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의 가능성
채상의 가능성
  • 신은정 | 양계탁
  • 승인 2022.03.14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신정 채상장 보유자

색을 입힌 대나무로 만든 상자, 채상彩箱. 채상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위기를 맞았지만, 채상장 서신정 장인에 의해 다시 수많은 가능성을 만났다.

채상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다채로운 무늬로 고리를 엮어 만든 상자를 말하며, 채상장은 채상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칭한다. 채상은 옛날부터 귀족 계층의 가구로 사용한 고급 공예품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인 채상장 서신정 장인은 아버지인 2대 채상장 서한규 장인이 별세하면서 현재 유일한 채상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없는 정성으로 만든다는 채상. 채상의 두 번째 전성기는 서신정 장인의 손을 타고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인의 역할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에만 국한시켰다면 채상은 지금처럼 변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시대에 흐름에 따라 채상을 새로운 트렌드에 맞게 변화시키고, 채상의 가능성을 항상 고민한다. 대나무의 도시이자, 죽세공예품의 고장인 담양의 채상장 전수교육관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서신정 장인을 만났다.


현재 유일한 채상장인 만큼, 책임감도 크게 느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년이 넘었네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그랬지만 채상을 잘 전승해야겠다는 마음은 한결같아요. 견고하고 좋은 물건을 공급하고자 하는 마음도 늘 지니고 있죠.

채상은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 ‘짝퉁’도 만들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크게 20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지만, 그 과정 안에서 수만 번의 손길이 가야 한 개의 채상이 만들어져요. 핵심 작업은 채상의 재료인 대실을 만드는 작업이죠. 통대나무를 쪼개고, 속대나무와 겉대나무를 분리하는 대반 치기 후에 세부적인 쪼개기 작업을 해요. 대나무를 ‘뜬다’고 표현하는데, 명태포를 뜨듯 가닥을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서 입으로 뜯어냅니다.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워요. 떠낸 대나무를 물에 불려 더 얇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가죽을 대고 칼로 훑어내요. 얼마나 얇고 부드러운가에 따라서 채상의 품질이 달라지죠. 다음엔 염색을 하는데, 쪽물은 보름에서 한 달도 걸리고, 일반적으로는 5~7일 정도로 색에 따라서 걸리는 시간도 다 달라요. 여기까지가 재료를 만드는 작업이에요.

재료만 만드는데도 많은 과정을 거치네요. 채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먼저 문양을 넣어가면서 바닥을 짜고, 네 모서리를 접어요. 다음으로 높이를 짜면 겉 상자는 완성돼요. 그런데 대나무가 얇고 부드럽기 때문에 겉 상자 하나로는 견고하지 않아서 두 겹으로 만들죠. 그래서 속 상자인 내공이 들어가는데, 겉 상자 대살이 3미리라면 내공은 6미리로 만들고 두께도 더 두껍게 해요. 동일한 방법으로 내공을 만든 후에는 겉 상자와 포개주고, 테를 만들어서 씌운 후에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준 후 내부를 비단, 삼베나 실크로 감싸죠. 마지막으로 모서리가 닳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천으로 덧대주는데, 선조들이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여기서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죠.

모든 과정에 상당한 정성이 들어가네요. 10여 년 전 옻칠을 채상의 새로운 염색 방법으로 접목한 것처럼, 패턴도 많이 개발했다고요.
세어보진 않았는데 100가지는 넘게 만들었어요. 채상을 시작한 스무 살, 가장 쉽고 기본적인 문양 서너 가지를 전수받았죠. 와중에 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전문위원님이 서울에 올라오면 꼭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찾아뵈러 갔더니 A4용지 12페이지 정도 분량의 문서를 하나 주시더라고요. 옛날 문헌 복사본, 즉 채상에 관한 역사적인 자료였죠. 그러면서 “예전에는 채상에 굉장히 다양한 패턴이 있었는데 지금은 서너 가지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할 수 있다면 이런 문양들을 연구해서 복원하고 개발해 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시더라고요. 그 문헌에는 수복강녕, 만자연속, 아자 등 12가지 문양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만자연속문양은 한옥에도 쓰이고, 도자기에도 쓰이고 있었죠. 평소에 봤던 문양들인데도 채상으로 만들어보질 않았으니 처음엔 막막했어요.


아무도 닦아 놓지 않은 길을 처음 걸은 셈이네요.
처음엔 어려웠죠. 그러다 우연히 채상으로 만들어진 만자연속무늬를 발견했어요. 증조모께서 시집올 때 해온 채상에 그 문양이 있었던 거예요. 문양을 몰랐으니, 그걸 눈앞에 두고도 못 봤던 거예요. 그 채상을 보고 3일 밤에 걸쳐 도안을 그리고, 그대로 짜봤더니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나둘 예전 패턴들을 복원했고, 짜다 보니 다양한 패턴도 만들 수 있었어요.

채상장 전수교육관에는 채상뿐만 아니라 가방, 생활용품 등 채상을 활용한 다양한 죽세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지금 43년째 채상을 만들고 있는데, 20년 전까지만 해도 채상만 만들어도 먹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96년도 IMF를 기점으로 채상 주문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그전까지만 해도 결혼할 때 함이 필수적으로 오고 가는 시대였는데, 경제가 많이 안 좋아지기도 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니 우리나라 결혼 문화가 많이 변했어요. 문화가 바뀌니 채상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공예품으로 전락해버렸죠. 당시 40대 초반으로 한창 일할 나이였으니 그게 피부에 더 와닿았고 위기의식을 느꼈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쓸 수 있게끔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게 채상을 전승을 시키고 발전을 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무모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구상하면 무조건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왔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가방, 도시락, 채상소반 등 총 50여 가지 돼요. 지금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브랜드와 협업도 하고, 2018년부터는 매년 개인전도 열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2020년에는 백화점 명품 브랜드관의 스크린도어 열두 짝을 대나무로 문살을 짜서 만들기도 했어요. 채상이 건축, 인테리어에도 잘 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거죠. 개인 전시는 채상을 알리기 위해서 2018년부터 가능한 매년 한 번씩 열고자 했어요. 지난해 종로에서 ‘짜임의 미학, 채상’ 전시회를 열었는데, 코로나가 기승이었는데도 생각 외로 잘 돼서 작년엔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올해도 개인 전시를 위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늘 많죠. 작업을 하면서도 다음 작업에 대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어요. 채상은 천, 가죽, 나무, 금속 등 어떤 소재와도 잘 어우러지는 매력이 있어요. 다소 이질감이 들어도 그게 매력이 되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지난해 인테리어 협업 이후에는 건축, 인테리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 접목해서 채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