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쟁이 보물섬에서 보물찾기
깍쟁이 보물섬에서 보물찾기
  • 김혜연 | 김혜연
  • 승인 2022.04.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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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수우도 백패킹

겨우내 움츠렸던 자연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 간질거리는 시기엔 산에게 잠시 휴식시간을 주어 더욱 풍요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역마살이 들끓는 우리는 어디로든 문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맘때쯤이면 여유롭게 바다와 육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모처럼 섬 여행을 계획하고 목적지를 물색하던 중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사량도 옆 조그만 섬, 수우도를 발견했다. 훌륭한 큰 형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왕족의 소외된 둘째 아들 같은 서러움이 느껴진다. 언제나 소외된 곳에 먼저 마음이 가는 우리는 주저 없이 잘난 형님을 둔 서러운 동생, 수우도로 떠났다.
수우도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밤 11시 45분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경 모두가 잠든 조용한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준다. 코로나 이전에는 새벽에 도착하면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코로나가 휩쓸고 간 삼천포 터미널은 적막함만 가득하다. 혹시나 싶어 택시를 타고 배가 출발하는 삼천포 활어위판장에 찾아갔으나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는 수 없이 선착장 앞 의자에 앉아 남은 2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의 싸늘함에 배낭 속 침낭을 꺼내어 꽁꽁 싸매고 추위와 사투를 벌인다. 수우도 요 녀석, 얼마나 아름다우려고 우리를 이토록 애태우는가! 혹시나 배를 놓칠까 싶어 졸린 눈을 치켜 뜨며 겨우겨우 잠을 참아내고 있는데 오늘의 태평한 여행 메이트는 쌔근쌔근 잘도 잔다. 그래, 한 명이라도 잘 자면 좋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수우도로 향하는 귀여운 배에 하나 둘 불이 켜지더니 배 문이 열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아름다움이 듬뿍 담긴 보물섬으로 향 하는 순간이다. 붉은 해를 품은 남도의 바다 바람과 파도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자 조용한 섬, 수우도에 도착했다. 비몽사몽으로 울렁거리는 배에서 내려 짭조름하고 시원한 공기를 한 모금 들이켰더니 잠이 서둘러 멀리 달아난다.


