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숲의 향, 가평 잣향기푸른숲
밀려오는 숲의 향, 가평 잣향기푸른숲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8.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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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잣향기푸른숲

수령 90년 이상의 잣나무들이 빼곡하게 채워져있는 잣향기푸른숲.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후, 잣나무가 우거진 이곳에는 짙은 숲의 향이 난다.


잣향기푸른숲은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 해발 45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산림휴양지이자 치유의숲이다. 수령 90년 이상의 잣나무림이 국내 최대로 분포하고 있어 쭉쭉 뻗은 나무 사이로 걷기 좋은 곳이다. 성인과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대상을 위한 맞춤 산림치유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산림치유프로그램 외에도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트레킹 코스를 갖추고 있어 트레킹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지만, 이렇게 언제 다시 비가 내리칠지 모르는 심술궂은 날에는 자박자박 걸으며 잠시 산책하기에도 좋다. 무더운 여름,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주는 걱정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잣향기푸른숲 매표소 앞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고, 매표소를 지나 200m 남짓한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데크길이 오솔길처럼 길 외곽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숲길에 진입하기 전에는 아스팔트길이라 숲에 왔다는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는데, 외곽으로 빠져 데크길에 올라서니 느낌이 새롭다. 잣향기푸른숲은 153ha로 면적이 넓은 만큼, 숲 체험코스도 길이와 난이도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뉘어 있고 축령산과 서리산으로 가는 등산로 코스도 2개가 있지만 오늘은 딱히 정해진 코스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시선이 닿는 곳으로 발길을 옮길 계획. 방문자센터에 닿으니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전국 최초 잣나무와 잣 관련 전시관인 축령백림관, 목재 소품을 직접 제작해보는 등 목공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잣향기 목공방 등이 보인다. 우측으로 몸을 돌리니 잣나무 피톤치드길이다. 높이 뻗은 잣나무가 우거진 피톤치드길로 자연스레 가닿는다.


이른 새벽 한바탕 굵은 비가 내리고 난 뒤라 바닥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흙 내음, 나무에 걸린 듯 뿌옇게 널린 안개가 머금은 잣나무 향이 코 끝에 와닿는다. 잣향기푸른숲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는 남다른 시원한 향이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래도 피톤치드다. 울창한 숲에서 많이 나는 피톤치드는 테르펜이라는 유기화합물질이다. 흡입하면 피로회복을 촉진시켜 면역기능과 자연치유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한숨 들이킬 때마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 습도가 높으니 오랜 시간 우려낸 차처럼 농도가 더욱 진해진 듯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잣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잣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고산지대와 한랭한 기후를 좋아하며 키는 보통 20~30m로 높이 자란다. 웅장하고 근엄한 모습이다. 해가 없는 흐린 날이지만, 해가 나 있어도 저 든든한 나무들이 보호해 줄 것 같은 기분. 아늑한 잣나무들의 품이다. 아주 작은 청설모 한 마리가 길을 지나가다 멈춰 서서 잠시 이쪽을 빤히 응시한다. 반기는 걸까, 잣을 찾는 걸까. 이제는 아예 길을 가로막고 섰다.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숲의 주민이 안심할 때까지 잠시 멈춘다.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장마철, 밖으로 나오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댔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구나. 작은 손으로 주섬주섬 털을 고르더니 쏜살같이 잣나무를 타고 사라진다.
땀이 엉겨 붙은 이마를 한번 쓸어내리고, 쉼터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설치된 벤치에서 한숨을 돌린다. 피톤치드길 곳곳에서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등장 한다. 피서는 이런 곳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변을 메운 잣나무들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잣나무숲을 마음껏 질러 다니다 보니 이곳에 화전민마을이 있다는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숲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숨은 이야기를 찾는 맛도 있는 법. 다른 길에 올라 걷다 보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는 물레방아 옆으로 정자가 나온다. 화전민마을에 도착했다는 이정표다.
잣향기푸른숲 화전민마을은 실제로 1960~70년대에 화전민 6가구가 터전을 잡고 화전 밭을 일구며 거주했던 옛 집터에 너와집, 귀틀집 등을 전시가옥을 재현한 곳이다. 화전민들이 사용했던 생활도구나 농사기구 등 생활양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자 했던 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화전민마을. 계절마다 날씨 변화가 급격한 산간 지방에서는 온도와 습도에 유연한 형태로 집을 지어야 했는데, 너와집은 맑은 날에 지붕 재료가 수축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한여름 무더위는 시원하게 날 수 있고, 비가 오는 날 에는 습기를 빨아들여 널판이 팽창해 물이 새지 않았다. 겨울 적설기에는 지붕 위에 눈이 쌓여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귀틀집은 통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고 귀틀 방식으로 쌓아올려 벽을 만든다. 그 틈은 흙으로 메워 벽체를 만든 집을 말한다. 산간 지방에서도 목재만 있으면 튼튼한 집을 만들 수 있어서 산간지대의 화전민들 사이에 널리 이용된 형태다.

잣향기푸른숲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잣나무들도, 잣나무숲을 한 바퀴 돌며 모두 둘러볼 수 있는 5.8km의 원점회귀 둘레길도 좋다. 하지만 비가 남긴 무거운 공기가 전해주는 잣나무 향을 온몸으로 한껏 머금고 돌아올 수 있는 이런 날도 좋다. 잣나무숲은 언제나 우리를 기분 좋게 맞아준다.

경기도 잣향기푸른숲
경기도 가평군 상면 축령로 289-146
031-8008-6769
09:00~18:00(동절기 09:00~17:00) 화~일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월요일 개장, 다음날 화요일 휴관)
어른 1천원/중고생, 군인 600원/초등학생 300원
farm.g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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