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고 투명한 아침가리골은 열목어 세상이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 않아 계곡은 천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고기떼 한가로운 청정계곡…아침가리~방동약수 원점 회귀 약 11km 6시간 소요

여름과 계곡만큼 잘 맞는 궁합도 없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도 계곡은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일상에 찌든 자, 무더위에 지친 자, 휴식을 원하는 자. 당신을 원시림 속을 흐르는 계곡으로 초대한다.


조선의 예언서 <정감록>에는 강원도의 첩첩산중 오지 일곱 곳을 가리켜 ‘3둔 4가리’라 칭했다. 둔(屯)은 산기슭의 펑퍼짐한 땅, 즉 사람이 숨어 살만한 작은 은둔처를 말하며, 가리(갈이:耕)는 골 깊은 곳의 밭갈이 할 만한 장소를 뜻한다. 이래저래 난리가 났을 때 숨을만한 피난처다.

옛날부터 인적 드문 오지였던 ‘3둔 4가리’는 지금까지도 오지의 대명사로 불린다. 3둔은 홍천 내면의 생둔(살둔)·월둔·달둔, 4가리는 인제의 아침가리(조경동)·연가리·적가리·명지거리를 가리킨다. 방태산·점봉산·구룡덕봉 등 큼직한 봉우리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7개의 오지는 깊은 산중에 숨어있음에도 사철 마르지 않는 골짜기와 곡식을 일굴 땅이 있어 전란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하며 삶을 꾸려나가던 땅이다.

▲ 진동휴게소 앞의 섶다리. 이 다리를 지나 잠시 숲을 지나면 아침가리골이다.

오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람의 발길이 드물다는 점이다. 태고의 향기가 고스란히 보존된 자연의 절경은 사람들에게 쉬이 드러나지 않아 더욱 신비롭다. 이렇게 아름다운 7개의 오지 중에서도 핵심 절경은 아침가리골이다. 가칠봉·구룡덕봉·갈천곡봉·응복산 등 높은 봉우리에 둘러싸인 약 20km의 계곡은 구절양장의 모습 그대로 절경 중의 절경을 뽐낸다.

전국 방방곳곳 산 좋고 물 좋은 비경만 찾아다닌다는 여행 마니아들도 찬탄해 마지않는 아침가리골. 투명한 계곡에 그득한 열목어떼와 원시림의 울창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숲, 에어컨이 부럽지 않은 계곡의 바람은 더위를 피해 떠나고픈 당신에게 최고의 피서지를 제공한다.

▲ 태고의 순수함이 여전히 살아있는 아침가리골의 숲.

완만한 옥빛 계곡은 열목어 천국
옥빛 계곡 따라 열목어 떼가 춤을 춘다는 아침가리 생각에 트레킹 전날부터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트레킹을 함께하기로 한 방철수(53) 씨가 운영하는 방태천 황토민박(033-463-3309)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인제에서 태어나 지금껏 인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방철수 씨는 젊은 시절부터 산이 좋아 평생 산을 업으로 삼은 산꾼이다. 인제 곳곳의 산을 손바닥 꿰듯이 잘 알고 있는 그는 한때 숲해설과 가이드를 직업으로 삼았을 만큼 산사랑이 대단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방철수 씨와 인제산악회 회원 3명과 함께 아침가리로 향했다. 진동2교를 지나 진동휴게소 앞 섶다리를 건너니 곧바로 낙엽송 군락을 지나 아침가리골 물목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수중보를 타고 골 왼쪽으로 길이 이어졌다.

“아침가리는 산이 높고 험해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한자로는 아침 조(朝), 밭갈 경(耕)을 써서 조경동이라고 하죠.”

방철수 씨가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사이 계곡 하류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곡은 시작부터 울창한 숲과 청정한 계곡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게다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 않은 무성한 숲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 뚜렷한 등산로가 없는 아침가리골에서는 길이 험해질 때마다 수시로 계곡을 건너야 한다.

“아침가리 트레킹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수시로 물길을 건너는 재미죠. 팔뚝만한 열목어떼가 노니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한여름 더위도 금세 잊혀요.”

시원한 계곡물에 마음껏 발 담그며 트레킹 하겠다고 샌들에 짧은 바지까지 입고 온 터라 주저 없이 계곡으로 들어갔다. 물속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발이 금세 얼얼해졌다.

아침가리골 하류부의 약 5km 구간은 경사가 급하지 않고 완만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도 좋다. 게다가 등산로가 눈에 띄게 드러나 있지 않아 굳이 길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계곡이 아무리 얕아도 조심해야지, 돌에 이끼가 잔뜩 끼어서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 있어요.”

