실망하지 마시길. 두 번째 전망대에서는 왼쪽으로 크게 굽이쳐 내려오는 물줄기와 어라연의 상·중·하선암이 한 눈에 펼쳐진다.

“신선이 안 부럽구만!”

참가자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거기에 직접 동강 물줄기 위에 올라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도 풍경으로 더해지니 올라온 보람이 있다. 신나게 물살을 즐기는 이들의 곁으로 그 옛날 뗏목을 탄 떼꾼의 환상이 어른거린다. 가만가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물소리에는 옛날 한강까지 나무를 운반할 때 떼꾼들이 애먹었던 된꼬까리에서의 사투가 스며있다.

▲ 잣봉 트레킹 최고의 ‘뷰포인트’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동강줄기. 래프팅 하는 고무보트라도 한 척 나타나길 기다렸건만 비 소식 때문인지 흔치 않다.

동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뗏목과 떼꾼에 얽힌 사연인데 그 바탕에는 ‘아라리’라고 하는 정선아리랑이 있다. 동강은 1960년대 초반까지 강 상류에서 나는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서울로 나르는 물길이었다. 길이 12자(약 360cm)에서 18자(약 540cm)정도의 통나무를 나르는 뗏목 운반은 당시로서는 농사짓는 일보다 훨씬 나은 벌이여서 강마을 사람들에겐 솔깃한 유혹이 되었을 터다. 하지만 비온 뒤 큰 물을 타고 내려가는 일은 너무나 위험했다고 한다. 지금 눈앞에서 바람결에 실려 소리도 없이 흐르는 물줄기에서는 상상이 어렵다.

그러나 과거에는 정선에서 영월까지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거센 물길을 빠져나가는 떼꾼들은 ‘아침밥이 사자밥’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던 떼꾼들은 이 물길을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정선아리랑을 불렀다.

떼꾼들에게 동강 물길은 아리랑을 풀어놓는 물길이자 생존을 위한 치열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중 떼꾼들은 가장 위험한 곳으로 평창군 미탄의 황새여울과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를 쳤다. 여기서 죽은 떼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떼꾼을 보낸 아낙네들의 근심은 ‘우리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가셨나’라는 노래가락으로 배어나올 정도였다.

황새여울을 가까스로 지난 떼꾼들은 어라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숨 돌리는데 그것도 잠시, 어라연 바로 아래에 있는 된꼬까리도 정도의 차이일 뿐 황새여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된꼬까리라는 이름은 물굽이가 심하게 치도는 곳에 강쪽을 향해 고깔 모양의 누렇고 큰 바위가 서있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 ‘심하다는 뜻인 ‘되다’에서 나온 ‘된’이 그 정도를 가늠케 한다. 옛날 떼꾼들은 이 바위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경험 많은 앞사공이 바위를 피해가도 뒷사공이 떼를 들지 못해 부딪혀 죽거나 다치는 일이 허다했다.

▲ 강변길을 따라 걷는 것도 이번 트레킹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종종 래프팅 하는 이들이 지나가는데 물살이 너무 잔잔해 노젓기를 멈출 수 없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살짝 내보이는 수줍은 비경
동강 줄기를 타고 사라져가는 떼꾼들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자 어느덧 정상이다. 잣봉(537m)은 동강의 비경, 어라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산으로 절벽에 자라는 노송이 굽어지는 동강과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보여준다.

짧은 산행과 동강변을 거니는 트레킹을 겸할 수 있는 잣봉은 가족단위 산행과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다. 방금 어라연을 코앞에서 보고 올라온 참가자들은 ‘벌써 정상이냐’며 섭섭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잣봉에 왔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듯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던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배낭 속 간식을 꺼내든다. 언제 또 이 비경에 스며든 바람을 쏘이며 쉬어 갈 수 있냐는 듯 신이 났다. ‘어라연’이 뭐냐고 묻는 소리에 나이 지긋한 참가자 하나는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란 뜻’이라며 답해준다.

▲ 이제 500미터만 가면 잣봉 정상이다. 오르막길이 만만치가 않다.

소나무숲과 참나무숲이 번갈아 이어지는 내리막길 끝은 삼거리다. 오른쪽이 하산길이고 바위능선을 따라 100여 미터 직진하면 동강 물줄기의 가장 빼어난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바위다. 그러나 들어갈수록 좌우가 바위절벽인 칼능선길이어서 조심해야 한다. 오른쪽 벼랑 밑으로 세 개의 신선바위와 어라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급경사 하산길을 내려오니 강변 돌밭길을 따라 꽃이며 산딸기가 가득이다. 자갈밭이 조금 고되기는 하지만 꽃 뿌려진 강변을 걷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강변길을 30분쯤 내려가면, 동강댐이 들어설 뻔했던 지점인 만지나루다. 여기까지는 거운분교쪽에서 차가 들어올 수 있다. 외딴섬처럼 불쑥 자리 잡고 있는 어라연 상회가 정선아리랑 노래가사에 나오는 전산옥 주막이라도 되는 듯 반가워 눈물이 찔끔 난다.

동동주 한잔으로 마른 목 축이고픈 마음 간절하지만 음료수로 대신한다. 여기서 출발점 거운분교까지는 넉넉잡아 한 시간쯤 산길을 걸으면 된다. 길지 않은 트레킹을 아쉬워 할까봐 잠깐 숨 가쁜 오르막이 나온다. 

▲ “김치~!” <컬럼비아스포츠웨어>의 춘천과 원주 고객들이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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