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마을, 시라카와고
시간이 머무는 마을, 시라카와고
  • 김경선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3.04.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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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켜켜이 쌓인 만큼 높다랗고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는 갓쇼즈쿠리에 봄이 찾아왔다. 겨우내 머리 위에 무겁게 달린 눈을 털어낸 자리에는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북알프스 고봉이 자리한 기후현은 울창한 숲과 굽이진 산간 마을이 곳곳에 자리해 일본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만끽하기 좋은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신성한 하쿠산 어귀에 자리한 시라카와고는 기후현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관광 명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전통 마을이다.
시라카와고가 특별한 이유는 특유의 전통 가옥 덕분이다. 일본 전체를 통틀어 갓쇼즈쿠리 가옥이 가장 많은 마을이다. ‘합장合掌’, 즉 ‘기도 하는 손 모양’을 닮았다고 해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불리는 가옥은 일본에서 폭설이 잦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주택 양식으로 보오쿠茅屋 또는 카야부키茅葺라고 불리는 초가집이다. 억새로 엮은 맞배지붕은 경사가 무척 급해 눈이 손쉽게 흘러내리도록 만들어 눈이 지붕에 쌓이지 않아 하중을 견디기 적합한 구조다. 졸참나무로 합장 모양의 틀을 짜 맞추고 억새를 얹는데, 지붕의 억새는 20~30년마다 새것으로 바꾼다. 못 대신 새끼줄과 ‘네소’라고 불리는 조롱나무로 단단히 고정한 갓쇼즈쿠리는 모두 동서 방향으로 지어 지붕에 빛이 잘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기후현 시라카와고는 삼나무 숲을 배경으로 아늑한 분지에 약 110채 의 갓쇼즈쿠리가 자리한다. 삼삼오오 다소곳이 군락을 이룬 초가집은 수백 년간 이어온 산촌의 모습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간 오지에 자리해 교통 좋은 관광 명소와 달리 늘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다.
한 집 한 집 정성스레 가꿔온 갓쇼즈쿠리는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보와 기둥을 홈에 꼭 맞게 조립했지만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조밀해 잦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1800년대부터 마을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가옥은 겉모습만으로도 정취를 만끽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내부까지 둘러보아야 한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일부 가옥은 출입이 불가하지만 거주자가 없는 가옥은 언제나 관광객들에게 문이 열려 있다. 특히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자리한 와다케는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둘러싼 가옥으로 오랜 세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본 전통 양식인 다다미 가운데 이로리囲炉裏라고 불리는 고정 화로를 배치해 운치가 넘친다. 마을 내에는 40여 곳의 민박과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니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갓쇼즈쿠리에서의 하루를 경험해보자.



시라카와고의 가옥은 여전히 사람들이 머물러 더욱 특별하다. 과거에는 고립된 산악 지대이다 보니 농작물 경작이 쉽지 않아 600년대 부터 1970년대까지 누에를 키워 비단을 만드는 양잠업이 마을의 주 된 생업이었으며, 그 흔적이 가옥 내부에 남아있다. 갓쇼즈쿠리 지붕 안쪽에는 양잠에 필요한 자재를 저장하기 위해 2~4단으로 나눈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 마을의 양잠업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지마가 양잠전시관을 방문해보자. 양잠의 역사와 공정이 잘 설명 돼있는 전시관은 전통 양잠업의 부흥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현재는 양잠업을 하는 주민들이 많지 않다. 대신 대부분의 가옥이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점을 운영하거나 숙박, 음식점 등을 영위한다.
과거 승려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묘젠지 사원 향토관도 잊지 말자. 1748년에 지어진 사찰은 커다란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경내에는 종탑과 오래된 주목나무가 자리해 옛 일본 전통 사찰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다.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마을은 묘한 안도감을 선물한다. 좁다란 골목이 끝없이 이어지고, 길가에는 봄을 맞이하는 새순이 가득하다.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고즈넉한 옛 마을은 세월을 덧입은 빛바랜 흔적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발한다. 샛길을 걷다 만나는 쇼가와 강은 마을을 지나며 평화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돌다리는 ‘만남의 다리’다. 민가와 박물관을 잇는 다리는 몇 사람만 지나도 흔들리니 아찔하고 특별한 경험이 되어 준다.



시라카와고의 마지막 코스는 시라야마 전망대에서 끝을 맺는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는 셔틀버스가 운행하지만 그 외 계절에는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 10여 분을 걸어 전망대에 오르면 아담한 분지에 자리한 110여 채의 갓쇼즈쿠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환상적인 풍광은 계절마다 새로운 매력을 펼쳐낸다. 봄과 여름에는 생동하는 초록의 물결이, 가을에는 불타오르는 단풍의 색이, 겨울에는 색을 제거한 백색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 사시사철 아름다운 시라카와고는 언제 가도 특별하다.


SHIRAKAWAGO FOOD TIP



오치우도 落人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하면 오치우도다. 일본의 유명 만화가 원피스의 작가도 방문 이후 오치우도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을 정도. 크지 않은 내부는 안락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다. 카페 내 일본 전통 화덕인 이로리에서는 늘 팥이 끓고 있는데, 모찌를 주문하면 무한으로 팥죽을 먹을 수 있다. 커피를 시키면 직접 컵을 고를 수 있다. 언제나 인기가 많아 웨이팅은 각오해야 한다.
〒501-5627 岐阜県大野郡白川村荻町792
11:15~16:00, 목요일 휴무
얼그레이 티, 커피, 카페라떼, 오렌지 주스 500엔, 젠자이 7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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