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의 끝을 잡고, 춘천 삼악산
이 겨울의 끝을 잡고, 춘천 삼악산
  • 김혜연 | 김혜연
  • 승인 2022.03.18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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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시작하는 순간, 친구들과 한껏 신이 나있는데 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하는 9시, 그리고 온세상을 낭만으로 물들이는 하얀 겨울이 가는 바로 지금이다.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는 이 겨울의 끝을 잡으러 춘천의 삼악산으로 떠나본다. 준비물은 볼 것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른 겨울을 잘 버텨낸 사그락사그락 낙엽들, 풍성하지 않은 무채색의 자연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음,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배려심이다.
삼악산은 취사금지구역이나 야영금지구역은 아니기에 간단하게 야영장비를 챙겨 춘천행 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삼악산은 입구에서 시작해 웅장한 등선 폭포를 지나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와 시작부터 깎아놓은 듯한 바위 사이를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하는 의암댐매표소 코스가 대표적이다. 산의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독특한 기암괴석과 북한강의 수려한 경관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청평역에 내리면 역 바로 앞에 두들머리로 향하는 버스가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쉽다.
자, 그럼 겨울이 채 떠나지 못해 냉동실에서 막 꺼내놓은 빵빠레같은 삼악산 속으로 들어가 볼까?

등산로 입구에서 2천원을 내고 표를 사면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산행 후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상품권을 이용해 근처 맛집에서 식사를 즐기는 코스로 잡으면 좋을 것 같다.
지난 밤 내린 눈이 곳곳에 아직 남아있다. 시작도 전에 겨울은 우리에게 꼬리 를 잡힌 듯하다. 바위를 하나하나 밟고 움직일 때마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마스크때문에 답답하던 콧구멍을 뽕뽕 뚫어준다. 요즘은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공기를 마시고 싶어 산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다른 등 산객이 있을 때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조금 올라서자 슬슬 의암댐을 담은 북한강의 유연한 몸매가 시야에 들어온다. 웅장한 산틈, 에스라인으로 흐르는 파란 강물에 살얼음이 동동 떠있다. 급하게 고구마를 입에 우겨 넣고 목이 답답할 때 쯤 동치미 한사발 마신 기분이랄까? 벌써 감동이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소복히 눈이 덮힌 폭신한 길을 걸어 조용한 절에 도착했다. 상원사다. 유난히도 찰랑거리는 상원사의 경쾌한 풍경소리에 리듬을 맞춰 걸음을 옮긴다. 산행중 마을이나 절을 지날 때는 감사히 길을 내어준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소리 없이 아니 온 듯 지나가도록 하자.

상원사를 지나자 등산로의 두얼굴이 드러난다.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바닥이 코에 닿을 만큼 가파른 경사와 눈이 콕콕박혀 미끄럽기까지 한 바위를 밟고 이동해야 했다. 고개를 들면 저 먼 꼭대기에 오아시스처럼 반짝반짝한 해가 잡힐 듯 말 듯 우리의 애간장을 녹인다. 이게 등산에서 흔히 말하는 깔닥고개다. 등산로 중 숨이 깔닥깔닥 넘어갈 정도로 힘들게 올라야 하는 구간을 표현하는 깔닥고개, 바로 우리가 그 고난을 만나고 말았다. 끝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깔닥고개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오르니 곧 고개 끝 반짝이는 하늘에 닿았다. 우리 인생도 그렇겠지,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도 묵묵히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다.

끝난줄 알았지?
깔닥고개가 끝나자 이번엔 아슬아슬하고 날카로운 암릉 구간이 우릴 맞이한다. 얼어붙어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려니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오르면 감사하게도 잘 정비된 우리나라 등산로는 못 오를 곳이 없다. 일행과 함께 재미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도와가며 신중하게 짧고 굵은 암릉구간을 통과했다. 고생한 우리에게 선물이라도 주듯 시야가 탁 트인 곳에 계단이 놓여 있다.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니 초입에서 보았던 감동적인 모습이 더 확대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한층 더 육중한 에스라인을 자랑하는 북한강 위로 귀여운 붕어 한마리가 노닐고, 눈이 살짝 덮힌 북한강과 주변산들, 그리고 저 멀리 잡힐 듯 말듯 보이는 춘천 시내까지, ‘한폭의 그림 같다’라는 표현에 걸맞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참 경치 구경에 빠져 있다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서둘러 숙영지를 구축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뒤 텐트에 누워 별을 감상했다. 어떤 영화가 이보다 감동적일까? 추운 줄도 모르고 별들이 상영하는 영화에 한참을 취해있다 얼어 붙은 귀와 코를 붙들고 따뜻하고 포근한 침낭속으로 쏙 들어가 감동적인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벅저벅'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이른 새벽, 등산오신 분의 발걸음 소리에 호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철수했다. 고도가 낮고 마을에 인접해 있는 산에서 야영을 할 때는 등산객들이 자리를 떠난 뒤 숙영지를 구축하고 이른 새벽 철수해서 모두가 편하게 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철수 후 올라오신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항상 그 렇듯 아기 낳으러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마음으로 말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흐린 중에도 열심히 해는 떠올라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오늘도 늦잠 자느라 놓칠 뻔했던 아름다운 자연의 근무시간을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해님이 무사히 출근 하신 것을 확인한 후 오늘 하루를 빠르게 시작한다. 삼악산의 정상 용화봉을 빠르게 찍고 흥국사를 지나 삼악산의 자랑이자 명물인 등선폭포를 만나니 산행의 끝이 코앞에 다가 왔다. 하산길은 정말 편하다. 체력이 약하고 산행에 서툰 사람들은 등선폭포 코스로 정상을 찍고 원점회귀 하는 코스로 계획을 잡는다면 적은 수고로움에 비해 넘치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봄날에 삼악산에서 만났던 푸릇하고 생기 넘치는 등선폭포도 가히 장 관이었지만, 오늘 만난 무채색의 얼어붙은 폭포 줄기를 품은,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등선폭포도 매력 만점이다. 봄여름의 삼악산이 청년이라면, 겨울의 등선폭포는 중후한 중년의 모습이랄까. 이토록 매력적인 등선폭포를 끝으로 우리의 일정도 끝이났다.
사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유명해진 관광지와 산들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기위해 산과 들을 찾아다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조금 민망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소리 소문없이 줍패킹을 해보기로 했다. 백패킹 일정 중 가져간 봉투만큼 보이는 쓰레기들을 주워오는 것으로 ‘줍기’와 ‘백패킹’을 합친 말이다. 이번 일정부터 줍패킹을 실천해보기로 다짐하고 평소보다 큰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가져갔다. 그런데 산행내내 놀랍도록 쓰레기가 없었다. 조용히 쓰레기를 주워오며 자연에게 이용료(?)를 납부하는 마음 혹은 약간의 면죄부를 찾으며 보람을 느끼려던 마음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았다. 모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소하게 작은 일부터 실천한다면 작은 힘이 모여 큰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건강한 자연을 더 오래 다같이 마음껏 곁에 두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오늘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소소한 환경보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자.

Sleep Outside!
Have Fun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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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맘 2022-03-24 17:51:38
확 트인 조망을 보니, 마음까지 뻥 뚫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