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힐링 스테이, 켄싱턴호텔 평창
겨울 힐링 스테이, 켄싱턴호텔 평창
  • 고아라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2.01.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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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Trip in Winter

어떤 숙소에서는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한 여행을 누릴 수 있다. 평창의 자연을 담은 정원부터 들판을 뛰어노는 양들, 지역 특산물로 만든 신선한 요리, 올림픽의 열기가 생생한 갤러리까지, 켄싱턴호텔 평창이 딱 그렇다.

지난 2021년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힘든 한 해였다. 가게들은 거리 두기와 단축 운영으로 매출이 줄었고, 학생들은 해외로 향하는 꿈을 접었다. 다른 누군가는 축복을 누릴 새도 없이 결혼식 일정을 미루거나 신혼여행을 포기했다. 에디터에게도 평탄치 않은 한 해였던 건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으로 취재를 갈 때면 어김없이 바이러스가 발목을 잡았고, 섭외는 불발되기 일쑤였다. 긴 재택근무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코로나 블루의 문턱까지 마음을 밀어 넣었다.

어느덧 새해가 찾아왔다. 어쩐지 ‘새해’라는 단어에는 희망적인 감정이 뒤따른다. 긴 터널을 지나온 우리에게 2022는 어떤 희망을 안겨줄까. 지난 한 해를 겪으며 지쳐 있을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새로운 한 해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천혜의 자연이 펼쳐지는 평창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겨울에 평창으로 떠난다고 하면 으레 스키장이 있는 리조트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새하얀 설원을 내달리는 대신, 가만히 눈에 담으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게 우선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 호텔 내 맛있는 음식이 있고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풍부한 숙소를 찾다가 오대산 입구에 위치한 켄싱턴호텔 평창으로 결정했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유리관 안에 친필 사인과 함께 전시된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가 눈길을 끈다. 실제 올림픽 당시 김연아 선수가 신었던 스케이트화라고 하니 ‘이 작은 발로 빙판 위에서 그렇게 멋진 연기를 보여줬단 말이야?’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스케이트화를 꼼꼼히 다 살펴본 후에야 주변에 전시된 다른 올림픽 기념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영황제라 불리는 펠프스의 수영 모자부터 우사인 볼트의 스파이크까지 입이 떡 벌어지는 컬렉션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로비 뒤쪽으로는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과 성화봉이 연도별로 전시돼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IOC 총회와 만찬이 열렸던 켄싱턴호텔 평창은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2014년 소치올림픽까지 다양한 동계올림픽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은 입구에서 봤던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를 비롯해 스포츠 영웅들의 각종 기념품 등 무려 200여 점에 달한다.

평창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가는 듯한 기분에서 오는 아쉬움일까. 평창의 밤은 조금 더 이르게 느껴진다. 오후 5시 무렵 발코니로 시선을 돌리니 이미 해가 산 뒤로 자취를 감춘 후다. 이곳에 별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온 터라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외투를 챙겨 입고 객실 밖으로 나섰다. 검푸른 하늘 아래 저 멀리서 따뜻한 불빛이 손짓한다. 불빛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보니 글램핑 빌리지가 펼쳐진다. 아이보리 톤 텐트와 나무로 만든 테라스, 바비큐 세트가 마련돼 있는데, 미리 예약하면 디너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곧게 뻗은 전나무 숲 안에 숨은 듯 자리한 아늑한 텐트와 알알이 박힌 작은 전구들이 분위기를 더해 근사한 레스토랑 못지않다. 글램핑 빌리지 가운데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이것저것 구워 먹을 수 있는 캠프파이어장이 마련돼 있다. 저 멀리서 나에게 손짓했던 그 불빛이다. 자작하게 피어오르는 모닥 불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시절 수련회의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불 하나를 놓고 수십 명이 모여 구경하기 바빴는데,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 때문에 이 좋은 걸 못한다고 생각하니 여기서라도 비슷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새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켄싱턴 플로라 가든은 발길을 돌리는 곳마다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산에 둘러싸여 유독 어두운 이곳의 밤을 화려하게 밝히는 빛 터널을 지나 길 양옆으로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산책로를 걸으니 종 모양의 조명에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낮에는 평범했던 길들이 밤이 되니 마치 요정을 만나러 가는 신비로운 통로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황홀감에 빠져 돌아다니다 진짜 별천지를 보기 위해 빛이 없는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공 빛이 없는 곳으로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진짜 빛이 탁- 하고 터지듯 쏟아진다. 별은 머리 위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텔 건물 뒤에도, 시냇물 위에 놓인 다리 앞에도 사방이 별이다.

