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가을을 성급하게 붙잡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우리길 다섯 곳을 소개한다.
늦가을을 기다리며
1 영남알프스
가을, 하면 떠오르는 억새. 영남알프스는 은빛 억새 물결을 만끽하는 여행지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에 유독 더 빛을 발하는 영남알프스는 힘든 만큼 황홀한 풍광을 내어준다. 영남알프스는 해발 1000m가 넘는 신불산, 천황산, 가지산 등 아홉 개의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유럽의 알프스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곳곳에 억새 평원이 펼쳐지는데 특히 신불산과 취서산 사이에 60여만 평, 간월재에 10여만 평, 고헌산 정상 부근에 20여만 평, 재약산과 천황산 동쪽 사자평에 1백 25여만 평의 억새 군락지가 있다. 이곳의 주요 봉우리를 잇는 다섯 개 구간을 하늘억새길이라고 부르며, 특히 간월재, 신불재, 영축산을 잇는 4.5km의 1구간이 가장 인기가 많다. 간월산 억새평원은 해발 900m 고지에 자리해 영남알프스에서 만나는 억새평원 중 비교적 고도가 낮은 편이며, 코스 난이도가 쉽다.
가을을 닮은 섬
2 강화나들길
선사시대의 오랜 유적과 고려시대의 항몽 유적지, 왕릉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만나는 길. 강화나들길은 섬의 매력과 역사의 현장을 두루 만끽할 수 있는 가깝지만 가심비 높은 가을길이다. 가을이면 철새의 지저귐과 풍요로운 수확물이 가득한 섬의 매력은 더욱 배가 된다. 강화나들길은 화남 고재형 선생이 1906년 강화도가 품은 역사 유적지와 수려한 자연을 아우르며 걸었던 길을 잇고, 잊혔던 길을 찾아 연결한 구간이다. 본섬에 174.9km 14개 코스로 교동도에 33.3km의 2개 코스, 석모도에 26km 2개 코스, 주문도에 11.3km 1개 코스, 볼음도에 13.6km 1개 코스로 총 20개 코스가 있으며 전체 길이는 310.5km에 달한다. 나들길은 바다와 호수, 생태계의 보고인 세계 5대 갯벌을 품고 있으며, 매일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이 공존하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황홀한 습지의 매력
3 순천만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석양이 내려앉은 순천만. 벼가 샛노랗게 익어갈 무렵이면 바람결에 몸을 부대끼며 가을 노래를 부르는 순천만의 금빛 갈대. 순천만 만큼 가을과 어울리는 여행지가 또 있을까. 드넓은 습지를 가득 메우는 갈대밭을 지나 최종 목적지 용산전망대에 올라서면 일 년에 일곱 번 색을 바꾼다는 칠면초 군락의 황홀한 비경을 만날 수 있다. 순천만 갯벌은 보성 벌교 갯벌과 함께 연안습지로는 국내 처음으로 습지 관련 국제기구인 람사르협약에 등록됐을 만큼 특별한 습지다. 세계 5대 갯벌로 손꼽힐 만큼 청정 한 갯벌인 만큼 습지 가득 생명이 살아 숨쉬는데, 가을이 되면 이 땅에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희귀 철새들이 찾아온다. 순천에는 순천만 외에도 초가마을 낙압읍성, 수수해서 더 아름다운 선암사 등 주변 여행지도 가득하다.
낭만의 밤바다
4 금오도 비렁길
가수 장범준 덕분인지 '여수'하면 '밤바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섬과 바다, 낭만이 흐르는 여수 여행은 그래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다. 이 여수가 품은 수많은 섬 중 금오도에 특별한 길이 숨어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조성된 18.5km의 금오도 비렁길이다.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로 남해안 끝자락에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신비로운 섬 금오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도가 밀려드는 천길 낭떠러지의 벼랑길 사이에는 조선 왕실 궁궐 건축 목재로 사용되던 황장목이 자라는 금오숲이 있다. <인어공주>, <혈의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 많은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숲은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을 품고 있다. 비렁길을 따라 이어진 다도해의 환상적인 풍경과 절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또한 구간마다 마을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이어져 있어 시간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부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하산할 수 있다. 비렁길은 총 5개 코스와 종주 코스로 나뉘어 있으며 18.5km에 8시간 30분 소요된다.
한국의 미를 찾아서
5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씨의 600년 전통마을인 하회마을은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하회(河回)는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조선시대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마을은 예스러운 향기가 잘 보존돼 있다. 산책하며 마을을 둘러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수수한 멋이 가득한 건축물 하나하나를 감사하며 걷다 보면 시간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마을에는 현재 160여 채의 기와집과 200여 채의 초가가 남아있으며, 큰 길을 중심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는데, 북촌의 대표적 건물로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보물 제 306호)이 있으며, 남촌엔 충효당(보물 제414호)이다. 마을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통 와가와 초가가 잘 보존돼 있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예부터 안동에서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곳이라 불렸으며 조선의 대유학자이자 <징비록>의 저자인 서애 류성룡이 나고 자란 곳으로 유명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