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메타버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 박신영 기자 | 사진출처 unsplash.com
  • 승인 2021.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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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와 현황과 미래

메타버스가 잠식한 2045년을 그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사람들은 가상현실 ‘오아시스’에서 식사, 잠, 용변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실행한다.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저 아주 먼 미래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2021년 메타버스는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으며, 가장 순수한 세대부터 메타버스로의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사진출처 Steve Johnson

시작된 미래
국내 굴지의 IT 기업 네이버의 계열사인 SNOW에서 2018년 AR 아바타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를 오픈했다. 초창기 제페토는 특별할 것 없는 가상 아바타 앱이었다. 캐릭터를 내 마음대로 꾸미고 타 유저들에게 캐릭터를 보여주는 정도. 그러나 제페토가 소셜 기능을 갖춘 ‘월드’를 업데이트하면서 누적 가입자 수 2억 명을 돌파했고 순식간에 전 세계를 삼켜버렸다.

제페토의 인기가 궁금해 직접 제페토 앱을 다운로드했다. 시작은 여느 아바타 게임과 똑같다. 하나의 캐릭터를 선택해 주어진 디지털 화폐로 캐릭터를 꾸민다. 완성된 캐릭터를 캡처해 제페토 내 커뮤니티에 업로드하면 SNS처럼 타 유저가 내 캐릭터에 팔로우하거나 ‘좋아요’를 눌러준다.

조금 더 현실적인 기능을 사용해 보고 싶어 오픈 월드로 입장했다. 일반 유저가 직접 만들었거나 각종 브랜드에서 설계한 맵 중 하나를 클릭하면 실제보다 리얼한 가상 세계로 들어간다. 한강공원 맵, 지하철 맵, 엔터테인먼트 회사 맵, 연예인 사인회 맵 등 맵의 종류는 무궁무진했다. 맵 안에서 캐릭터는 원하는 곳을 마음껏 오갈 수 있고 해당 맵 안에 있는 타 유저와 메시지 또는 음성 채팅으로 소통한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30분, 맵을 구경하는 데 1시간.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 채 제페토에 빠져들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등장인물이 왜 그리도 메타버스를 갈망하는지 알 법했다.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메타버스가 처음으로 언급됐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3차원 가상 세계다. ‘캐릭터를 만들고 가상현실에서 각종 활동을 한다’는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2000년대 유행했던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 시리즈가 떠오른다. 인간의 일생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으로 캐릭터를 구현하고 디지털 화폐인 ‘시몰레온’을 이용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사고판다. 그렇다면 심즈가 메타버스의 시초일까?

미국 미래학자 존 스마트가 설립한 가속화 연구재단 ASFAcceleration Studio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먼저 현실 세계에 가상을 덧입힌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다. AR은 현실을 보여주는 스크린에 그래픽을 구현해 필요한 정보를 즉각 보여줌으로써 확장된 현실감과 실재감을 제공한다. 2017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게임 ‘포켓몬고’가 증강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휴대폰으로 현실 세계를 스캔하면 그 위에 가상의 포켓몬들이 뛰노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도 메타버스의 한 분류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특정 환경과 상황을 가상으로 구현한다. 제페토, 로블록스, 이프랜드 등 요즘 이슈인 메타버스 플랫폼이 VR의 대표적인 예다. 조금 더 실재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해 VR로 접속한다. HMD를 쓰고 허공으로 손을 허우적대는 게이머들이 입장한 세계가 VR이며 이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세 번째는 라이프로깅이다. 단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라이프로깅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삶에 스며들었다. 생활하면서 경험한 모든 감각 및 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서비스로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마지막은 현실을 가상에 똑같이 옮긴 거울세계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지도 등 위성사진과 거리 뷰를 볼 수 있는 서비스라던가 집 인테리어와 설계를 현실과 똑같이 보여주는 에어비앤비 등이 거울세계의 대표적인 사례다.