이 얼마 만의 햇빛이 깨워주는 아침인가. 발코니에서 양껏 쏟아지는 햇살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오랜만에 깊고 긴 잠이다. 한겨울 평창 추위에 대한 명성이 자자한 터라 밤새 춥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온돌 객실이라 그런지 바깥세상의 날씨는 까맣게 잊을 정도로 훈훈했다. 켄싱턴호텔 평창은 전 객실에 온돌이 설치돼 있어 어떤 객실을 선택해도 따뜻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누릴 수 있다. 켄싱턴호텔 평창의 객실 타입은 다채롭다. 유럽풍 몰딩과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디럭스 룸, 프리미어룸, 주니어 스위트룸 등 기본 타입부터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을 위해 텐트 침대나 자동차 침대, 어린이 전용 어메니티를 갖춘 키즈룸까지 다양하다.

가장 인상적인 룸은 프랑스 감성이 물씬한 인테리어의 프렌치 로열 스위트룸. 고급스러운 블루 컬러의 벽지와 골드 컬러의 장식, 화려한 소품들 덕에 마치 유럽 귀족이 된 기분이다. 호텔 1층에 자리한 카페 플로리에서는 나폴레옹 3세가 거주했던 튈르리 궁전에서 사용한 왕실 도자기 컬렉션과 로코코풍 프랑스 맨틀클락이 전시되어 있는데 프랑스식 정원과 이 스위트룸까지, 프랑스 콘셉트가 이어진다.

호텔의 꽃은 조식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원래 아침 식사보다 늦잠을 택하는 편이지만 셰프가 직접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라떼브La Table로 향했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훨씬 넓은 규모에 놀랐다. 안쪽 커다란 ‘ㄷ’자 형태의 테이블에 한식부터 양식까지 다양한 요리가 진열돼 있고 한쪽에서 셰프가 실시간으로 요리를 하고 있어 갓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다른 한쪽에는 어린아이들 입맛에 꼭 맞춘 새콤달콤한 파스타와 고기, 주먹밥 등으로 구성된 키즈 메뉴가 마련돼 있다. 호텔에 머물수록 가족 단위의 여행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식사 후 애니멀팜을 구경하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카페 플로리에 들렀다. 역시 프랑스 풍으로 장식된 넓은 공간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손님을 맞이한다. 사방이 통유리로 돼 있어 가든이 한눈에 펼쳐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마치 유럽의 야외 정원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어젯밤 곤히 자고 있던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정원에 있는 애니멀 팜 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다다르자 동물별로 다른 먹이가 진열된 자판기가 눈에 띈다. 염소 그림이 그려진 건 염소 먹이, 토끼 그림이 그려진 건 토끼 먹이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동물은 커다란 귀를 늘어뜨린 보어 염소였다. 귀여운 강아지를 닮은 외모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하고 친근한 성격이라 어린아이들도 금세 친해졌다. 이외에도 토끼 가족, 사슴, 양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는데, 아이들 틈에 섞여 먹이를 주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었다. 이외에도 켄싱턴호텔 평창에는 눈밭에서 썰매를 즐길 수 있는 윈터 썰매장과 정원이 한눈에 담기는 실내 수영장, 트램펄린, 볼풀, 미끄럼틀 등 10가지가 넘는 어트랙션이 있는 키즈 월드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다. 1박 2일간 호텔에만 머물렀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라는 리뷰가 성지글처럼 와닿는다. 다음 평창 여행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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