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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살아내는 방법
계절을 살아내는 방법
  • 글 사진 김혜연
  • 승인 2022.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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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와룡산 트레킹

찬란하게 피어나던 꽃들이 모습을 감추며 계절은 뜨거운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위마저 즐기며 살아내는 방법, 바로 푸르디푸른 산을 찾는 것. 버킷리스트에 담아두었던 경남 사천의 와룡산으로 떠나본다.

경상남도 사천에 자리 잡은 와룡산은 해발 801.4m로 높고 낮은 봉우리 아흔 아홉 개가 형성되어 있어 구구연화봉이라고 불린다.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와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럼,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듯 감싸 안고 있는 용의 등을 타러 떠나볼까?


오늘은 와룡마을-도암재-새섬봉-헬기장-민재봉-기차바위-덕룡사-와룡마을 원점회귀 코스로 약 9km를 산행할 예정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일정이지만 햇볕이 뜨겁고 벌레와 풀이 많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 스틱, 여분의 옷, 행동식 등 준비를 철저히 하고 출발한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고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철쭉 철이 지나서인지 주말인데도 등산로는 한산했다. 덕분에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유로운 등산로와 달리 시작부터 짜릿하게 쏘아대는 햇볕에 이마를 타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는데 콧속으로 향긋한 바람이 훅 들어왔다.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주렁주렁 탐스러운 아카시아 꽃송이가 나를 이제야 보냐는 듯 새침하게 손을 흔든다. 자연 향기 테라피를 받으며 힘을 내서 산행을 시작한다. 무성한 풀숲 사이로 등산로를 구불 구불 따라 올라가다, 등산해온 것에 허무함을 느끼게 해주는 임도와 함께 도암재에 다다른다. 차로 여기까지 왔으면 힘을 아끼고 빠르게 올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편한 침대를 박차고 문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이런 사서 고생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겠는가?’라며 스스로 위로하고 발걸음을 이어간다.


