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토종 곡물
가장 가까운 토종 곡물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10.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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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곡물집' 대표

생산성이 부족해도 꾸준히 토종 곡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이 있다. 씨앗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그리고 그들의 소신을 응원하는 브랜드가 있다. 공주 원도심에 자리한 ‘곡물집’에서 친근하게 다가온 토종 곡물과 지속 가능한 토종 곡물을 고민하는 김현정 대표를 만났다.


곡물집은 어떤 곳인가요?
토종 곡물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공간이에요. 여러 프로그램과 상품을 통해 토종 곡물 그 자체도 경험해 볼 수 있고, 토종 곡물로 만든 다양한 음료와 제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토종 곡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와 공동대표인 천재박 대표는 원래 기획자, 디자이너였어요. 어떻게 보면 본래 하던 일의 연장선이죠. 토종 곡물을 브랜딩 하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저는 식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았고, 천재박 대표는 회사에서 좋은 생산자와 좋은 생산물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했거든요. 좋은 식문화와 관련된 라이프스 타일을 전개하고자 했던 우리에게 다양성과 이야기를 지닌 토종 곡물은 가장 적합한 소재였어요. 하지만 토종 곡물은 생산성이 없어 위기에 놓여 있어요. 씨앗을 지키는 운동 단체의 농부들이 토종 곡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왜 중요한지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죠. 우리는 그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토종 곡물이 브랜드로서 친근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 록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토종 곡물은 다른 곡물과 어떻게 다른가요?
토종 곡물은 농부에 의해 씨앗이 대대로 이어지며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적응해 살아남은 곡물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통 시장에 판매하는 농산물은 계량 종이거나 정책에 따라 씨앗을 나라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농부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또한 판매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 있어 편리하죠. 반면 토종 곡물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어떠한 계기나 농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농부들의 소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씨앗을 갖는 것이 아닌 사서 농사를 짓는 시스템인데 이는 결국 식량 위기와 같은 큰 문제로 연결돼요. 문제를 인식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농부들이 ‘내’가 아니면 씨앗이 멸종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계신 거죠. 씨앗은 되물려지지 않으면 사라지니까요.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요.
사회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곡물집은 사회적 기업이 아닌 개인 사업이기에 매출도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농부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회적인 운동처럼 의무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실제 필요하고 트렌드에 맞는 브랜딩과 제품 생산을 하는 거죠.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자신의 가치가 투영된 삶을 중요시하는 요즘 트렌드 속에서 우리의 메시지가 충분히 와닿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공주는 제 고향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라 익숙하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거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잘 알고 있는 공주를 선택한 거죠. 토종 곡물과 관련된 농부들도 공주와 가까운 지역에 있고 지역적으로 중간인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공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창업 후 힘든 점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일반적으로 창업에 수반되는 평범한 고비도 있었지만, 정말 힘든 일은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지, 어떻게 크리에이티브 한 콘텐츠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제품을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농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시작했을 땐 함께 일할 수 있는 친구들을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도 어려웠어요. 지금은 다행히 좋은 기회를 통해 뜻이 맞는 친구들과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작업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있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받은 보람과 감동이에요. 토종 곡물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가장 처음 했던 일이 20여 종의 토종 곡물들을 원할 때 부담 없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제품으로 만들어 선보인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찾아와 토종 곡물로 밥을 지어 먹어보고 싶다며 쌀 하나와 콩 하나를 사갔어요. 별 일 아닐 수 있지만 제가 바라던 토종 곡물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또, 처음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머릿속으로 ‘나중에 이런 브랜드와 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브랜드에서 협업 프로젝트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잘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던 일은 실제 생산자인 농부들이 방문해 기뻐했을 때예요. 오로지 자신의 소신으로 토종 곡물 농사를 짓던 분들이 준비된 공간에서 잘 만들어진 제품이 되어 소비자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한 감동을 받으셨거든요. 지인들까지 데려와서 소개하는 모습을 보는데 오히려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았어요.

