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이유
사유의 이유
  • 신은정 | 사진제공 사유원
  • 승인 2023.02.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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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사유원

군위에는 생각에 잠긴 수목원이 있다. 약 10만 평의 산자락에서 사색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걷는다.

소요헌 ©김종오

소요헌 ©김종오


처음 사유원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땐 의아했다. 군위에 뭘 지었다고? 누구에게 물어서 알 수 있는 일일까? 너머의 것이 궁금했다.
설립자는 대구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 사유원은 유 회장과 모과나무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1989년 유 회장은 태창철강의 정원을 관리하던 정원사에게 한 소식을 듣는다. 약 300년 수령의 오래된 모과나무 네 그루가 일본으로 밀반출될 위기라는 말에 유 회장은 부산항으로 달려가 컨테이너에 실린 모과나무를 웃돈을 주고 도로 사 왔다. 이후에도 유 회장은 30여 년간 끊임없이 나무를 수집했고, 그 나무들을 심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06년 군위에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첫 나무를 심으며 점차 지금의 모습을 갖춰왔다.
그렇게 군위 어느 산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유원은 건축물로 유명해졌다. 건축가 승효상·알바로 시자, 조경가 정영선·카와기시 마츠노부·김현희 등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아는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의 손길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알려지기 전부터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고, 2021년 개장 당시 별다른 홍보도 없었지만 알음알음 사람들이 모여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사유원이 추천하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첫 번째 코스는 사유원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며, 두 번째 코스는 사색을 위한 공간이 주가 된다. 꼭 순서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 약 10만 평 규모의 사유원을 한 번 만에 만족스럽게 모두 둘러보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 사유원을 천천히 모두 보겠다고 욕심내서 걸으면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쉽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두 번 가면 모두 볼 수 있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계절마다, 방문할 때의 마음에 따라 사유원은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사담 ©김종오

첨단 ©김종오

소요헌 ©김종오



사유의 공간들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와 비움에 대해 강조해온 이로재 대표 건축가 승효상. 사유원의 대부분을 건축한 두 건축가는 닮아 있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은 주변 지형과 잘 어우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승효상 건축가는 한 인터뷰에서 “진짜 좋은 건축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건축관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사유원에 방문해보면 놀랍다. 사유원에서 자연과 건축물은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어우러진다. 어디든 모난 곳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내심 자랑할 만한 것들인데도 서로 잘났다고 우격다짐으로 존재감을 뽐내지도 않는다. 사유원의 모든 것들은 전시된 것이 아니라 마치 거기서 자라고 나고 커온 것 같다. 건물, 나무, 꽃 같은 것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넓은 부지를 이루는 유기체이며, 그 속에 발을 들이는 이 조차 그 일부가 된다.
사유원에 들어서 가장 처음 만난 건축물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과 소대다.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으려 했다가 이곳 사유원에 오게 된 소요헌은 장자의 ‘소요유’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소요헌 내부로 가면 빛과 공간이 오묘하게 어우러진다. 소대는 20.5m 높이의 전망대로 소요헌과 사유원의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알바로 시자는 김익진 선생과 찰스매우스 신부의 교유를 기리기 위한 작고 흰 경당, 내심낙원도 지었다.
승효상 건축가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광을 볼 수 있는 현암, 사유원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첨단, 오당이라는 연못을 끼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공간인 와사 등 사유원의 전반적인 건축물을 만들었다. 사유원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북카페 가가빈빈은 최욱 건축가가 설계했다.
사유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공간은 설립자의 마음이 담긴 정원과 숲이다. 사유원의 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수령 300년 이상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모여있는 풍설기천년이 대표적이다. ‘바람, 눈, 비를 맞으며 어언 천년’이란 뜻의 이름으로, 예술의 전당, 청계천복원공사의 조경을 도맡았던 정영선 조경가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해냈고, 수령 200년 이상의 배롱나무가 있어 꽃이 피면 별천지가 펼쳐지는 별유동천은 일본정원의 대가 카와기시 마츠노부가 설계했다.

풍설기천년 ©강위원

한유시경 ©김종오



사유의 방법
사유원은 친절하지 않다. 각 공간에 대한 장황한 설명도 없으며, 앞으로든 뒤로든 어디를 향해 갈 수 있도록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다만 끊임없이 사유를 권한다. 화장실의 위치를 찾기 위해 지도를 펼쳤더니, 분명 WC라고 적혀 있으며 그 뜻은 화장실이 맞는데 나란히 붙은 이름이 제각각이다. 망아정忘我亭, 다불유시多不有時, 세욕소洗慾所, 망우정忘憂亭, 귀락와歸樂窩, 독락사獨樂舍 등. 모든 이름은 한학에 능한 유재성 회장이 지은 것이며, 각 장소에 적힌 힘이 느껴지는 글씨는 중국의 서예가 웨이량의 것이다. 같은 행위에서 다른 의미를 찾으라는 걸까. 답을 찾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의 일이다.
누구나 직업병이 있다. 필자를 예로 든다면 어떤 곳에 가도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어떤 것도 이유 없이 놓인 것은 없으니 그 이면에 감춰진 뭔가를 끊임없이 파헤쳐야 할 것 같고, 어떤 공간에 왔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하려면 모든 걸 다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엄습한다. 혹시 같은 부담감을 짊어지고 사유원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곳이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다. 사유원으로 향하는 경사를 오르며 잡생각을 떨쳐낸 뒤에는 오롯이 이 장소에 남겨진 나를 바라보게 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유를 곱씹는다. 그 대상은 아름다운 건축물, 멋진 조경도 아니고 그 속에 있었던 ‘나’에 대한 것이다. 가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무모한 인간에게 어떤 사색은 책갈피이며, 어떤 사색은 거울이다. 우리는 사색 속에서 자신을 마주한다. 사실 사유원에서는 많은 생각이 필요 없다.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감정과 기억만이 사유하며 스스로 얻어낸, 사유원이 권하는 결실이다.

현암 ©김종오



사유원
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054-383-1278
09:00-17:00
화~금 성인 5만원 / 학생(초, 중, 고) 4만5천원
토~일, 공휴일 성인 6만9천원 / 학생 6만2천원
* 사유원 예약은 한 달 단위로 오픈되며, 홈페이지 사전예약 필수
sayu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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