ASF 기준에 따르면 가상현실 게임인 심즈는 메타버스가 맞다. 그러나 심즈를 완벽히 메타버스 플랫폼이라고 단정 짓기는 무리다. 심즈에는 메타버스 플랫폼 최대의 장점인 소셜 기능이 없다. 오로지 자신이 구현한 가상 세계에서 혼자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점점 인기가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를 제페토,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차지했다. 심즈는 최근 떠오른 메타버스 플랫폼이 나오기까지의 과도기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듯하다.

사진출처 Giu Vicente

10대의 놀이터
미국 10대 절반 이상이 메타버스 플랫폼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회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청년이나 중장년층이 아니라 왜 10대인가. 10대는 디지털과 함께 태어났다. 엄마는 유튜브로 태교를 하고 아이가 태어나서는 유튜브로 육아를 한다.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리게 된다. 반면, 30대인 에디터는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 대에 들어서야 디지털 세계에 입성할 수 있었다. 10대는 아주 어릴 때, 심지어 엄마 배 속에서부터 디지털과 친숙해지고 그 때문에 기성세대보다 새로운 기기와 플랫폼 등 디지털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2019년 코로나19 등장도 메타버스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강제적인 비대면의 확산으로 등교할 수 없게 된 10대는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갔다. 1차적으로 원격 수업이 전면화되자 온라인 개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니터를 통해 친구를 만났다. 이들의 온라인 만남은 방과 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이어졌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DM, 페이스북 메시지 등 SNS 채널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뭔가 실제로 존재하고 소통한다는 실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훨씬 나았다. 대면 만남의 장점인 직접 소통을 메타버스에서 대체한 셈이다. 제페토에서는 다양한 교실 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은 교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AR 아바타로 친구를 사귀고 소통한다. 진짜 내가 아닌 익명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현실보다 적극적인 소통과 더욱 다양한 인간관계의 확장이 가능하다.

자기만족은 10대가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메타버스에서는 현실보다 저렴한 가격 또는 공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외모를 꾸밀 수 있으며 심지어 인종을 바꿔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또한 현실에서는 갖고 싶은 상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돈이 부족하거나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해 구매하지 못하는데, 메타버스에서는 용돈에 준하는 저렴한 가격에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다. 팔로우하는 친구들에게 캐릭터까지 뽐낼 수 있으니 10대에게 메타버스 세계란 파라다이스다.

마케팅 신흥 강자
그동안 혁신적인 소셜 플랫폼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산업의 생리를 쭉 봤을 때 대게 비슷한 길을 걷는다. 처음엔 소통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어느 정도 유저가 늘어나면 각종 이벤트를 오픈하면서 타 플랫폼의 유저들을 끌어 모은다. 정상에 자리에 올랐을 때쯤 플랫폼은 마케팅 기능을 추가한다. 유저들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채 광고와 마케팅 물결에서 허우적거린다.

마케팅 입장에서는 인기 플랫폼이란 아주 좋은 채널이다. 단 하나의 게시물로도 수천만 명의 유저들에게 광고할 수 있으니까. 유저들은 1초가 되기 전에 게시물을 쓱 넘기지만 그중 1%만이라도 게시물을 클릭하면 성공한 셈이다. 수천만 명 중 1%는 수십만 명이다. 과하게 마케팅을 실행해 유저들에게 외면 받은 플랫폼이 대부분이지만 또 그중 몇 개는 은근슬쩍 광고 게시물을 띄우며 지금까지 정상에 자리에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도 마케팅의 물결에 합류한 것 같다. 10대의 전유물인 메타버스답게 브랜드들은 10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올해 초에 이슈화됐던 명품 브랜드의 제페토 입점이 첫 번째다. 오천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실존하는 명품과 똑같은 것을 살 수 있으니 불티나게 팔리는 건 당연한 일 같다. 명품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CU, 롯데월드, 토니모리, 현대백화점, 이디야, 하나카드 등 업종을 막론하고 제페토에 브랜드 맵을 오픈했다. 미래 소비자가 될 10대에게 브랜드의 인지도와 접근성을 올리고자 메타버스 트렌드에 합류한 것. 브랜드의 예상은 적중했고 마케팅은 활발히 진행중이다.