자, 그럼 울렁울렁대는 가슴 안고 섬 속으로 들어가 볼까나?
금강산은 식후경이지만, 섬 트레킹은 화장실후경이다. 수우도에는 공중화장실이 있지만, 폐쇄되어있다. 한동안 화장실을 못 갈 테니 민박집에서 아침으로 라면을 사 먹으며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사용한다. 오늘 우리는 섬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구석구석 탐험할 생각이다.
설렘 가득한 발걸음이 처음 멈춘 곳은 몽돌해변이다. 유명 관광지처럼 멋지게 꾸며져 있진 않지만 파도와 철석철석 하이파이브하며 반짝이는 몽돌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기분이다. 해가 뜨며 확 얼굴을 뒤바꾼 날씨에 챙겨 입었던 보온 의류들을 벗고 정비 후 다음 목적지 은박산을 향해 떠난다. 산으로 향하는 들판엔 매화가 지천이다. 사실 매화나무는 다섯 그루 정도가 전부였지만, 내 마음속엔 지천에 팝콘 같은 매화나무와 향기가 가득한 것 같다. 매화 향기와 함께 들판을 조금 걸으면 산허리로 진입하는 길이 나온다. 곳곳에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어 길을 잃지 않고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은박산은 196m로 아주 아담한 편에 속하지만 낮다고 얕보면 혼쭐날 수 있다. 평화로운 들판을 걷다 산 들머리에 진입하고 나면 짧지만 아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우도는 나무가 많고 섬의 형태가 소를 닮아 갖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를 증명하듯 은박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온통 동백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로 가득하다. 계속되는 가파른 오르 막에 숨이 차올라 조금 힘들어지려 할 때 뿅! 하고 반가운 은박산 정상이 나타났다. 낮지만 아기자기한 정상석과 섬의 능선, 푸른 남해 바다를 한눈에 감상하기 충분했다. 정상에 오르느라 등을 적신 땀을 식혀주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따뜻한 햇볕 아래 잠시 쉬며 미리 준비해온 커피를 냉수에 따라 우아하게 마셔본다. 꿀맛이 따로 없다. 이대로 햇볕 아래 엿가락처럼 늘어져 녹아 내리고 싶지만 아직 이 아름다운 섬의 1/3도 담지 못했다는 조바심에 다시 걸을 채비를 한다.
다음 목적지는 이 섬의 하이라이트, 수우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보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골바위다. 해골바위는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안가의 바위가 해골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화에 보면 괴물들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숨어살곤 한다. 그처럼 해골바위도 수우도의 깊은 해안가에 살고 있어서 만나 뵈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진입로를 안내하는 표시가 흐릿해서 찾아가기 힘들고, 진입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한 흙길이라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도 진입 표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으나, 마침 섬을 찾은 단체 산악회 팀의 배낭이 쌓여있던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몇 번의 바위 구간과 미끄러운 비탈길을 지나자 드디어 해골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감동이 밀려왔다. 세계의 어느 명소에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비경이 이리도 많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해골바위의 얼굴에 올라서려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암벽등반 수준의 바위를 줄을 잡고 가야 한다. 등산로에 안전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줄을 잡고 이동할 때는 먼저 줄을 잡고 이동하는 사람이 완전히 줄을 다 사용하고 난 뒤에 다음 사람이 차례로 줄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의 줄에 여러 사람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힘을 주며 줄에 무게를 실을 경우, 서로 균형이 틀어져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조금 기다린다고 많이 늦어지지 않는다. 산에 올 때는 항상 여유로운 마음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줄을 잡고 이동하던 우리 뒤로 마음 급한 산악회 단체팀이 먼저 가려고 줄을 흔들며 이동하는 바람에 중심을 잃어 발을 접질리는 작은 사고를 겪었다. 멋진 광경에 흥분되고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19로 억제되어 있던 일상에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지켜줘야 할 바다에 그대로 소변을 보며, 자기가 먼저 사진을 찍겠다고 얼굴을 붉히는 것은 ‘자유’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을 참고 절제하며 양보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자연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조금 욕심을 부려 해골바위를 충분히 감상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계속해서 밀려오는 등산객들에게 빨리 양보하기 위해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 다음 목적지는 백두봉과 신선봉이었지만 목책에 가려 출입이 금지돼 아쉽지만 패스하고 그 다음 목적지인 고래바위로 이동한다. 그림 같은 아담한 능선을 지나 산길을 걸어 고래바위를 향해 한없이 내려간다. 이 깍쟁이 수우도는 쉽게 경치를 내어주는 법이 없다. 어쩜 이렇게 작고 조그만 섬에 오르락내리락 길이 나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깊은 홀에 빨려 들어가듯 내려가다 보니 나무숲이 사라지며 맑은 바다가 펼쳐진다. 커다란 바위들과 함께, 멋진 해안절벽과 함께, 그리고 거세진 바람과 함께. 에메랄드빛 바다가 햇볕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니. 글은 직접 눈에 담는 것엔 못 당한다. 반짝이는 바다와 멋지게 깎아지른 해안절벽,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 위로 날아가는 새까지 차곡차곡 눈과 마음에 담고 숙영지를 찾아 이동한다.
원래 고래바위 위에서 멋진 바다를 보며 하룻밤 보낼 생각이었지만,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조금 더 안전한 숙영지를 찾아 간단히 텐트를 설치했다. 점점 화기 사용이 힘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연을 아껴줄 수 있을까 싶어 요즘 비화식에 대해 연구 중이다. 오늘 연구의 첫 시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발열 도시락은 쓰레기 발생이 많아지는 관계로 시판되는 발열팩과 가지고 있는 반합을 이용해 저녁을 마련했다. 어느 정도 조리가 되어 있어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만두와 브리또가 오늘의 메뉴다. 간편하면서 쓰레기 발생은 적고 맛도 있으니 오늘 저녁은 합격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유난히 밝은 달을 감상한 뒤 이렇게 초저녁에 잠에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이른 시간에 잠을 청했다. 섬 밖으로 나가는 배가 다음날 오전 8시 반에 한 척만 운행한다고 하니 그 배를 타려면 내일 이른 새벽 일어나 이동해야 한다.

캄캄한 새벽, 알람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이동 준비를 한다. 정말 봄날이 찾아오긴 한 모양이다. 따뜻한 날씨 덕에 일어나고 준비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숙영 장비를 정리하고 주변을 돌며 혹시나 흘린 쓰레기가 없는지 다시 한번 둘러본다. 오늘은 우리 동네 쓰레기봉투를 준비했다. 섬은 물자를 들여오는 것도 힘들지만, 쓰레기나 재활용품 등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힘든 일 일터. 내게서 나온 것만이라도 모조리 가져가서 우리 동네에서 분리배출하기 위해서다. 섬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구경 오면서 피해를 주고 갈 수 없으니 혹시나 해골바위의 매력에 빠져 섬을 찾는 이가 있다면, 쓰레기는 반드시 섬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준비를 마치고 선착장을 향해 이동한다. 이동 중 날이 밝아 왔는데 살짝 흐린 탓에 더욱 붉고 둥글게 떠오르는 일출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고래바위에서 여유 있게 일출을 즐기고 오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무엇을 어디에서 만나든 그 감동은 부족함이 없다. 굽이굽이 조그만 산길을 지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 만큼 바다가 가까워지면 이내 항구에 닿는다. 서두른 덕분에 조금 이르게 도착했지만 항구에 서서 오가는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백패킹의 일부다.
이번엔 아주 알차게 백패킹을 즐기고야 말았다. 마을 어르신들의 평온과 건강을 기원하며 모든 것을 배에 실어 곳곳에 보물을 숨겨 둔 깍쟁이 보물섬, 수우도를 떠나온다. 다음 자연의 보물은 어디에서 발견하게 될까? 아웃도어 활동을 한해 한해 이어가며 자연과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부족할 수 있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지만, 옳지 않은 것은 인지하여 고치고 옳은 일은 함께 널리 할 수 있는 좋은 아웃도어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Sleep Outside! Have Fun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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