독특한 패키지 디자인이 눈에 띄어요. 곡물 제품 같지 않달까요.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농산물’이나 ‘토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따라오는 진중하고 향토적인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 이에요.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좀 더 캐주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 제품을 봤을 때 어떤 곡물인지, 무슨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되니까 산뜻하고 기분 좋았으면 했어요. 그래야 관심과 호기심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부터 익숙한 이미지로 제품에 대해 설명하면 오히려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곡물집에서 선보이는 토종 곡물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토종 곡물에 대한 경험이 적었던 초반에는 농부님들의 큐레이션에 전적으로 의지했어요. 만 2년간 토종 곡물을 테이스팅하고 제품으 로 만들면서 노하우와 경험이 쌓여 곡물집에 필요한 토종 곡물을 자체적으로 선정할 수 있게 됐죠. 토종 곡물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활용을 해보면서 더 다양한 곡물을 알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그간 선보이지 않았던 토종 곡물 중 가능성이 보이는 곡물에 다양하게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곡물집에서 꼭 맛봐야 하는 제품이나 메뉴가 있다면?
토종 콩과 커피 원두를 블렌딩해서 만든 그레인 라떼가 대표 메뉴에요. ‘토종 곡물을 커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재미있는 발상에서 시작해 시그니처 커피를 만들어봤어요. 커피 시장은 워낙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커피 백으로도 출시했습니다. 미숫가루는 다양한 곡물을 혼합해 만들지만 그레인 라떼는 곡물마다 작은 맛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의 타이틀로 만들어요. 커피로 치면 싱글 오리진처럼요. 배부르지 않게 맛의 차이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세 가지 맛의 그레인 라떼를 샘플로 선보이는 메뉴도 있습니다.



로컬 브랜드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역의 자원이라는 게 이점일 수 있지만 한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역에 있어야지만 메리트가 있고 부가가치가 생기는 것은 반대로 그 지역으로 한계를 두는 일이거든요. 곡물집 역시 충남지역 혹은 공주 지역에서만 나는 자원을 이용하지 않아요. 소비 대상이 공주 지역 주민에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역과 대상을 확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온라인 시장도 크기 때문에 확장된 분야로 로컬을 맞이하면 비즈니스에 잘 적용할 수 있을 거에요.

앞으로의 곡물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문화 예술 영역을 넘어 교육이나 비즈니스 등 복합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사업이라면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실체가 있어 체험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접 만나고 경험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다양한 부분이나 과정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채널을 수반하고 발상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센터가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양한 삶을 제안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고, 이미 왔다고 생각해요.


MINI INVERVIEW 조상희 매니저
김현정 대표는 브랜드의 성장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소신껏 토종 곡물 농사를 짓고 씨앗을 되물려주는 농부들, 토종 곡물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함께하는 파트너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랜드의 미래를 함께 이끌어나가는 곡물집의 직원들에 대한 믿음과 고마움이 크다. 곡물집의 커뮤니티와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조상희 매니저를 만나 그녀의 곡물집 이야기를 들어봤다.

곡물집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퍼즐랩에서 진행하는 지역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요. 당시 2주간 공주에 머물렀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저와 맞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지역이든 일과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주는 젊은 층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좋은 모임이 많아요. 러너스 클럽부터 명상 커뮤니티, 글쓰기 모임 등 서울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서 원할 때 참여할 수 있어요.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곡물집의 직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취직 제안을 받게 됐어요. 저 역시 곡물집에서 전개하는 브랜드와 제품에 관심과 호감이 있어 지원하게 됐습니다.

곡물집에서 어떤 일과 고민을 하고 있나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생각나네요.(웃음) 입사 2~3개월 차 때 브랜드 북 원고 작업을 하며 곡물집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당시 다양한 파트너사와 협력해 제품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한 분씩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제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편안한 언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아무래도 농사나 토종 곡물 같은 아이템은 젊은 친구들에게 아직 생소하니까요. 굳이 찾아보지 않는 주제라 생각했기에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곡물집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토종 곡물을 브랜드로서 친근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소비자로서 곡물집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나요?
공간 인테리어와 쇼룸, 디자인을 통해 토종 곡물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더불어 토종 곡물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경험하고, 다양한 제품으로 변신한 토종 곡물을 만날 수 있죠. 최근에는 토종 곡물로 만든 커피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 백도 출시했어요. 공정무역 커피 원두 4종과 토종 곡물 4종인데, 5개월간 13번의 테스트를 거쳐 찾은 최고의 조합으로 만들었습니다. 제품 출시와 관련해 9월 20일부터는 테이스팅 프로그램도 오픈해요. 저희도 처음 시도해 보는 작업이라 많은 분들과 함께 경험을 나눠 보고 싶어 기획하게 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협력 파트너사인 아름다운 커피 대표님의 공정무역에 관한 강의, 커피 백에 들어간 토종 곡물 4종을 원물 그대로 경험해 보는 시간, 로스팅과 분쇄를 거쳐 커피에 섞이는 전단계의 맛과 향을 즐겨보는 시간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이뤄져 있어요. 하반기에는 더욱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그간 클래식하고 기본에 가까운 제품을 선보였다면, 캐주얼한 디저트로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초콜릿, 젤라또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류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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