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흔적, 인제 38선
분단의 흔적, 인제 38선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6.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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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38선의 흔적을 따라

우리는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 슬픈 사건들, 잘못된 선택들을 발판 삼아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제에는 역사를 따라 그어진 38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의 휴전선 이전에 그어진 분단의 흔적, 38선은 우리나라를 점령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속에서 1945년 8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그어진 임시 군사 분계선이다.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되어 다른 체제를 가지게 된다. 분단의 시작이었다. 38선은 한반도를 반으로 가르며 남북을 잇는 모든 도로와 철도를 끊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단절로 가족들이 생이별하며 한반도에는 통곡 소리가 퍼져 나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38선은 무너졌지만 1953년에 성립된 지금의 휴전선이 생길 때까지 남북의 정치적 경계선이었다. 인제는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흐려져 가는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곳에 남은 38선 의 흔적을 따라 아픈 역사를 매만져 본다.

소양호의 경치를 감상하며 미시령 힐링가도를 달리다 보면 유유히 흐르는 소양강 위로 관대리와 남전리를 잇는 인제38대교를 만난다. 착공할 당시 지어진 이름은 관음대교였지만, 역사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 38대교라 명명했다. 1960년대에는 이 부근에 38교라는 이름의 작은 다리와 군부대가 있었지만 1970년대 소양강댐 건설로 인해 수몰됐고, 이후 38대교가 지어졌다.
38대교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지금은 주민들에게 환영받고 있지만, 지어질 당시에는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다리였다. 당시 관대리에는 40명이 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382억 원이라는 큰 예산을 투자해 다리를 지을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이 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지어진 이후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관대리와 읍내가 10분 거리로 단축되면서 관대리 농산물이 반출되기 시작했고, 거래하는 작목의 종류도 늘어났다. 농가의 소득이 늘어나자 귀촌하는 사람들도 유입되며 38대교는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다리가 되었다.

38대교에 올라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초록색으로 새겨진 38이라는 숫자 위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대형 국기 게양대가 먼저 맞이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돌면 38공원을 만난다. 38공원의 시작에는 38루 정자가 있다. 방문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이자, 38대교와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후 제3군단장이 남면 부평리에 38루라고 새긴 비석을 세우고 정자를 만들 계획을 진행하던 중 무산되었고, 이후 38공원으로 이전해 만들어진 정자라고 한다.
그 옆에는 38선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폭 13m, 높이 8m 크기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붓으로 그린 듯한 표현 방식을 통해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바람을 담고자 했다고 한다. 흑백사진 속 그때의 모습과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 전쟁으로 인해 빼앗기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게 된다. 38공원 주차장 옆 나무 덱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전망대에 다다른다. 힘찬이와 나라라는 군인 조형물이 38대교를 지키는 듯, 38대교 전망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슬픈 자리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38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전쟁의 기록들이 남겨진 비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비석에는 한국전쟁 당시 주둔했던 군부대들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1953년에 창설됐던 제3군단사령부가 주둔했다는 기록과 제3군단장 소장 오덕준 장군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남아 있다. 오덕준 장군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면 남전리 인근 어려운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살고자 했던 그의 마음도 이곳에 남은 듯하다.
38공원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38휴게소가 위치한다. 38휴게소는 다른 휴게소보다 작은 규모지만, 소양호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멋진 뷰로 인기를 끄는 곳이기도 하다. 휴게소에는 38coffee 카페가 있어서 인제 여행 중 잠시 머물며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인제에 남은 38선의 흔적을 둘러보고 먹먹해진 마음을 소양강 앞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달래며 역사 속으로 저문 우리의 아픔을 기억 속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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