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가정마다 하나씩 있었던 흔한 재봉틀은 이제 작품으로 남았다. 익숙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눈을 뜬다.
리조 세계재봉틀박물관은 진주에 자리한 국내 최초의 재봉틀박물관이다. 이일승 관장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재봉틀 400여 점 중 250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재봉틀 관련 부속품뿐만 아니라 오래된 카메라 등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을 함께 전시 중이다. 총 3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은 1층은 갤러리로 운영 중이며 제1전시실이 있는 2층은 모던한 스타일의 재봉틀과 체험관, 제2전시실이 있는 3층에는 재봉틀 관련 부속품과 재봉틀로 만든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리조라는 이름은 이일승 관장의 ‘이’와 그의 아내인 조경련 관장의 ‘조’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재봉틀에서 읽는 역사
재봉틀박물관이라니. 생경한 이름에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진주가 섬유산업, 그중에서도 실크로 유명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 자리했나, 그보다 재봉틀은 다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 박물관으로 들어서며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재봉틀을 마주하자 뇌리에 박혀있던 투박한 이미지는 어느새 달아나고 없다.
리조 세계재봉틀박물관에서는 재봉틀이 가장 활발히 사용됐던 1800년대~1900년대의 오래된 재봉틀을 만날 수 있다. 섬유산업이 급속하게 발달했던 18세기 이후, 수작업에 의존했던 바느질이라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자들의 고민과 연구 끝에 재봉틀이라는 새로운 기계가 만들어졌다. 최초로 재봉틀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토마스 세인트Thomas Saint지만, 재봉틀 업계의 가장 대표적인 두 사람을 꼽자면 1846년 현대의 재봉틀과 가장 흡사한 형태인 두 가닥 실로 바느질을 하는 재봉틀을 개발 한 미국의 일라이어스 하우Elias Howe와 1851년 하우의 재봉틀에서 좀 더 개량된 형태를 만든 뉴욕 출신의 기계공 싱어Singer다. 리조 세계재봉틀박물관에는 하우와 싱어의 제품들뿐만 아니라 1800년대 후반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타비타Tabitha 모델 등 재봉틀이 발명된 1800년도 초부터 현대까지 유럽,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다양한 제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일반 의류용, 카페트용, 말안장용, 신발용, 가죽제품용 등 재봉틀도 용도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편에 전시된 비교적 작은 재봉틀들이 눈길을 끈다.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어린이용 재봉틀이다. 어린이용 재봉틀은 재봉틀이 당시 얼마나 대중적으로 사용됐던 물건이었는지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재봉 기계가 들어오면서 그 기능이 베틀과 비슷했기에 재봉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흔히 속어로 ‘미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일본에서 ‘sewing machine’의 머신을 미싱이라 부른 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기 때문. 재봉틀은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까지 혼수품 필수 목록이었다고. 리조 재봉틀박물관에는 기증받은 재봉틀들도 모여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어머니의 혼수품이었던 유품이라 기록되어 있어 그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재봉틀의 제작연도는 기계마다 새겨져 있는 일련번호로 추정할 수 있다. 150년도 더 된 재봉틀이 돌아갈까 궁금해하던 찰나 이일승 관장은 직접 사용해 보겠냐고 제안했다. 실제로 재봉틀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관에 앉아 오래된 재봉틀을 돌려본다.
미적인 영감을 불어넣는
제조사마다, 제조시기마다 다른 유려한 곡선의 재봉틀 디자인은 미적인 영감을 불어 넣어준다. 재봉틀 몸체의 문양, 발판의 형태, 색감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어낸 것이 없다. 실제로 건축가, 디자이너, 학생 등 영감이 필요한 누구나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는 기성품이었지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작품이 된 셈이다.
2층에서 재봉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3층에서는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엿보게 된다. 반짇고리나 바늘, 다리미, 가위, 골무, 오일캔, 의류 패턴, 홍보 포스터, 매매 계약서, 제품설명서 등 재봉틀과 관련한 부속품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재봉틀만 전시되어 있던 2층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아직도 사용하는 흔한 물건이지만 앤티크하고 색다른 디자인이 가미되어 있다거나, 재봉틀에 사용하는 오일 등 지금은 생소한 물건들도 많다. 하나의 역사가 탄생하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봉틀 하면 노루발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 누군가의 열중하는 뒷모습,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인 공장,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 등 회색빛 장면들만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리조 세계재봉틀박물관에서 만난 재봉틀은 달랐다. 삭막했던 배경은 어느새 잊히고 재봉틀 자체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