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없는 환대의 공간
경계가 없는 환대의 공간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9.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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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시장

다섯 개의 시장이 한곳에 모여 공존하는 충주. 경계가 없는 이 공간은 찾아오는 모든 이를 환영한다.


‘선을 긋다’, ‘선을 넘다’는 말에는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찾아오는 무례함을 방지하기 위한 무언의 불편함이 담겨 있다. ‘선’은 정확한 구분을 담은 단어라 차갑고 벽이 느껴지는 말이다. 때문에 환대하기 위해서 지워버려야 할 것은 구분하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선을 넘을 수 있도록.
찾아오는 모든 이를 환영하는 충주의 시장에는 경계가 없다. 충주의 중심에는 무학시장, 자유시장, 풍물시장, 공설시장, 충의시장 총 다섯 개의 시장이 있는데,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 굳이 나누지 않으면 하나의 시장처럼 보인다. 입구도 여러 개라 어디로 들어가도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큰 규모 때문에 헤매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시장이 이렇게나 큰 규모인 이유가 있다. 충주는 예부터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상권의 중심지였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백화점이 들어서듯 옛날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성문 주위에 시장이 생겼다. 지금 충주의 시장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 또한 충주읍성의 북쪽에 있어 북문 거리라고 불렸던 곳이다. 오래된 역사를 이어온 전통 있는 시장이지만, 지금은 주차공간과 화장실, 카페 등의 편의시설도 곳곳에 잘 갖춰져 있어서 시장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10일, 충주 풍물시장에 장이 서는 날. 정기시장인 풍물시장까지 열리는 날이라 시장의 규모가 가장 커지는 날이기도 하다. 흐린 날씨,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길거리는 한가한 모습이지만 분주한 발걸음이 모여 시장만큼은 활기를 띠고 있다. 정갈하게 놓여있는 물건들이 길을 밝히듯 줄지어 이어진다. 시장은 생동하는 맛이 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곱게 포장되어 있는 광경보다,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듯한 살아있는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뺏는다. 사장님이 직접 만들고 있는 묵의 탱글한 자태, 갓 태어난 것처럼 물기를 머금은 과일과 채소들, 제사용 생닭의 무시무시한 얼굴. 어느 하나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 채소, 생선, 반찬 등 먹거리부터 의류나 잡화 등 없는 게 없다.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점심때를 놓친 터라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자연스레 따라간다. 무학시장 내에는 유명한 먹거리 골목이 있다. 바로 순대만두골목. 골목 양쪽을 가득 채운 순대와 만두가 초대하는 곳이다. 비를 피해 이곳으로 모여든 건지, 아까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인파가 몰려있다. 오히려 좋다. 이 많은 순댓국 가게 중에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곳을 가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던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엿보이는 가게로 따라 들어가 봤다.


복돼지 시래기 순댓국. 노란색 간판이 눈에 띄어 창을 들여다보니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 순댓국을 외친다. 어느새 고소한 향을 풍기는 순대국밥이 눈앞에 놓였다. 충주의 다른 음식들에도 자주 등장하던 시래기와 소복이 쌓아올린 들깨가루가 먼저 보인다. 돼지고기의 잡내를 제거해 주는 시래기가 들어가니 깔끔하며 씹는 맛이 더욱 살아 있고, 국물을 뽀얗게 만드는 들깨가루가 고소함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직접 만든다는 반찬도 남길 틈 없이 해치운다. 그렇게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나왔는데, 덫에 걸렸다. 맞은편에서 윤기나는 자태로 유혹하는 꽈배기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홀릴 것을 알고도 지갑을 여는 마술공연의 관객들처럼, 과식의 문턱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미 손에는 꽈배기 한 봉지가 들려있다. 시장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다.


죄책감에 시장을 더 둘러볼 겸 정처 없이 걸어본다. 그러다 잠시 시장에서 벗어나버린 사이, 반기문 생가인 반선재를 마주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총장이 20여 년을 살았던 생가다. 2013년 8월에 복원 작업을 마치고 대중에게 공개됐다고. 반기문 총장의 사진과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해설사가 항시 대기하고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겨운 기와집을 기웃거리며 그의 삶을 둘러본다.

ⓒ충주시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야시장의 간판을 마주했다. 자유시장내에 있는 누리 야시장은 코로나19로 중단했다가 올해 5월 27일부터 다시 재개장했다. 야시장에서는 닭꼬치, 순대, 만두 등의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바로 앞의 공연장에서는 각종 문화 공연까지 펼쳐지며, 10월 30일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6시부터 11시 사이에 방문하면 만날 수 있다. 비록 오늘은 낮의 시장을 만나느라 야시장의 분주함을 보진 못했지만, 다음은 이곳을 꼭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편이 따뜻하다. 늘 벽을 마주했던 일상과 내 것과 너의 것을 구분 짓기 바쁜 쌀쌀한 시대에, 공존과 환대의 옷을 겹겹이 껴입은 충주의 시장에서 시들지 않는 온기를 선물 받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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