사진출처 Amanda Dalbjrn

초연결 산업 사회
메타버스는 다양한 산업에서 등장한다. 소셜과 게임 플랫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 질 뿐, 미디어, 경제, 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그중 글로벌 인기의 정점에 서 있는 K-POP도 메타버스를 활용한다. 지난해 9월 글로벌 인기 그룹 BTS는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포트나이트’에서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최초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제페토에서 열린 블랙핑크의 글로벌 가상 팬 사인회는 하루에 4600만명이 참여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부도 메타버스 트렌드에 발 빠르게 승선했다. 청와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마인크래프트’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오픈했다. 대통령 내외가 화상으로 어린이들과 퀴즈를 풀고 이야기는 나눈 것. 작년에 진행한 메타버스 행사에서는 마인크래프트 청와대 맵을 만들고 실제 무대 공간을 가상으로 구현해 초청 행사를 연출했다. 지방 교육청 역시 메타버스를 활용한 교육 시스템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메타버스는 가상 경제 시장도 활성화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 제페토는 ‘젬’, 로블록스는 ‘로벅스’라는 디지털 화폐를 사용한다. 일종의 게임 머니라고 생각하면 쉽지만 조금 다르다. 메타버스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는 현금화가 가능하다. 제페토 유저는 누구나 제페토 스튜디오를 이용해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데 손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템플릿이 기본으로 제공돼 그래픽과 디자인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아이템 제작이 가능하다. 또한 일정 판매 금액을 달성하면 디지털 화폐를 현금화할 수 있어 현실 수익 창구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브랜드 및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해서 양산하고 이는 다시 제페토의 활성화를 돕는다.

메타버스로 인해 미디어의 경계도 더욱 흐려질 전망이다. 미국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에 K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영문 이름인 ‘Squid Game’을 검색하면 1천개가 넘는 게임이 나온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등 드라마에 등장한 게임들을 로블록스 유저들이 가상현실에 구현하고 타 유저들과 게임을 즐기는 것.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콘텐츠가 메타버스에서 새롭게 태어나거나, 현실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가 메타버스로 재현되는 트랜스 미디어화가 진행될 것 같다.

SK텔레콤에서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는 참여형 메타버스 웹 드라마 <만약의 땅>을 공개했다. 만약의 땅은 아바타를 마음대로 바꾼다는 메타버스의 특징을 살려 “만약 남자친구의 외모가 매일 바뀐다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출연 배우, 스태프, 배경은 모두 이프랜드 내 가상공간과 아바타를 활용했으며 조연 및 단역은 이프랜드 일반 유저들로 이루어졌다. 드라마 제작 회의 등 촬영기 역시 이프랜드 내에서 진행했다. 11월 15일 기준 유튜브에 공개된 ‘만약의 땅’의 조회 수가 약 500여 회에 그치지 않았지만 ‘참여형 메타버스 웹드라마’라는 혁신적인 콘텐츠의 신호탄임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언급된 사례를 봐도 여전히 메타버스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주는 심리적 거리감도 있을 테고 메타버스를 그저 온라인으로 즐기는 10대 놀이 문화나 마케팅 채널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메타버스 시대는 시작됐다.

글로벌 유통 기업 아마존은 영국 런던 중심지에 AR을 활용한 헤어숍 아마존 살롱을 오픈했다. 미용실 전면 거울에 부착된 아마존 파이어 태블릿이 AR로 염색, 커트, 펌 등 방문객의 헤어스타일을 시뮬레이션해준다.

국내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메타버스 사무실을 도입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본사를 없애고 자체 개발한 가상 오피스 ‘메타폴리스’에서 업무를 진행한 것. 직원들은 아바타로 출근하고 가상공간에서 회의 및 대화를 나눈다.

기술의 발전은 생각보다 빨랐고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났다. 약 3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시작된 인류 진화의 역사가 메타버스까지 도달했다. 호모 에렉투스가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불이 우리 삶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듯이 아직은 낯설지만 신기한 메타버스도 조만간 우리 삶 속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쩌면 22년 전 대중에게 충격을 선사한 영화 <매트릭스>의 시대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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