방철수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청휘청 중심을 잃었다. 워낙에 청정한 계곡인데다 사람의 발길이 뜸하다보니 돌마다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웬만한 스포츠 샌들도 미끄러지기는 마찬가지. 물속 탐승을 잠시 멈추고 계곡을 벗어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 조경령에서 바라보면 인제 일대를 ‘4가리’라 칭한 것이 이해가 된다. 첩첩산중 가운데 자리잡은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다.

울창한 숲에는 야생화가 지천
숲은 원시림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름철이면 하루에도 수백 명의 등산객들이 다녀간다는 아침가리지만 이른 아침의 숲은 고즈넉했다. 야생화도 지천이다. 풍성한 노루오줌이며 꿩의다리·초롱꽃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숲을 더욱 풍성하게 빛냈다.

골짜기는 연신 굽이치며 절경을 펼쳐보였다. 계곡물은 어찌나 맑은지 손가락만한 열목어에서 팔뚝만한 대어까지 각양각색이다. 계곡이 굽이쳐 돌 때마다 등장하는 시퍼런 소도 자연 어장인 듯 고기떼가 가득했고 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다.

“아침가리골만큼 낚시하기 좋은 곳도 없을 거에요. 낚싯대를 던지는 곳마다 포인트죠. 여름이면 강태공도 많습니다.”

▲ 화사한 자주빛의 꿀풀. 조경령을 넘어가는 임도에서 꿀풀을 많이 볼 수 있다.

▲ 노루오줌.

청정한 계곡은 숲과 물이 살아있었다. 게다가 암반의 색과 무늬도 독특해 푸른 숲, 옥빛 소와 어우러져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침가리골 초입에서 1시간30분쯤 계곡을 따라 올랐을까? 방철수 씨가 우측의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뒤진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밑을 살펴보면 물고기며 다슬기가 뒤지는 족족 나온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뒤진바위로 통한다고 했다.

▲ 꿩의다리.

뒤진바위에서 큰 굽이를 지나니 계곡이 넓어지면서 잔잔해졌다. 계곡을 건너 오른쪽 길을 따라 20여분 다시 걸어가니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5m 높이의 작은 폭포는 서늘한 냉기를 뿜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계곡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연신 불어와 한여름 트레킹이 무색하게 송글송글 맺힌 땀을 재빨리 식혀버렸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도 아침가리에서는 힘을 잃는 듯 했다. 계곡은 길을 자주 숨겼다. 굳이 숲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길이 험해질 때마다 수시로 계곡을 건너는 것이 현명했다.

▲ 뱀무.

폭포에서 다시 계곡을 따랐다. 30분쯤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길은 잠시 숲으로 이어져 계곡을 벗어났다. 오솔길을 따라 울창한 원시림을 잠시 지나니 순간 시야가 넓어지면서 길은 다시 계곡과 만났다. 완만한 계곡을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계곡과 임도가 만나는 조경동다리가 나타났다.

임도 따르는 하산길, 방동약수로 마무리
조경동 다리 밑에서는 우리처럼 아침가리골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방동약수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점심 식사가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아침가리골과 방동약수로 이어지는 코스 산행을 하기 때문에 다리를 기점으로 하산을 했다.

아침가리골 상류는 조경동다리에서 임도를 따라 월둔고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상류부는 하류부에 비해 계곡미가 밋밋해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조경동 다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많이 한다.

▲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방동약수.

“조경동에는 현재 두 가구만 살고 있어요. 한때는 수십 가구의 화전민들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만이 당시의 번성했던 마을을 대변하고 있죠.”

다리에서 임도를 따라 조경령으로 올랐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그늘 한 점 없는 임도를 내리쬐자 어느새 땀이 후두둑 흘러내렸다. 아침가리골의 서늘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1시간 정도 오르니 조경령 정상. 다시 20분 정도 내려가니 방동약수다. 목이 얼얼해질 만큼 톡 쏘는 약수를 벌컥벌컥 들이키자 갈증으로 시달렸던 몸이 기운을 차렸다.

이번 아침가리의 비경 속을 거닐며 세 번 놀랬다. 첫째는 태고의 향기가 남아있는 울창한 원시림에 놀라고, 둘째는 열목어 가득한 청정계곡에 놀라고, 셋째는 지금까지도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계곡의 순수함에 놀랐다. 험준한 고봉들 사이에 아늑한 땅을 품은 곳.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게 기꺼이 물과 땅을 내어주는 곳. 아침가리는 여전히 깊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