도암재를 지나고부터는 경사도가 올라가며 고도를 높여간다. 잠시 숨을 돌리려 고개를 들면 대왕 삼각김밥의 모양을 한 천왕봉(상사바위)이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데 그 모습이 어서 산으로 오르고 싶은 욕구를 활활 타오르게 할 정도로 멋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왕봉부터 시작해 와룡산 종주를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문밖으로 나온 일행의 체력을 감안해서 천왕봉은 제외하고 새섬봉으로 바로 오르기로 했다. 그래도 자꾸만 멀리서 멋진 자태를 뽐내는 천왕봉이 아른거려 다음번엔 꼭 포함해서 산행하리라 다짐했다. 아슬아슬 돌계단을 리듬 타며 밟아 쭉쭉 올라가는 맛도 좋다. 그 맛에 취해 고도를 높이다 보면 조망이 탁 트이는 곳이 나타나고 그곳에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다. 누구에 의해 시작되어 이렇게 많은 돌무더기가 쌓였는지 모르지만, 작고 소소한 소망들이 와룡산의 정기를 받아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이 지점부터는 크고 작은 조망이 터지는 능선, 대왕 삼각김밥의 옆모습, 산행을 시작했던 와룡마을부터 저 멀리 사천의 넓은 바다가 반짝이는 풍경이 시작된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새섬봉에 도착했다. 새섬봉의 정상석은 작고 동글 동글해 귀엽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옅게 갈비뼈를 드러낸 듯한 와룡산의 능선은 탄탄함과 장쾌함 그 자체다. 와룡산의 든든한 보호를 받고 있는 귀여운 와룡마을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탁 트인 새섬봉 곁을 빨리 떠나고 싶지 않아 더위도 식히고 체력도 보충할 겸 간식시간을 가졌다. 여름철엔 과일 통조림을 얼려서 행동식으로 많이 먹는다. 등산 하루 이틀 전 냉장고에 얼려두었다가 쿨러 백에 담아 가서 산행 중 먹으면 더위도 해소되고 당 보충과 에너지 보충도 가능하기에 여름 행동식으로는 가히 으뜸이 아닐까 싶다. 여름 산행 중에는 특히나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중간중간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 행동식 섭취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잠시 몸도 마음도 꿀 같은 휴식을 보내고 다음 봉 우리를 향해 출발한다.
새섬봉을 지나고부터는 가볍게 오르막과 내리막, 흙과 돌이 반복되는 어렵지 않은 능선이 펼쳐진다. 여유롭게 걷다 보니 어느새 헬기장이다. 멀게만 보이던 봉우리는 조금만 움직이면 어느새 눈앞에 와있고 또 어느새 내가 그 봉우리 위에 있다. 이것이 능선의 마법인가, 아니면 우리 마음의 거리인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헬기장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민재봉에 도착한다. 800고지의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와 의자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엿보인다. 사방으로 쭉쭉 뻗은 능선들, 귀여운 와룡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사천 앞바다와 바다, 콕콕 박힌 섬들이 조망되는 환상의 그곳, 민재봉에서 잠시 쉬어간다. 지금 이 순간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경치, 황홀하게 울어대는 새소리, 삼박자를 갖춘 이곳이 지상낙원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강해지자 여름인데도 추위가 찾아온다. 추위를 피할 임시방편으로 각자 텐트에 몸을 넣고 목만 밖으로 뺀 채 대화를 나눈다. 그 우스운 모습마저 즐거운 시간이다. 잔뜩 낀 구름 탓에 별은 볼 수 없었지만, 바다에 드문드문 반짝이던 불빛과 작은 와룡마을에서 새어 나온 불빛 덕에 황홀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밤사이 거세진 바람은 새벽녘이 되자 더욱 심해졌다. 바람의 재촉에 이른 시간 깨어나 머문 곳을 정리하고 다음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민재봉에서 기차바위를 지나 덕룡사를 거처 와룡마을로 원점회귀할 예정이다. 어제 편하게 드러누운 용의 상체를 마음껏 누렸다면, 오늘은 용의 꼬리를 간지럽히며 하산할 예정이다. 민재봉에서 기차바위를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느긋하게 뻗은 능선과 그 위를 촘촘히 뒤덮은 다양한 초록빛, 그 끝으로 펼쳐지는 바다, 마치 한 마리 악어가 느긋하게 누워 수영하고 있는 형상이다. 하산을 시작 하면서부터 아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느리게 옮겨보지만 조금 걷다 뒤를 돌아보면 금세 민재봉이 저 멀리 멀어져 있다. 조금 뒤 다시 돌아보면 또 봉우리 하나를 넘어 까마 득해 진다. 오늘은 초록 초록한 나무숲을 지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산하게 되는 코스다. 아쉬움은 잊어버리라는 듯 조망 없이 시원한 숲을 무념무상으로 걷다 보면 곧게 뻗은 조용한 전나무 숲을 만나게 되고 뒤이어 와룡마을에 닿으며 산행은 끝이 난다. 하룻밤 꿈처럼 아쉽고 여운이 오래 남는 산행이었다.
갈수록 힘겨워지는 더위와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다양하게 애쓰지만 역시 가장 명쾌한 방법은 자연의 품에서 위로받는 것인가 보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묵묵히 사시사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자연스러움을 선사하는 자연. 그 속에서 욕심 없고 변함없이 꾸준한 일상을 약속하며 귀한 여름 첫 한 자락을 보내본다.

여름철 산행 장비 준비
1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배낭은 꼭 필요한 장비만 챙겨 가볍게 준비한다.
2 배낭의 공간 활용을 높이기 위해 숙영 장비들을 포장된 파우치에 넣어 배낭에 수납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배낭 공간에 맞춰 패킹한다. 남는 공간 없이 꼭 맞게 패킹할 수 있어 버려지는 공간도 줄이고 배낭 모양도 깔끔하게 잡힌다.
3 덥더라도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어 미끄러울 때 발목 부상을 최소화한다. 또한 하중 분산과 중심을 위해 트레킹 폴은 꼭 사용한다.
4 날아다니는 벌레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뒤집어쓰는 버그넷을 준비한다.
5 땀이 많이 나 체력 소모가 많기 때문에 물, 이온음료, 행동식 등을 준비해서 중간중간 섭취한다. (얼린 과일 통조림은 별미 중 별미)
6 개별 포장 제품들은 산행 중 껍질을 흘려 의도치 않게 쓰레기를 버리게 될 수 있으므로 먹을 만큼의 양을 작은 통이나 지퍼백에 껍질을 까서 넣어가면 좋다.
7 땀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여분의 옷과 양말은 항상 지참한다. 숙영지 도착 후 젖은 옷부터 갈아입지 않으면 일교차와 바람에 노출되는 시간에 따라 여름에도 저체온증이 올 수 있다.
8 마음은 가볍고 즐겁게, 자연을 이용하는 책임감은 무겁게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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